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출처 : flickr)
하나. 갑자기 땅이 갈라지고 집이 흔들린다. 건물들의 유리창이 깨졌다. 바깥으로 뛰어 나온 사람들로 거리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지진에 이어 저 멀리 바다에서는 10미터 높이의 쓰나미가 몰려온다. 검은색으로 변한 물은 해안가 마을을 덮치고 모든 것을 집어 삼키면서 지나간다. 한 번 먹으면 토해내지 않는 아귀처럼 모든 것을 쓸어 담는 쓰나미를 피해 사람들은 무조건 높은 곳으로 달리고 또 달린다. 여기서 뒤쳐지면 무조건 죽는다는 극한의 공포 앞에서 높은 곳으로,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둘. 한밤 중, 아무도 없는 집을 홀로 지키고 있다. 분명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였는데, 복도와 연결되어 있는 저쪽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 같다. 갑자기 복도에서 인기척이 나고 문고리를 만지는 것 같다. 창 밖으로 낯선 얼굴이 지나가고 소리가 난다.
셋. 지금 적과 총을 마주 하고 있다. 한 발짝이라도 옆으로 움직이면 그가 겨누는 총이 나의 심장을 관통할 것 같다. 숨소리 조차 크게 들리는 팽팽한 긴장감.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총을 쥐고 있는 나의 손에서는 땀이 배어 나온다.
스트레스와 공포는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
공포는 인간의 뇌가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감정이다. 공포는 원시시대부터 인간이 거대한 맹수들이나 알 수 없는 공격자들로부터 종족을 보전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만약 인간에게 공포라는 감정이 없었다면, 인간은 자신을 위협하는 맹수에게 겁없이 덤비고 심하게 부상을 입거나 심지어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공포는 이렇듯,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적당한 안전장치 인 것이다.
만약 인간의 감각이 위험인자를 인지할 경우, 이 정보는 빠르게 뇌로 전달이 된다. 뉴욕주립대 교수이자 뇌 과학자인 조제프 르두에 따르면 뇌의 공포작용은 편도에서 담당하며 감각을 통해 수용된 정보는 시상을 거처 편도로, 편도에서 정보를 분석하는 겉질로, 겉질에서 기억을 저장하는 해마로 전해지는데, 이 해마가 부신과 뇌하수체에게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내보낼 것을 지시하게 된다.
즉, 공포를 느꼈을 때 방출되는 호르몬은 우리 몸이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과 동일 한 것으로 만약 공포감이 가라 앉지 않고 지속이 된다면 이는 우리 몸이 스트레스를 끊임없이 받았을 때와 동일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이유
공포에 대한 기억은 감정을 저장하는 편도에 저장이 된다. 그런데 이 편도에 저장된 공포에 대한 기억은 평소 우리가 저장하는 전형적인 기억들보다 정보량이 적다. 마치 전형적인 기억이 해상도가 높고 끊김이 없는 동영상이라면, 편도에 저장된 공포의 기억은 해상도가 낮고 중간중간 끊기는 동영상과 같다. 이것을 빠른 스케치 기억이라고 부른다. 이 빠른 스케치 기억은 정보량이 적기 때문에 우리의 몸이 신속하게 반응을 할 수 있지만 흐릿한 기억이기 때문에 공포를 불러 일으킨 대상과 비슷한 모양을 띄는 것을 보면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고 반응을 하게 된다. 즉, 자라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을 보고도 놀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억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도 관련이 있다. 극심한 공포나 극단의 심리적 충격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빠른 스케치 기억의 영향을 받아 공포를 느끼게 된 것과 비슷한 소리를 듣거나 보게 되면 심리적인 불안감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을 겪은 군인들이 총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듣고 총소리로 인지한다거나 이번 지진을 겪은 사람들이 이후 지하철 공사를 위해 폭파한 것 때문에 건물이 흔들리는 것으로도 패닉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지속적인 공포감을 해방시켜 줄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사이세포’라고 불리는 뉴런이다. 이 사이세포는 편도와 편도 사이에 존재하는데 과학자들이 사이세포를 제거한 쥐와 사이세포가 있는 쥐를 두고 전기 충격 실험을 한 결과 건강한 사이세포가 과거의 공포스런 기억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가 아닐 수 없다. 이로써 과거의 충격으로 트라우마를 갖게 된 사람들에 대한 치료의 방법이 열린 것이 아닐까.
글. 조채영 chaengi@brainworld.com
도움. 굿바이 프로이트 ,스티븐 존슨 | 나의 두뇌가 보내는 하루, 주디스 호스트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