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아쉽고 ‘그때 내가 왜 그랬지?’ 하고 반성하는 일이 있다. 얼마 전 한 학술대회에서 사회를 봤는데, 당시 발표자를 배려한다고 한 일이 당사자에게 불만을 사 항의를 받았다. 사회를 처음 보는 것도 아니었는데 왜 이런 실수를 저질렀는지 자꾸 돌이켜보게 되고,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한 난처한 경험이었다.
이처럼 지난 경험을 돌이켜보고 무엇이, 어디서, 왜 잘못되었나를 반성하고 변화를 계획하는 실체는 자기의식(self-consciousness)이다. 자기의식은 잠 잘 때를 빼고 늘 내 몸과 하나인 ‘나’라고 인식되어왔다. 예전부터 우리는 신체보다 정신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최근 신경과학 연구를 보면 이 상식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기의식’은 신경계가 만들어낸 허구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신체에서 정신에 이르는 우리의 모든 활동이 뇌, 곧 신경계에 의해 이루어진다. 신경계는 소화기관처럼 우리 신체의 일부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신경계는 놀랍게도 신체가 성장하는 것에서부터 지난 일을 반성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등 온갖 사고활동을 주도함으로써 신체를 넘어선다. 그래서 신경계는 부분이면서도 전체라는 역설이 성립될 수 있다.
이 같은 역설을 신경계는 또 하나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신경계가 만들어낸 ‘자기의식’과 관련된 것이다. 뇌 연구자들은 자기의식이 신경계가 자신의 일을 더 쉽게 수행하기 위해서 창조해낸 허구라고 본다. 자신이 원하고 느끼고 사고하는 것들이 실은 신경계에서 벌어지는 전기화학적 신호에 의해 자기의식에 반영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신경과학자 벤자민 리베트Benjamin Libet는 자기의식이 ‘내가 무엇을 원한다’고 떠올리기 전에 뇌에서 먼저 전기화학적 반응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인간의 자유의지라고 믿어왔던 것의 실체가 자기의식에 반영된 뇌의 활동이라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 아직 더 많은 근거가 확보되어야 하겠지만, 이 실험은 신경계의 활동에 의해 우리 정신과 신체가 지배되고 있고, 나라고 하는 자기의식이 신체의 주인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자기의식이 발달해야 자기조절력이 생긴다
신경계가 언제나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비만 행동에 대해 신경과학자들은 이미 인류가 섭생의 어려움을 겪지 않게 되었지만 신경계는 여전히 음식을 구하지 못할 상황에 대비해 남아도는 칼로리를 신체에 저장하려고 하기 때문에 비만 문제가 발생한다고 해석한다.
밤늦게 허전한 속을 채우고 싶은 야식의 욕구, 연인과 헤어지거나 자신이 원한 일을 이루지 못하고 마음이 허한 순간에 밀려드는 식욕. 이 같은 이상식욕이나 비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그 해답은 신경계가 만들어낸 자기의식을 발달시킴으로써 자기의식이 신경계를 잘 관리하도록 하는 데 있다고 생각된다.
자기의식은 비유하자면 신경계의 자식이다. 자식은 어릴 때에 심리적으로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한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점차 부모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자기의식이 발달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그저 무언가를 원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수준에 머문다. 그러다가 점차 자기 자신의 신체, 정서, 인지 등에 대해서도 마치 다른 사람을 바라보듯 관찰하고 조절하는 등 자율적인 메타인지가 가능해진다.
자기의식이 발달하면 타인을 바라보듯 자기 자신을 관찰할 수 있고, 자신의 상황을 돌아보며 사고와 행동을 조절하는 자기조절능력이 생긴다.
행복한 삶의 주체가 되는 길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자기의식의 발달을 꼭 이루어야 한다. 인간 존재로서 ‘나’를 키워가는 길은 결국 자기의식의 발달로 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존 듀이는 자기의식의 발달로 이끄는 한 가지 길로 ‘반성적 경험(reflective experience)’을 강조한다. 반성적 경험은 지나간 일에 대해 돌이켜보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찾는 행위이다. 반성적 경험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면 결국 ‘나’라는 인간 전체가 발전하게 된다. 듀이는 성장하는 경험을 강조한다. 이 경험의 주인공은 곧 나 자신이다. 따라서 듀이의 말을 자기의식의 지속적인 발달로 해석해도 무리는 없다.
자기의식에 무엇이 떠오르도록 할 것인가? 이왕이면 더 건강하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떠올라야 더 행복하게 살지 않을까? 사장의 능력에 따라 회사의 운영이 달라지듯이 자기의식이 발달해야 ‘나’도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자기의식이 발달하려면 그 근본인 신경계를 발달시켜야 한다. 자기의식은 꼭 필요하지 않아도 먹고 싶고 하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내비치기도 한다. 무조건 자기의식에 따르지 않고 그 이면을 잘 알아차려 조절하는 힘을 기른다면 우리는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주체가 될 수 있다. 자기의식에는 이러한 뇌활용의 힘이 잠재되어 있다.
글_신혜숙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뇌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