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많이 낭비되는 자원이자 가장 천대받는 천연자원인 ‘똥’에 얽힌 과학을 탐구하는 『똥: 뜻밖의 보물에 숨겨진 놀라운 과학』(원제: Flush)이 필로스 시리즈 31번 도서로 출간되었다.
똥을 터부시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그 잠재력을 제대로 인식할 것을 제안하는 이 책은, 흥미진진한 취재와 방대한 과학적 지식, 유쾌한 문체로 똥의 가치와 가능성을 생생하고 재치 있게 풀어낸다.
미생물학 박사이자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 브린 넬슨(Bryn Nelson)은 신작 『똥』에서 배설물의 다각적인 면모를 탐구한다. 생태계 순환에서의 똥의 물질적 역할(1장)을 시작으로, 똥에 대한 혐오감의 역사적·문화적 배경(2장)을 살피며, 의학의 혁신(3장)이자 범죄 수사와 고고학의 귀중한 증거(4장)로서 똥의 잠재력을 조명한다.
이어 건강의 지표(5장)와 질병 추적과 방역의 핵심 도구(6장)로서 똥의 가치를 살피고, 배설물을 통해 드러나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국민의 장내 생태계 차이(7장)를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재생 가능한 미래 자원이자 환경문제 해결의 열쇠로서 똥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8-12장)을 제시한다.
우리는 평생 몸 안에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물질을 품고 살아간다. 그 잠재력의 실현을 막는 것은 기술 부족이 아닌 우리의 냉대다. 이제 우리 안에 자리 잡은 뿌리 깊은 혐오감을 뒤집고,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자리 잡은 냄새 나는 챔피언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매일 아침 당신의 똥이 말해 주는 것들
터무니없게 들릴지 모르지만, 당신의 똥은 매일 당신의 건강 상태를 말해 주고 있다. 포도송이 모양과 소시지 모양 똥 중 어떤 것이 더 건강할까? 정답은 소시지 모양 똥이다. 만약 매일 포도송이 모양 똥을 눈다면 변비 초기 단계일 수 있으니 주의하자. 똥의 색깔도 중요한 단서가 된다. 녹색 똥은 음식물이 당신의 대장을 너무 빨리 통과하고 있다는 신호이며, 노란 똥은 지방 소화에 문제가 있음을 나타낸다.
또 한 번 터무니없게 들릴지 모르지만, 똥은 당신의 식단과 생활환경에 대해서도 놀라운 단서를 제공한다. 저소득 국가의 똥은 부유한 국가의 똥보다 평균적으로 두 배 더 무겁다. 도시 지역의 하수에서는 약물 농도가 시골 지역보다 훨씬 높게 나타나며, 고령자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하수는 모르핀, 고혈압 치료제, 항우울제의 농도가 특히 높다.
여전히 터무니없게 들릴지는 몰라도, 현대 의학은 이미 이런 똥의 의학적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의 똥은 건강의 표지로 활용될 뿐 아니라, 전염병의 확산을 추적하고 통제하는 중요한 도구로도 활용되고 있다. 코로나19 당시 하수 검사는 지역사회의 감염 추세를 예측하는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았으며, 폐수 역학은 단 2년 만에 주요 의료 기술로 급부상했다.
『똥』은 대변의 모양을 분석하는 ‘브리스톨 대변 척도’부터, 건강한 사람의 분변을 환자에게 이식하는 논란 많은 치료법인 ‘대변 미생물총이식(FMT)’, 그리고 폐수 기반 역학까지 똥의 의료적 가치를 심층적으로 조명한다.
저자가 말하듯, 사회적 금기 때문에 유방암 환자의 가슴에 대해 침묵해선 안 되는 것처럼, 건강의 중요한 메신저인 똥 역시 거침없이 이야기되어야 할 것이다.
과학이 재발견한 기후위기의 새로운 열쇠, 똥
전 세계 곳곳에서 똥은 이미 귀중한 자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특히 빌 게이츠와 같은 영향력 있는 혁신가들이 물 재활용 사업에 뛰어들면서, 이 분야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적극적으로 제고하고 있다.
브린 넬슨은 『똥』에서 직접 발로 뛰며 이 혁명적인 변화의 현장을 생생하게 취재했다. 미국과 노르웨이의 폐수처리장부터 지속가능한 유기농 농장, 전 세계 곳곳의 물 재활용 시설까지, 『똥』은 과학 혁신의 현재를 생생한 내러티브로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하수에서 에너지를 추출하고 폐기물로 비료를 만드는 기술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하수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바이오가스를 포집해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기술이다. 『똥』에 등장하는 주요 도시의 하수처리장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 기술이 더 이상 실험실 단계가 아니라 실용화 단계에 본격 진입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똥의 활용 가능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황폐화된 토양을 소생시키는 유기농법과 천연 비료, 우주 개발의 새로운 에너지원, 혁신적인 퇴비화 화장실에 이르기까지 그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아끼다 똥 된다”라는 옛말이 있지만, 이제 우리는 똥을 소중한 자원으로 보존하고 아껴서 후대에 전달해야 할 것이다.
혐오의 맹점, 그리고 무심히 떠나보낸 우리 뱃속 천연자원을 위한 변론
우리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통해 우리 항문에서 나오는 것들에 대해 말하거나 깊이 생각하지 않도록 훈련받아 왔다. 똥은 오랫동안 혐오와 기피의 대상으로 여겨졌으며, 이는 단순한 개인적 감정을 넘어 문화적·사회적으로 깊이 뿌리박힌 금기가 되었다. 하지만 브린 넬슨은 똥을 향한 이러한 혐오가 과학적 사실이 아닌 문화적 편견에 기반하고 있을 수 있음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연구에 따르면 엄마들은 자기 아이의 똥 냄새를 다른 아이의 똥 냄새보다 덜 역겹게 느낀다. 연구자들이 기저귀 라벨을 의도적으로 바꿔 붙여도 반응은 동일했다. 이는 피할 수 없거나 함께 살아야 하는 대상에 대한 혐오감이 점차 둔화되는 ‘습관화(habituation)’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이 결과는 혐오 민감도가 높은 사람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에 비추어 봤을 때 더욱 의미심장하다. 실제로 보수 정치인들은 성소수자, 불법 이민자, 유색인종을 배척하는 데 혐오감을 전략적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똥은 인간의 혐오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흥미로운 점은 모든 문화권이 똑같은 수준의 혐오를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부 토착 문화에서는 똥을 자연 순환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농업과 의료에 적극 활용해 왔다.
저자는 “무엇이 당신을 역겹게 하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며 우리의 고정관념에 도전한다. 과학적 호기심과 창의적 발상이 만나는 지점에서 똥은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라,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핵심 열쇠가 될 것이다.
글. 우정남 기자 insight159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