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속 유익균이 환경적 압력에도 소실되지 않고 그대로 존재하더라도, 본래의 유익한 기능을 잃거나 오히려 해로운 특성을 갖게 되면 만성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개념이 제시됐다.
한국연구재단(이사장 홍원화)은 고려대학교 김희남 교수가 장내 미생물의 손상을 ‘세균의 소실’과 ‘잔존 세균의 기능적 저하’라는 두 가지 축으로 통합해 평가하는 새로운 개념적 틀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성과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중견연구와 포스트게놈신산업 육성을 위한 다부처유전체 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됐으며, 장내 미생물 분야 국제학술지 ‘거트 마이크로브스(Gut Microbes)’에 10월 15일 온라인 게재됐다.
장내 미생물의 손상이 비만, 당뇨병, 아토피 피부염 등 다양한 만성질환의 발생과 연관돼 있다는 연구가 잇따르고 있다. 그동안 장내 미생물 연구는 주로 ‘어떤 세균이 얼마나 존재하는가’, 즉 장내 미생물의 종류와 양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하지만 장 속에 유익 세균이 충분히 존재함에도 만성질환이 발생하는 사례 등, 기존 분석만으로는 장내 미생물의 전반적인 손상 상태를 정확하게 평가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김희남 교수 연구진은 앞서 수행한 연구를 통해 장내 세균의 기능적 저하가 유전적·생태적 경로로 나타날 수 있음을 밝혔다. 대표적인 장내 유익균으로 알려져 있는 아커만시아(Akkermansia)에서는 돌연변이로 대사 건강에 유익한 기능이 약화되는 유전적 경로를, 또 다른 장내 유익균 '피칼리박테리움(Faecalibacterium)'에서는 유익한 균주보다 잠재적 병원성 균주가 우세해져 아토피 피부염 발생에 기여하는 생태적 경로를 확인했다.
▲ 장내 미생물 손상의 두 가지 형태 [그림=고려대]
장내 미생물 손상 분야 연구에 중요한 이론적 토대가 된, 마틴 블레이저(Martin Blaser) 교수의 ‘사라지는 미생물 가설’이 세균의 소실에 주목했다면, 이번 연구는 ‘남아 있는 미생물의 기능적 저하 가설’이라는 새로운 축을 더해 두 가지 손상 양상을 통합적으로 평가하는 틀을 제시한 것이다.
이 새로운 접근법은 장내 미생물의 구성뿐 아니라 개별 균주의 기능적 특성까지 분석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며, 향후 장내 미생물 연구와 손상 평가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학문적 의미가 크다.
▲ 장내 미생물 손상에 대한 새로운 통합 평가 체계 [그림=고려대]
김희남 교수는 “이번 연구는 그동안 간과되었던 장내 미생물의 기능적 저하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손상 양상을 제시한 것”이라며, “기존 분석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웠던 장내 미생물의 숨겨진 손상을 보다 정확하게 평가하고, 만성질환의 정밀 진단과 치료기술 개발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 우정남 기자 insight159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