변화하려는 뇌의 질주 본능

변화하려는 뇌의 질주 본능

뇌교육 칼럼

브레인 97호
2023년 03월 20일 (월)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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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뇌야말로 인간이 가진 특성이자 본능이다. 결국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을 막는 뇌의 기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아닐까? 

사람은 변할 수밖에 없고 의도한 대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새로운 상식이 되어 아동교육에서 성인교육까지 적용된다면, 사회는 기존에 해결할 수 없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변화하려는 뇌의 질주 보능 ⓒ게티이미지


2000년대 중반쯤 ‘뇌구조도’라는 것이 유행했다. 순수하게 재미나 자기 어필을 위해 뇌의 형태를 빌려서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나 가치를 두는 것을 구분해서 설명하는 일종의 온라인상에서의 친목 활동이라 할 수 있었고, 가끔 만화나 영상매체에도 나올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물론 이것은 사람의 실질적인 뇌 구조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종의 놀이에 불과했지만, 이러한 놀이 이면에는 뇌에는 특정 기능을 담당하는 영역이 정해져 있고 뇌의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상식이 존재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1861년 프랑스의 해부학자 피에르 폴 브로카는 뇌 피질에 언어를 담당하는 특정한 부분이 있다는 발표를 했고, 이를 시작으로 뇌신경학계는 인간의 뇌 지도를 밝히기 위한 연구에 돌입했다. 이러한 연구가 한때는 특정 인종이 다른 인종에 비해 구조적으로 우월하거나 열등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로 오용되기도 했다.

1904년 로버트 베넷 빈이라는 연구자는 미국해부학회에 백인의 뇌는 전두엽이 더 크고 뇌량의 앞부분이 더 크기 때문에 더 높은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기고했고, 그 시대의 여러 연구자가 문화나 인종 간의 차이를 분석하기 위해 두개골이나 뇌의 특정 부분의 크기를 연구한 사례들이 있다.

최근의 연구에서 뇌신경세포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사람의 여러 뇌 기능이 기존의 생각만큼 특정 부위에 의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아직 많은 사람이 개개인의 능력은 타고난 것이며 성격이나 기질, 습관은 바뀌기 어려운 것이라고 인지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주변을 돌아보면 이를 부인하기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비슷한 환경에서 태어나 비슷한 교육을 받았는데도 특출하게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나 친화력이 좋은 아이들이 있다.

부부나 형제, 친구 사이에 상대방이 좀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에 대해 아무리 얘기를 해도 전혀 바뀌지 않는 것을 볼 때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사실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의 뇌는 태어날 때부터 능력이 정해져 있고 쉽게 변하지 않게 설계되어 있을까?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 뇌의 기본 속성이다

이미 오랫동안 연구되어 대중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뇌가소성, 혹은 신경가소성이라고 하는 개념이 있다. 이는 뇌가 성장과 재조직을 통해 스스로 신경회로를 바꾸는 능력을 뜻한다. 더 간단히 이야기하면 사람의 뇌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초반에는 뇌가소성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조차 이러한 능력이 해마나 치상돌기같이 기억 형성에 관련된 부분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며, 주로 학습에 관련된 상황에서만 발생한다고 믿었다.

또한 사람의 운동신경이나 기질과 관련된 뇌의 하부 신피질 영역의 구조는 아동기 이후로 바뀌지 않으며, 뇌가 특정 조건이나 자극에 의해 변화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는 뇌가소성에 대한 상당히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뇌신경과학자인 마이클 메르제니치는 경험과 신경 활동이 뇌 기능을 개조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발견해 2016년 제2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카블리 상을 받았다. 이 연구를 통해 그는 뇌의 가소성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작용하며, 이는 단지 기억만이 아닌 뇌의 모든 영역에 작용한다는 그의 주장을 입증했다.

또한 기질이나 운동신경 기능이 태어날 때 정해진다는 가설도 잘못된 것임을 밝혀냈다. 타고난 성격이나 능력은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 아님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서 보는 사람들의 고정된 인식이나 습관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무리 뇌가소성이 존재한다고 해도 이것이 발현되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매우 놀라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뇌가소성에 대한 연구의 권위자인 데이비드 잉글만 박사는 뇌의 가소성은 어떤 조건에서 발생하는 기능이 아닌 신경세포의 자연현상이며, 오히려 뇌는 신경세포가 너무나 쉽게 바뀌어 불필요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뇌신경세포는 시시각각 변화하며, 잠을 자고 있을 때 뇌의 시신경을 담당하는 부분이 약화되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시신경을 활성화한다고 한다. 바로 렘REM 수면 때 일어나는 꿈이라는 현상은 뇌가 신경세포의 가소성이 시각 능력을 저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보내는 시각 영상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태어나자마자 걷거나 독립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본능을 가진 동물일수록 렘수면이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뇌의 가소성이 발달한 동물일수록 이에 대한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능력도 같이 발달했다는 이야기다.
 

사람은 변할 수밖에 없고, 의도한 대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새로운 상식

위의 연구와 주장들을 종합해서 생각해본다면 인간이 다른 동물들보다 우수한 점은 단지 똑똑한 것만이 아니라, 그 어떤 동물보다 환경에 맞춰 쉽게 변화하는 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다. 

인간의 아기는 다른 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 부모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말은 태어날 때부터 걸을 수 있고, 인도네시아의 말레오 새는 새끼 때부터 날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 자신을 보호할 수단이 없음에도 멸종되지 않고 다른 동물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사막에서부터 북극까지 너무나 다양한 환경에서 그 지역의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이점이 없음에도 기어이 적응해내는 뇌의 능력 덕분이다. 이처럼 변화하는 뇌야말로 인간이 가진 특성이자 본능이다.

결국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을 막는 뇌의 기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아닐까? 사람은 변할 수밖에 없고 의도한 대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새로운 상식이 되어 아동교육에서 성인교육까지 적용된다면, 사회는 기존에 해결할 수 없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학교에서 문제아였던 발명왕 에디슨이나 어렸을 때 수학을 싫어했던 아인슈타인, 태어나자마자 부유하지 않은 부부에게 입양되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던 스티브 잡스 등 삶에서 극적인 변화를 이룬 이들이 무수히 많다. 이 역시 그들의 타고난 능력이나 운의 결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뇌에 대한 연구가 발전할수록 개인이 지닌 가능성이 무한함을 보여준다. 

우리가 만든 능력과 성격의 한계는 우리의 선택과 노력으로 극복되고 발전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뇌활용 분야의 핵심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글. 이정한 IBREA Foundation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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