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혁의 뇌교육 가이드 24편] 조선의 뇌교육자, 세종

[장래혁의 뇌교육 가이드 24편] 조선의 뇌교육자, 세종

장래혁의 뇌교육 가이드

▲ 광화문에 자리한 세종대왕 동상 (=출처: 서울특별시 홈페이지)

팝송 영어 가사를 한글 발음으로 적으며 외우던 시절, 지금과 같이 외국인들이 빌보드 차트에 오른 곡의 한글 가사를 거꾸로 자신들의 언어로 적는 지금을 상상할 수 없었다. 불과 30여년만의 변화이다.

지구에 감성충격을 주고 있는 방탄소년단(BTS)은 ‘한글’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오게 하고 있다. 물론 BTS 이전에 한글은 이미 전 세계 언어학자들로부터 가장 과학적인 문자로 평가받았다. 매년 유네스코가 ‘세계 문해의 날’에 문맹 퇴치에 기여한 개인 및 단체에게 수여하는 상이 바로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UNESCO King Sejong Literacy Prize)’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계의 평가 보다 대중적 인식과 확산은 결이 다르다. 언어는 한 나라가 가진 문화의 정점이자 뿌리이기 때문이다. 언어를 익힌다는 것은 문화적 감수성과 동질성을 느끼게 하고, 나아가 개인의 삶과 라이프 스타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K드라마, K팝 등 한류 확산에 힘입어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들도 급증하고 있다. 미국현대언어학회 발표에 따르면, 2006년에서 2016년 사이 미국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상위 10대 외국어 중 한국어는 95%나 증가했다. 2번째 외국어인 아랍어가 26% 정도로 한국어 인기를 실감할 만하다. 1997년 2,600여명으로 시작한 한국어능력시험은 2010년 10만명, 2014년 20만명을 넘어선 이후 작년 37만명에 이른다. 가히 폭발적인 성장세다.

그렇다면, 전 세계 언어학자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는 과학적 합리성과 법칙을 가졌다는 한글 창제의 인물 세종대왕을 우리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리고 한국인들이 가장 아끼는 역사적 인물인 세종은 과연 외국인들의 눈에 어떻게 비춰질까.

최근 눈이 번쩍 뜨이는 소식이 들렸다. 할리우드 장수 SF 시리즈 스타트렉 작가인 조 메노스키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기를 역사 판타지 소설로 썼다는 것이다. 지난 9일 한글날에 맞춰 한글판·영문판으로 출간된 『킹 세종 더 그레이트』를 바로 구입해서 읽었다.

“이 모든 것을 천재적인 왕이 창제했다는 스토리는 충격적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피렌체의 통치자인 경우일까? 아이작 뉴턴이 영국의 왕인 경우일까?” 책 머리에 적힌 글이다. 세종대왕을 미국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어 미니시리즈 제작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그의 행보에 가슴이 띄는 이유는 다름 아닌 ‘한글’ 창제에 담긴 통치자의 감동적인 스토리 때문이다. 

세종이 조선의 네 번째 왕으로서 재위해 있던 때는 그 어떤 시대보다 수많은 업적과 기라성 같은 인재들이 넘쳐났던 시기였다. 재위 32년 동안 세종은 전국 방방곡곡을 통해 재능 있는 인재들을 찾았고,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중용하였다. 세종은 ‘인재가 길에 버려져 있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의 수치’라고 믿었다. 그는 모든 사람은 제각기 재주를 갖고 있다고 믿었고, 그 재능을 알아보는 눈을 키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세종은 즉위 후 이름뿐이던 집현전을 조선 최고의 학문기관으로 올려놓아 재능 있는 소장학파들을 발굴하고, 그들이 관료들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커다란 바람막이 역할을 겸해 최상의 환경을 조성해주었다. 

더불어 관료사회와 연계되는 길도 열어줌으로써 또 다른 성장의 길을 마련했다. 집현전은 그가 이루고자 했던 꿈과 비전의 주춧돌이었고, 이후 학문적 성취를 이루려는 모든 선비들의 바람으로 자리 잡았다. 국가 인재양성을 위한 시스템을 마련한 것이다.

세종 15년에는 어린 학생들을 선발해 중국에 유학을 보낼 만큼 국제적 인재양성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선발 당시에 평민 출신의 중용도 배제하지 않았을 만큼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았다. 이러한 인재중시와 양성에 관한 통치철학으로 세종 재위 시절 조선은 전국이 거대한 대학 캠퍼스나 다를 바 없었을 만큼 교육이 나라의 근본을 이루었다.

