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답을 주는 시대, 아이에게는 직접 경험할 시간이 필요하다”

“AI가 답을 주는 시대, 아이에게는 직접 경험할 시간이 필요하다”

『도파민 학습법』 펴낸 김영훈 교수 인터뷰

『도파민 학습법』 펴낸 김영훈 교수 인터뷰
몸으로 느끼고 스스로 시도하는 배움… 부모는 아이의 ‘스파링 파트너’
 

"얼마 전에 진료실로 한 청소년이 왔는데 자기 증상에 대해 챗GPT한테 물어봤더니 무슨 병이라고 했다며, '이거 맞아요?' 그것부터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진찰을 해보고 검사를 몇 가지 해보긴 해야 되겠지만 그게 맞는 것 같다고 얘기를 해줬죠."

최근 『도파민 학습법』을 펴낸 김영훈 교수(가톨릭의대 의정부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는 진료실에서 마주한 변화로 인공지능 시대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AI에 묻고, 그 답을 들고 전문가를 찾아오는 시대다. 아이들이 지식을 얻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오랜 기간 아이들의 뇌 발달과 학습 동기를 연구하고 교육 현장에서 실천할 방법을 안내해 온 김 교수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직접 경험하는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보를 얻기 쉬워질수록 자기 몸으로 느끼고, 손으로 해보고, 그 결과를 판단하는 기회를 충분히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진료 경험에서도 이를 느낀다고 했다. 30년 간 아이들을 만나온 경험은 정보를 아는 것과 별개로, 눈앞의 상황을 살피고 판단하는 바탕이 된다. AI가 제공하는 정보에서도 어떤 부분을 검토해야 하는지 알아보려면 해당 분야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배움에서도 같은 질문이 남는다.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는 환경에서 이제 아이들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 김영훈 가톨릭대학교 소아청소년과 교수. 성세아이들병원 소아신경발달센터장으로, 대한소아청소년행동발달증진학회 부이사장과 한국발달장애치료교육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제17·18대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장을 역임했다. 최근 『도파민 학습법』을 펴냈다. [사진=김경아]

게임이나 짧은 영상에는 몰두하지만, 책상 앞에서는 좀처럼 의욕을 보이지 않는 아이를 보며 부모는 걱정한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인 김 교수는 그 행동을 이해하는 실마리로 '도파민'을 제시한다. 도파민을 자극과 중독의 언어로만 바라보지 말고, 아이가 무엇에 관심을 느끼고 어떤 경험을 통해 다시 도전하는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그가 공부와 도파민의 관계에 주목한 것은 오래전이다. 2012년 한 방송에서도 이를 설명했다. 당시 공부와 뇌를 주제로 책을 쓰면서 학습 능력 못지않게 의욕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고, 세로토닌과 엔도르핀이 주목받던 때에 의욕의 핵심으로 도파민을 이야기했다. 공부 의욕과 도파민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도파민 학습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그가 다시 강조하는 것은 학습의 주체다.
 

“도파민도 결국 최종적인 것은 자기 주도성이더라고요.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죠.”

도파민이라는 말을 들으면 강한 자극에 끌리거나 무언가에 중독되는 장면부터 떠올리기 쉽다. 김 교수는 그 이미지가 도파민을 이해하는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반복을 통해 익숙해지는 과정도 함께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고 활동적인 아이를 부모가 산만하거나 충동적인 아이로만 바라보는 상황에도 주목했다. 아이의 어려움을 살피는 동시에, 호기심이 향하는 방향과 그 관심을 발전시킬 환경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서 말하는 ‘도파민 신인류’는 이런 외향적이고 개방적인 아이들을 가리킨다. 김 교수는 이런 아이들이 잘 관리되면 오히려 인공지능 시대에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가정에서는 무엇부터 바꿀 수 있을까. 김 교수가 제안하는 출발점은 작고 구체적인 목표다. 책 한 권을 읽으라는 요구 대신 다섯 페이지나 한 챕터를 제시하고, 그것도 어렵다면 한 페이지부터 시작하는 식이다. 줄넘기도 처음부터 30분을 목표로 삼기보다 열 번 돌리는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 수 있다.
 

“아이들이 제일 어려워하는 것은 공부를 시작하는 거예요.”

김 교수 자신도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습관을 갖고 있다고 했다. 한 문장을 쓰기 시작한 것이 더 긴 글로 이어지기도 한다. 의욕이 생기기를 기다리는 동안 할 일을 크게 잡아두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행동으로 시작하는 방법이다.

