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정의 뇌활용연구실 22편] 플라시보 이야기

[양현정의 뇌활용연구실 22편] 플라시보 이야기

양현정의 뇌활용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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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손은 약손. 엄마가 배를 어루만져주면서 낫는다~낫는다~하면 아픈 배가 감쪽같이 낫는다. 어쩌면 플라시보 효과를 경험하는 것일 수 있다. 

플라시보(placebo)라는 단어는 히브리 성경의 초기 라틴어 번역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걸을 것이다” 라는 뜻의 고대 히브리 단어 “ethalech”가, “Placebo Domino in regione vivorum”으로 번역이 되었다. 

어느 단계에서 ‘플라시보’라는 단어가 ‘즐기기 위해’라는 뜻으로 쓰이는 등의 오역이 있었고, 따라서 번역문에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겠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 원래의 오역은 수백 년동안 플라시보 효과가 가지는 개념적인 측면과 정의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현재에도 그렇다 . 

20세기 들어 이중맹검무작위배정 임상시험이 약물개발의 표준시험방법이 되면서 약물을 시험하는 실험군에 대한 대조군으로 플라시보 약물군이 사용되게 되었다. 새롭게 개발되는 약물들은 플라시보 약물보다 효과가 좋아야 약물로서 승인을 받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막대한 노력이 들어가도 약물로 시장에 나올 수 없다. 

약물개발 연구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임상시험에서 대조군인 플라시보군의 효과에 대한 결과도 축적되었고, 연구자들은 대조군으로만 생각했던 플라시보군의 결과들에서 흥미로운 점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플라시보 약물도 어떠한 경우에는 의미있는 증상개선을 보인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점은 플라시보 효과 자체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플라시보 효과에 대한 연구에서, 오피오이드, 엔도카나비노이드, 도파민, 옥시토신, 바소프레신의 생체 내 방출이 발견되어졌고, 특정물질의 방출은 인체 시스템에 특징적으로 작용함이 보여진다. 예를 들어, 도파민 방출은 파킨슨 병 치료의 플라시보 효과에는 역할하지만, 통증에 대한 치료의 효과에는 역할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유전적 배경에 따라서도 플라시보 효과가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2017년 스탠포드대 심리학과 로렌 호웨, 파커 고야, 알리아 크럼 박사 연구팀에서는 플라시보 반응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의 피부에 소량의 히스타민을 발라 약간의 알레르기 반응을 유도한 후, 따뜻하고 자신감있는 태도의 건강관리자 또는 차갑고 자신감없는 태도의 건강관리자가 크림을 발라주면서 “이 크림은 발진과 염증을 줄여줄거에요” 또는 “이 크림은 발진과 염증을 더 증가시킬거에요” 라고 말하여, 참가자들에게 증상에 대한 긍정적인 또는 부정적인 기대감을 갖게 하였다. 

결과는, 따뜻하고 자신감있는 건강관리자가 크림을 발라주면서 긍정적인 기대감을 갖게 했을 때 알레르기 반응이 훨씬 더 감소하였고, 부정적인 기대감을 갖게 하면 알레르기 반응은 더 심하게 나타났다. 반면, 차갑고 자신감 없는 태도의 건강관리자에게 배정된 참가자들은 건강관리자의 말에 따른 알레르기 반응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 연구에서 사용된 크림은 다 똑같은 크림이었다. 즉, 건강관리자가 어떠한 태도로 환자를 대하느냐에 따라 심리적인 요인에 따른 생리적 반응의 증진을 촉진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 연구이다. 건강관리자의 따뜻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는 환자에게 신뢰를 주고 그 신뢰가 심리적인 효과에 따른 증상의 개선에 어느정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 시사되는 것이다. 

반면, 연구 결과는 환자의 신뢰가 형성되어 있을 때, 건강관리자가 부정적인 암시를 주면 증상은 더 악화될 수도 있다는 점도 시사한다. 신뢰가 바탕이 되었을 때 언어의 사용에 의해 플라시보 효과나 노시보 효과가 추가적으로 일어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의료현장에서만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선생님을, 집에서는 부모님을 신뢰하고, 친구간, 가족간, 더 크게 나아가 시청자와 대중매체간, 대중과 연예인이나 정치인간 등 사회의 다양한 관계에서 신뢰감이 형성된다. 

신뢰감이 바탕이 된 이와 같은 사회관계에서 자신의 일상의 언어와 태도가 자신을 신뢰하는 상대방에게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몸과 마음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잘 이해하고 상호작용을 한다면, 좀 더 따뜻하고 소중한 사회적 관계를 구축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글. 양현정 한국뇌과학연구원 부원장/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통합헬스케어학과 교수

문헌
Damien G. Finniss (2018) Placebo Effects: Historical and Modern Evaluation. International Review of Neurobiology. 139:1-27.
Luana Colloca, Arthur J. Barsky (2020) Placebo and Nocebo Effects. N Engl 
J Med 382:55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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