세종 시대에 인재들이 넘쳐나고 그 인재들에 의해 많은 업적들이 나타난 것의 바탕에는 그들의 재능을 꿰뚫어보는 세종의 통찰력이 있었다. 그것이 근간이 되어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할 수 있었고 명을 받은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능력을 최고로 발휘했다.

조선의 대표적 명장인 김종서는 태종 시절 이름도 없는 관직에 머물다가 쫓겨났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세종은 왕위에 오르기 전, 김종서의 공평무사함을 눈여겨보고, 그에게 백성을 감찰하는 일을 맡겼다. 이후 그는 북방의 여진을 격퇴하고 6진을 개척하는 큰 업적을 일궜다. 

재능 있는 인재를 발굴하는 데는 출신도 상관없었다. 조선을 넘어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과학자로 수많은 발명품들을 쏟아내었던 장영실은 관노에 불과한 비천한 신분이었지만 세종에게 발탁되어 중국 유학을 다녀오고 정3품의 지위까지 올랐다. 또 영의정을 18년이나 지내며 청백리로 이름난 황희는 서얼 출신이었다. 

세종은 늘 신하들의 재능을 살펴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처조카이자 조선의 대표적 문신인 강희안은 24세에 정인지 등과 함께 한글 28자에 대한 해석을 상세하게 달고, 용비어천가의 주석을 붙일 만큼 뛰어난 인물이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개인의 영달에는 관심이 없고, 욕심도 없었으며, 남 앞에 나서는 것도 싫어했다. 

시·서·화에 모두 능하여 ‘삼절’이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재능을 지닌 강희안을 눈여겨본 세종은 그에게 원예서를 만들라는 명을 내린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원예서로 꼽히는 《양화소록》은 그렇게 탄생되었다. 

그러한 시간이 흐르던 재위 25년째 되던 1443년 12월, 드디어 조선 조정을 발칵 뒤집는 일이 발생했다. 세종이 철저히 비밀리에 추진했던 훈민정음이 비로소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훈민정음의 발표는 최만리를 비롯한 집현전 대표학자들조차 발표시점까지 그 골자를 보지 못했을 만큼 전격적인 사건이었다. 

대부분의 조정대신들은 즉각 반대에 나섰고 집현전의 많은 학자들도 반대 여론에 참가했다. 그만큼 새로운 문자의 창제는 당시 사회에 많은 문제점들을 만들어낼 소지가 있었다. 하지만 세종은 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3년 후인 1446년 훈민정음을 정식으로 반포했다. 훈민정음은 백성을 위한 것이라는 변할 수 없는 원칙으로 세운 것이었기에 세종은 결코 물러설 수가 없었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세종 자신이 당대 최고의 음운학자였다는 점이다. 백성을 위한 독자적 문자의 필요성을 느꼈던 세종은 오랜 기간 음운론에 관해 수많은 서적을 섭렵했고, 반대했던 학자들을 꼼짝 못하게 할 만큼 뛰어났다. 

이는 당시 훈민정음의 반포에 크나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한글의 태동기로 보는 세종 즉위 10년부터 그는 고어를 연구하고 음운론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스스로 전문가로 성장했다. 백성을 향한 마음이 그의 재능을 한 단계 도약시킨 셈이다.

인재의 발굴과 등용, 저마다의 재능을 일깨운 통찰력, 큰 가치를 위한 공적인 비전 등 세종은 단순한 군주를 넘어 뛰어난 뇌교육자였다. 그는 재능을 발굴하고 키우며, 학문을 대중화시키고, 뛰어난 인재를 나라의 근간으로 삼았다. 세종의 교육관은 단순한 지식전달 위주와 획일적인 교육 등 오늘날 겪고 있는 교육의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책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주는 선조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교육이란 것이 단순히 지식을 배우고 축적하는 것을 넘어서 뇌가 가진 최고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임을 세종은 이미 알았던 셈이다. 한 나라의 수장으로서, 교육자로서 인간의 뇌가 가진 근본 가치를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세종이 왜 우리 역사에서 으뜸으로 손꼽히는 성군인지 새삼 돌이켜볼 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라와 민족이 번성하는 길은 ‘교육’, 즉 인간의 잠재성을 계발하고 가치를 높이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글. 장래혁 
누구나가 가진 인간 뇌의 올바른 활용과 계발을 통한 사회적 가치창출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뇌과학연구원 수석연구원을 역임하였고, 현재 뇌교육 특성화 대학인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뇌교육융합학과 전임교수로 있다. 유엔공보국 NGO 국제뇌교육협회 사무국장, 2006년 창간된 국내 유일 뇌잡지 <브레인> 편집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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