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탓하기는 참 쉽다. 때로는 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이 사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인류 역사상 전쟁, 기아, 지구환경 파괴 등 지구 상 모든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는 바로 1만 4천여 년 전 인류의 시원 ‘마고성(麻姑城)’에 살던 지소씨이다. 지소씨는 인류 최초로 포도를 먹고, 감각이 깨어나 사람들을 욕망과 감정에 빠지게 한 ‘오미(五味)의 변(變)’을 일으킨 당사자이다.
최근 미국의 작가가 마고성을 소재로 한 《마고성의 비밀》이라는 소설을 출간했다. 비록 소설이지만 책에서 지소씨는 감각에 중독되어 인류의 재앙을 불러 일으킨 인물로 나온다. 지소씨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지소씨를 가상인터뷰했다.
▲ 포도를 먹은 지소씨 (그림=최종린 作)
-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저는 마고성에 살았던 지소라고 합니다. 우리는 지구 어머니 마고의 후손으로 황궁, 청궁, 백소, 흑소 4개의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는 그 중 백소족의 사람이었습니다.
- 어떤 일을 했는지요?
제 직업은 예술가였습니다. 저는 식물에 에너지를 불어넣어 마을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을 했죠. 제가 돕지 않아도 식물은 잘 자라지만, 제 에너지가 닿으면 꽃잎은 더 환하게 빛나고, 줄기는 더 튼튼해졌죠. 저는 매일 몇 시간씩 마을을 돌며, 저를 둘러싼 황금빛 오라의 에너지로 식물에 광채를 더해주는 일을 했습니다.
- 어렵겠지만 그때 일을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당시 인구가 많아지면서 공동체 규모가 커졌습니다. 일을 마치고 나면 어느덧 마을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져 버리곤 했죠. 사실 그 날도 몇 시간 전에 마을에 도착해야 했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일하다 보면 너무 몰입한 나머지 시간을 잊게 되잖습니까? 그날도 그랬습니다. 제 안의 생명에너지가 줄어드는 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꼈습니다. 당시 저희는 지구에서 솟아나오는 마고 어머니의 지유(地乳)를 마셔야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샘이 오십 걸음만 가면 있었거든요.
제 안의 생명 에너지가 이렇게 떨어진 적이 없어서 초조했습니다. 그런데 앞에 서 있던 사람이 갑자기 샘이 말랐다고 하는 겁니다. 샘은 잘 마르지 않는데 아무래도 지맥(地脈)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하더군요. 사람들이 200걸음 정도 가면 또 다른 샘이 하나 더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 오랫동안 지유를 마시지 않으면서 어떤 일이 생겼나요?
점점 몸이 약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샘물이 있는 곳으로 텔레포트(순간이동)를 시도했으나 에너지가 모자랐습니다. 지구의 에너지와 너무 오랫동안 연결을 끊고 있었던 거죠. 순간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진 상태였었죠.
-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만한 사람은 없었나요?
그때 스마트폰이라는 편리한 도구가 있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 같네요. 저는 잠시 도와줄 사람이 없는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밤은 깊고 사방이 고요했습니다. 그때 말라버린 샘물가에 자라고 있는 포도 덩굴을 발견했습니다. 전에 제가 오라를 통해서 생명에너지를 불어넣었던 것이었죠. 달빛에 비친 포도는 생명에 가득 차서 반짝였습니다. 온몸의 에너지를 손끝에 모아 포도알을 하나 땄습니다.
- 포도를 먹었나요?
먼저 하늘에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이 포도는 제 생명에너지를 불어넣은 것이지만, 이제 다시 받아가겠노라며요. 포도를 한입 깨물자 생명에너지로 가득 찬 액체가 터져 나왔습니다. 모든 의식과 에너지가 입속의 포도에 집중되었습니다. 온몸이 황홀감으로 진동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감각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쾌감이 느껴졌습니다.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방법으로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멈출 수 없을 만큼 끓어오르는 힘을 느끼며 벌떡 일어나 마을까지 달려갔습니다.
▲ '오미의 변' 이후 마고성 사람들은 차츰 감각에 중독되어 갔다.
- 이후 어떻게 되었나요?
술을 마시고 일어난 아침처럼 다음 날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난 뒤 포도밖에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이후 제가 포도를 먹음으로써 포도의 에너지를 빼앗듯, 사람들은 누군가의 에너지를 뺏고 착취하며 에너지를 뺏는 ‘욕구’가 생겼습니다. 자기 내면의 질서, 법을 무시한 체 더 큰 자극을 계속 추구했죠. 점점 마고성은 오염되기 시작했습니다. 마고 어머니께서 선물로 주신 감각을 성숙하게 관리하지 못한 대가는 컸습니다.
아직도 후회스럽습니다. 그때 주변에 도움을 구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저는 하늘과 땅과 소통하는 대신, 마음속에 갇혀버렸습니다. 나쁜 생각을 조절하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생각에 휘둘렸습니다. 중독돼 버린 거죠.
- 당신의 많은 후손이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감각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시에도 마고성이 오염되어 백소씨가 마고 어머니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사람들이 감각을 조절할 수 있는 수련법을 알려달라고요. 그러나 중독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은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마고성 제일 어른인 황궁씨는 우리에게 “스스로 하늘의 이치를 깨달아 마음이 다시 맑아지면 자연히 천성(天性)을 되찾게 될 것이니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수천 년 이 지난 지금 어느덧 양심보다 돈이 우선인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천성을 회복할 방법이 있을까요?
컴퓨터에 운영시스템인 OS가 있듯, 우리 뇌에도 뇌운영시스템(Brain Operating System)이 있습니다.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보스를 활용하게 되면 우리는 자기 뇌에 들어 있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에 휘둘리지 않고 그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기분 나쁨' 프로그램을 끄고 '감사' 프로그램을 켜볼 수 있습니다.
▲ 마고성 제일 어른인 황궁씨는 '오미의 변'에 대한 책임을 지고 복본(復本)의 맹세를 한다. (그림=최종린 作)
- 현재 후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스스로 무너지기 전에 자기 자신을 ‘와칭(Watching)’해야 합니다. 삶의 여유를 가지세요. 자기 안에 영혼을 깨우고 양심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어려울 때 도움을 구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제가 눈 앞의 일에 빠져 에너지가 고갈된 것을 와칭하지 못해 그런 끔찍한 사건이 생겼듯, 주변을 둘러볼 여유, 삶의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
21세기는 숨 막힐 정도로 각박한 세상입니다. 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길 간곡히 부탁합니다. 인류가 가진 원래의 완전한 본성을 회복하도록 돕자고 약속했습니다. 전 인류의 약 1%만 그 마음을 찾아도 우리가 사는 지구는 달라질 것입니다. 끝없이 경쟁하고 소비하고 착취하는 삶에 지쳐있다면 이제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따라야 할 때입니다.
글. 전은애 기자 hspmaker@gmail.com l 그림. 최종린
참고. 《마고성의 비밀》, 《부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