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가이버처럼 기발하게 생각하고, 다빈치처럼 지식의 경계를 넘나들기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침부터 밤까지 남들과 똑같은 스펙을 쌓기 위해 열을 올리느니, 그 노력을 브리꼴레르bricoleur가 되는 데 쏟는다 생각하고 도전한다면 이루지 못할 것도 아니다.
브리꼴레르는 식상함에 시비를 걸어 몰상식한 발상을 즐기고,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 비정상적으로 접근하며, 합리적 사고에 문제를 제기하며 비합리적 사고를 즐기는 역발상의 귀재다. 브리꼴레르는 일상에서 비상할 수 있는 상상력을 계발한다.
우선 다음과 같은 작은 습관부터 시작해보자. 새로움을 추구하기 위해, 새로운 가능성을 만나기 위해 당신은 이렇게 해본 적 있는가? 아직 없다면, 더 늦기 전에 시도해보자. 지금 당장.
1. 15분 이상 몰입할 수 있는가?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한다는 말이 있다. IQ보다는 끈기와 인내심perseverance and patience을 갖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근성이 있어야 공부가 된다. 그런데 우리는 몰입에 약하다. 한 가지 일에 15분 이상 집중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가벼움을 가리켜 ‘쿼터리즘quarterism’이라 한다.
그만큼 현대인들은 침묵과 고독 속에서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잃어가고 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강한 정보에 시시각각 반응하느라 우리 뇌는 현실의 느린 자극에는 응답하지 않는 팝콘 브레인popcorn brain이 되어가고 있다.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은 보스턴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하루에 1시간씩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끄고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들여다보며 진짜 대화를 나누라”고 당부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빠질수록 몰입하고 집중할 수 있는 뇌 기능은 없어진다.
두꺼운 인문 고전을 붙잡고 진득하게 읽어 내려가는 인내심이 있어야 고전에 담긴 지혜의 향연에 참여할 수 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앉아 책장을 넘기면서 저자와 침묵의 대화를 나눠보자.
2. 불편함과 동거해본 적이 있는가?
편리함에 익숙해질수록 사람의 몸은 편안함의 늪에 빠진다. 편리와 편안함이 편안하게 자신을 죽인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가? 불편한 사람을 만나야 배움이 있고, 마음이 편안하지 않은 책을 읽어야 뇌가 긴장하고 다른 방법으로 이해하려고 발버둥치게 된다. 편리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이 종국엔 인간적 삶의 조건을 불리하게 만든다는 것을 명심하자.
지금 당장은 안락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안락사로 인도할 수 있다. 미꾸라지 어항에 메기 한 마리를 집어넣으면 미꾸라지는 불편하다. 그런데 불편한 메기가 있어야 미꾸라지가 건강하게 더 오래 살 수 있다. 진주 속으로 들어온 불편한 모래알이 결국은 영롱하게 빛나는 진주를 만들어낸다. 낯선 분야, 편하지 않은 사람, 뇌리에 주먹질을 해대는 책으로부터 받는 불편한 자극이 삶을 살아 숨 쉬게 한다.
3. 맨발로 땅을 밟아본 적이 언제인가?
“철학의 첫 스승은 우리의 발이다.” 철학자 루소의 말이다. 걷기의 중요성을 설파한 최초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틈만 나면 제자들과 함께 걷고 토론하며 철학을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 걸으면서 평소에 간과한 자연과 세상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는 감각이 되살아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걸으면서 발을 자극하면 뇌신경을 자극해서 색다른 생각을 할 수 있고, 사고와 철학의 깊이가 더해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학파를 페리파토스학파, 즉 산책학파 또는 소요학파逍遙學派로 불렀다.
일본의 한 유치원에서는 아침에 아이들이 오면 맨발로 달리기를 시킨다고 한다. 발바닥을 자극해 생각의 발로를 새롭게 일으키기 위해서다. 남다른 족적을 남기려거든 두 발로 걸어가는 역사를 다시 써라. 이력서도 내 두 발(履)이 걸어온 역사(歷)의 기록(書)이 아닌가.
4. 빈둥거리고 어슬렁거려본 적이 있는가?
이유 없이 빈둥거리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빈둥거려봐야 생각이 새롭게 떠오른다. 어슬렁거려봐야 평소에 바쁘게 스쳐 지나간 일상의 뒤편이 내게로 다가온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버트런드 러셀은 “노는 시간은 ‘발효와 숙성의 시간’이다. 그래야 세상 뒤편을 응시할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러셀은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과 달리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주체성 확립을 위해서는 여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러셀은 자신의 무능과 게으름에서 불행의 원인을 찾는 현대인들에게 ‘행복하려면 게을러지라’는 처방을 내린다. 인간의 진정한 자유는 자신 스스로를 옭아맨 수많은 회의와 편견들에 저항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하루에 4시간 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을 빈둥거리고 어슬렁거려야 더 창의적인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5. 무심코 아무 역에서나 내린 적 있는가?
여행을 떠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사전에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다니는 것이고, 둘째는 대강 떠날 준비가 되면 떠나고 보는 것이다. 낯선 마주침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할 때 일어난다. 생각지도 못한 생각은 생각지도 못한 일을 당해봐야 할 수 있다.
계획에는 없었지만 왠지 마음이 끌리는 곳, 며칠간 쉬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낯선 곳에 무심코 내려보자. 생각지도 못한 경이로운 체험을 할 수도 있고, 기대하지 않은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을 계획대로 추진하려는 완벽한 근성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계획대로 안 되면 잠시 짐을 내려놓고 마음의 점을 찍어보자. 생각보다 불안하지 않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그때부터 낯선 생각이 꿈틀거리기 시작할 것이다.
6. 언제 마지막으로 놀아보았는가?
브리꼴레르는 주변에 있는 재료와 도구를 활용해 당면 과제를 해결하고 위기 상황을 탈출하는 사람이다. 브리꼴레르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꾸고, 낯선 것을 익숙하게 보여주는 예술가다. 또한 주변에 널려 있는 하찮은 것들을 모아 재미있게 노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 장난감이다.
그들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꾸어 신나게 논다. 창작이란 본디 충분하지 못한 재료와 시간, 완벽하지 않은 환경과 여건을 무릅쓰고 그걸 즐기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신나게 놀아야 나중에 눈물 흘리며 억지로 놀지 않는다. 노는 사람은 삶의 숙제를 축제로 바꾼다.
새로운 것은 지성이 아니라 놀이 충동에서 잉태된다. 역사상 최고의 성현에 공자와 맹자도 있지만 ‘놀자’와 ‘웃자’도 있다. 기억하라. 어린아이처럼 놀면서 웃는 천진난만함과 순진무구함이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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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https://www.facebook.com/kecologist
참고 도서·<브리꼴레르>, 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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