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가 지난 9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학습 손실이 경제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학교가 문을 닫음에 따라 개인적으로는 평생 동안 수입이 약 3퍼센트 감소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국가 차원에서는 21세기 남은 시간 동안 GDP가 1.5퍼센트 감소하는 결과를 가져올 거라는 예측이다.
저소득층, 저소득 국가일수록 학교 밖 시간에 학습 지원이 어렵기 때문에 타격이 더 심하다. 학교가 다시 문을 열고 학습 손실을 만회하려면 온라인 수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전략적 지원도 필요하고 좀 더 개인화된 교수학습법의 적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들도 인지적 학습 영역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것일 뿐, 학교가 문을 닫음에 따라 아동의 사회정서적 역량 계발의 손실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그 손실이 가져올 경제적 영향이 얼마나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나에겐 초등학교 3학년, 1학년인 조카들이 있다. 근처에 살고 있어 자주 보는 편이다. 코로나로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누가 있으랴만 나는 이 아이들을 볼 때마다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다. 어른들이 초래한 팬데믹 상황 속에서 일년이 다 돼 가도록 친구들과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는 유치원도 다니지 않아서 또래 친구가 거의 없다. 학교에 들어가면 친구가 많아지겠지 기대했는데 아직 반 친구들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어제는, 친구와 자전거를 타며 놀기 위해 30분을 기다렸다. 평상시에는 같은 동에 사는 여자아이가 유일한 놀이친구다. 그 나이에 남자와 여자는 좋아하는 놀이도 다르지 않나 싶어 ‘같이 뭐 하고 노니?’ 물어보니, 주로 집에서 게임을 하기 때문에 괜찮댄다.
경기도교육연구원에서 경기도 아동들을 대상으로 지난 7월에 코로나19로 인한 학교구성원의 생활과 인식의 변화를 조사했다. 응답한 학생들 중 35.2%가 하루에 한 번도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고, 23.3%가 1시간 미만 동안만 친구들을 만났다. 지식 습득은 온라인 수업으로 어떻게든 따라잡을 수 있다고 위안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친구들과 놀면서 관계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스스로 행복한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기회들은 만회가 가능할까?
코로나19뿐만 아니라 앞으로 기후 온난화에 따른 자연 재해와 전염병 등의 재난이 일상화된다고 예상된다. 그렇다면 사회적 안전망과 복지제도의 확충과 더불어, 이러한 역경 속에서도 스스로 행복을 창조할 수 있고 일어설 수 있는 긍정적인 태도, 회복탄력성과 같은 내적 역량을 길러주는 훈련이 필요하다.
긍정심리학을 창시한 마틴 셀리그만은 원래 ‘학습된 무기력’의 최고 권위자였다. 피할 수 없는 전기 자극이 반복적으로 주어지게 되면 피하지 않고 포기하는 개의 모습에서 학습된 무기력을 발견했다. 그런데 어느 강연회에서 한 참석자가 던진 다음 질문으로 그는 긍정심리로 관심을 전환하게 되었다.
“피할 수 없는 지속적인 전기 자극에도 불구하고 전혀 무기력해지지 않았던 나머지 3분의 1의 개들은 왜 그런거죠? 왜 그 개들은 계속해서 회피반응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인가요?”
스스로 의지를 놓지 않았던 개들의 특성은 무엇일까? 인간은 어떤 역경 속에서도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을까?
그런데 환경이나 욕구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존재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추구하는 능동적인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인본주의 전통의 학문들은 특히 현대에서 많은 저항에 부딪혀 왔다.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혹은 계급적 이데올로기라는 이유로.
셀리그만은 공저 <Character Strengths and Virtues>에서 긍정심리학은 이론이 아닌 경험에 의거해 인간다움의 토대이자 심리적으로 좋은 삶으로 이끄는 인성의 강점들을 제시하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Character에 해당하는 한국어로 인성 혹은 품성이 많이 쓰인다. 둘 다 ‘인간다움’을 무엇으로 정의하는가에 따라 내용이 많이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그냥 ‘인간다움’으로 쓸 때가 많다. 인간다움을 보편적인 언어로 기술할 수 있을까?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더불어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은 내면에서 더욱 거세어 졌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긍정심리학과 고대 그리스 철학의 미덕Virtue, 동양문화의 덕德이 바탕이 되는 ‘인간다움’이 특정 시대와 특정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회적 관념일 뿐이라는 생각을 업데이트하지 못하고 있다.
