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을 맞을 것인가
현대 의학이 수많은 질병을 정복한 덕분에 인간은 죽음조차도 치료하면 나을 수 있거나 유보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게 되었다. 이제 죽음은 삶의 대척점에 있고, 피할 수 있다면 최대한 피해야 하는 사건이 된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누구나 한번은 반드시 맞닥뜨려야 하는 삶의 장면이다. 그러니 터부시하거나 외면할 것이 아니라, 한 번쯤은 정면으로 응시할 필요가 있다. 인생에서 어떤 죽음을 맞을 것인지, 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미리 시뮬레이션해 보는 일 자체가 삶을 밀도 있게 살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수 있다는 말이다.
▲ 《죽음을 배우는 시간》 김현아 지음, 창비
삶의 일부로서의 죽음
《죽음을 배우는 시간》은 30여 년간 류마티스 내과 의사로 살아오며 수많은 환자의 죽음을 지켜본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가 죽음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한지를 이야기한다. 얼마 전까지 건강하게 지내던 사람이 갑작스러운 자가면역질환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해 며칠 만에 죽음을 맞는가 하면, 불시에 들이닥친 불치병과 몇 년을 사투하다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백일도 되지 않은 아이를 돌봐야 하는 엄마도, 채 피지 못한 청춘도, 삶에 대한 의지가 누구보다 강한 사람도 죽음만큼은 피해 갈 수 없다.
그럼에도 현대 의료 시스템에서는 죽음조차 하나의 비즈니스처럼 다뤄지는 까닭에, 순리에 따른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죽음마저 어떻게든 연장하려 하고, 의식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환자에게 가망 없는 심폐소생술과 응급처치가 이어지는 일도 드물지 않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을 비난하기보다 조용히 되묻는다. 당신은 과연 죽음을 올바르게 대하고 있느냐고. 그리고 죽음을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일부로 인정할 때 삶에 대한 태도 또한 달라질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죽음을 배우는 일은 결국 삶을 다시 보는 일이기에.
▲ 《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 박혜윤, 신성준, 최은경 지음, 아몬드
고통 없이 죽고 싶다는 소망
지난해 넷플릭스에 올라와 화제가 됐던 드라마 <은중과 상연>에서 주인공 상연은 말기 암 진단을 받은 뒤 스위스 행을 결정한다. 그리고 오랜 친구 은중에게 함께 가 달라고 부탁한다. 회복 불가능한 말기 암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생을 마감하기보다 의식이 남아 있을 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은 바로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연명의료로 고통스럽게 삶을 연장하지 않고, 가족에게 돌봄노동의 폐를 끼치지 않으며, 깨끗하게 삶을 마무리하는 죽음은 가능한가.
암 병동에서 중증 질환 환자를 만나는 정신과 전문의, 말기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을 연구해온 신장내과 전문의, 의료인문학 교수, 세 명의 의학자가 함께 쓴 이 책은 현재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생애 말기의 현실을 들추어낸다. 70대 노인이 90대 부모를 돌봐야 하는 문제,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급증하는 치매 환자와 돌봄 공백, 그리고 한국인 열 명 가운데 여덟 명이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현실 속에서 삶의 마지막을 인간답게 지켜 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안락사로 대표되는 조력임종은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조력임종에 대한 입법 요구가 커지는 지금도 저자들은 ‘깨끗하게 사라지는 죽음’은 환상에 가깝다고 말한다. 죽음은 결코 한 사람만의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죽음은 남겨진 가족과 공동체의 슬픔까지 포함한 일이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능한 한 덜 고통스럽게 맞이해야 하는 마지막 풍경이다.
자연으로 돌아간 죽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스콧 니어링이다. 그는 아내 헬렌 니어링과 함께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았고, 백 번째 생일을 앞두고 삶을 마무리하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과일 주스를 마시고, 마지막 일주일은 물만 마시는 한 달의 과정을 거쳐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생을 마감했다. 그의 유해는 화장되어 평생 일구었던 농장에 뿌려졌다. 말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간 삶이었다.
20대에 이 이야기를 접하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때가 되었을 때 더 이상 삶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선택하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는 발상을 해본 적이 없어서다. 어떻게든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처치를 시도하는 현대 의료 시스템에서는 더욱 쉽지 않은 선택이기도 하다.
앞선 두 권의 책은 현대 의료 시스템이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각기 다른 관점에서 보여준다. 죽음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접하다 보면 우리가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삶에서 죽음을 밀어낸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반면 스콧 니어링의 삶은 또 다른 가능성을 떠올리게 한다.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 말이다. 막상 자신의 죽음 앞에서 그처럼 초연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한 번쯤 고민해보는 것만으로도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전과는 조금 달라져 있지 않을까.
글_전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