셀리그만도 긍정심리학 초기에 그 질문에 답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는 크리스토퍼 피터슨 박사와 함께 세계의 주요 종교와 철학에 관한 기본적인 저술들을 검토하여 총 200여 가지의 미덕 목록을 작성했다. 이 목록을 토대로 지혜와 지식, 용기, 사랑과 인간애, 정의감, 절제력, 영성과 초월성의 6가지 미덕으로 범주화하여, 특정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인류 보편의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범주화된 미덕은 추상적 개념이었기 때문에 계발하거나 측정하기가 어려웠다. 셀리그만은 그 미덕들을 토대로 구체적인 심리적 구성 요소들을 세분화하여 강점Character Strengths으로 제시했다. 긍정심리학은 자신의 대표 강점Signature Strength을 선택하고 발전시킴으로서 의미있고 행복한 삶을 스스로 창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긍정심리학>에서 셀리그만은 “환자가 자신의 강인함을 깨달을 때 성장하고 변화한다는 사실을 증언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강인함을 깨닫는다는 것은 아동청소년들에게 있어서 미래에 대한 긍정적 기대와 자기효능감, 자신감 등의 긍정적인 정서를 낳는 시작이 될 것이다.
문득 2012년 <청소년 멘탈헬스 심포지엄> 발표 차 한국을 방문했던 글로리아 뮬러 교장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가 교장으로 있던 호아킨 로데스토 학교는 2012년~13년 한국 교육부 글로벌 교육원조 사업으로 진행된 뇌교육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4개 학교 중 하나이다.
“거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학교폭력과 마약이 줄었다. 학교평가에서 늘 꼴찌였던 성적이 전국수학능력평가에서 1등을 해냈다. 고학년은 저학년을 도와주고, 경찰과 싸우던 학생들이 경찰과 함께 교통안전 캠페인도 하고 있다...(중간생략)...뇌교육은 오랜 내전으로 마약, 폭력, 살인 등의 문제가 심각한 엘살바도르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일깨우고 꿈과 희망을 주었다.”
당시 이 네 학교에는 3개월 동안 명상 등의 신체활동을 중심으로 한 뇌교육 수업이 진행되었다. 사업 종료 후 교육부에 제출한 연구보고서에서 당시 한국교육개발원 백순근 원장은 “수원국인 엘살바도르의 청소년들은 긴 내전과 폭력으로 인해 현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기술적인 지식만을 제공하는 것으로는 충분한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실정이다. 청소년들이 학교생활에 집중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다. 이처럼 스스로 동기부여를 장려하기 위한 전인적인 교육이 필요한 상황임을 고려할 때 본 사업은 수원국의 실제적인 요구를 충족하면서 한국의 교육원조 모델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포스트코로나, 인류 공동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의 습득과 필요한 역량의 계발이라는 교육의 인본주의적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온라인 학습 인프라의 확충만이 아니라 미래세대가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가치와 힘을 발견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힘을 써야 할 것이다.
글. 김지인 jkim618@gmail.com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의 디자인학교 Pratt Institute 석사과정 중 인생행로를 인간 뇌의 가치실현에서 찾고 대학원을 중퇴했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메꾸는 방법을 익히고 나누려는 삶의 이정표를 따라 미국, 일본 뇌교육 현장에서 10년간 경험을 쌓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두뇌포털 브레인월드닷컴 기획팀장을 거쳐, 현재 유엔공보국(UN-DPI) NGO인 국제뇌교육협회 국제협력실장을 맡아 국제사회에서의 뇌교육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참고한 자료
<The Economic Impacts of Learning Losses>, OECD
<코로나19와 교육: 학교구성원의 생활과 인식을 중심으로>, 경기도교육연구원
<엘살바도르 학생들의 정서조절 및 자존감 향상을 위한 공교육 지원 – 뇌교육 컨설팅 및 전문교원 양성 ->, 교육부
<마틴 셀리그만의 긍정심리학>, 마틴 셀리그만
<Character Strengths and Virtues: A Handbook and Classification>, Christopher Peterson and Martin E. P. Selig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