게임에는 작은 과제를 해결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구조가 있다. 자신의 변화도 점수나 능력치로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이런 요소를 학습에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가 해볼 만한 과제를 제시하고, 해낸 것을 눈으로 확인하게 하며, 다음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지시도 구체적이어야 한다. 김 교수는 ADHD가 있는 아이의 부모에게 ‘1시간 공부해’라고 하기보다 ‘몇 시부터 몇 쪽까지 하라’고 말하도록 안내한다고 했다. 막연한 요구보다 시작 시점과 범위가 분명할 때 아이가 행동으로 옮기기 쉽기 때문이다. 흥미를 느끼는 활동에서 출발하는 것도 그가 제안하는 방법이다.

김 교수는 아이들이 놀이 방법까지 영상으로 익히는 풍경에 주목했다. 예전에는 설계도를 펼쳐 놓고 부모와 함께 블록을 만들었지만, 요즘에는 영상을 보며 따라 한다. 부모의 역할을 보고 배우던 역할놀이도 영상이 대신한다. 그러나 영상으로 익히는 것은 진짜 체험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방법을 아는 데서 실제로 시도하는 데까지 배움이 이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몸을 움직이고 자연을 접하는 활동도 중요하다. 눈앞의 대상을 관찰하고 손으로 만지며 몸의 반응을 느끼는 과정에서 아이는 자신의 감각으로 세상을 알아간다. 태블릿으로 그림책을 읽은 아이는 지식은 얻을 수 있어도 종이 그림책의 색감이 주는 아름다움과 감동은 느끼기 어렵다고 그는 말했다. 실제로 해봤을 때 생기는 차이, 예상과 다른 결과, 다시 시도하며 발견하는 방법도 배움의 일부다.

이때 어른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가 시행착오를 겪을 시간을 허용하는 일이다. 더 빠른 방법과 정답을 알려주기에 앞서, 아이가 무엇을 느꼈고 어디에서 막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효율적으로 결과를 얻는 것만을 목표로 삼으면 그 과정에서 아이가 쌓을 경험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관심 있는 분야에 깊이 빠져보는 경험 역시 중요하다. 김 교수는 아이를 어떤 분야의 ‘덕후’이자 ‘고수’로 키우는 일을 이야기했다. 덕후는 한 분야를 깊이 알고 호기심으로 파고드는 아이, 고수는 경험을 쌓아 숙련된 사람을 뜻한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 반복해서 해보고 막히는 문제를 풀어가는 동안 이해와 숙련이 함께 쌓인다는 설명이다.
 

“창의력은 어떤 분야를 잘 아는 사람이 새로운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김 교수의 설명에서 창의성은 한 분야를 깊이 알아가는 과정과 연결된다. 배운 것을 새로운 상황에 적용해 보고, 결과를 확인하며 방법을 바꾸는 경험이 그 바탕이 된다. AI를 활용하는 시대에도 아이가 자신의 관심을 따라 탐구하고 실제 문제와 씨름해 보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다.

13년 전 브레인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김 교수는 부모가 아이의 ‘스파링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의 성향을 이해하고 성장을 돕되, 아이가 해야 할 일까지 대신하지 않는 부모였다. 그때와 달라진 점을 묻자 그는 스파링 파트너라는 개념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답했다. 당시에는 자녀가 실패하지 않도록 앞서 길을 치워주는 ‘헬리콥터 부모’, ‘잔디 깎기 부모’가 문제였다면, AI가 대신 지식을 찾아주는 지금은 아이가 직접 실패하고 경험하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해결은 결국 아이가 해야 해요. 아이가 경험해야 한다는 의미거든요.”

스파링 파트너는 선수와 함께 연습하지만 선수를 대신해 경기에 나서지는 않는다. 부모도 아이와 목표를 나누고 준비를 도울 수 있지만, 직접 선택하고 시도하는 경험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부모가 앞서 장애물을 치우고 모든 과정을 관리하면 아이가 부딪히며 배울 기회도 줄어든다.
 

▲ 우리 아이 도파민 수준 체크리스트 [사진=김영훈 교수 제공] 
김영훈 교수는 아이가 매사에 의욕이 없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산만하다면, 아이의 성격이나 태도를 탓하기 전에 뇌 속 '도파민 수준'을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모든 아이에게 같은 속도와 방법을 요구할 수는 없다. 아이의 성장을 돕는 일은 부모가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진료 과정에서 아이와 부모를 함께 만나거나 필요에 따라 각각 상담한다고 했다. 아이가 생활하는 환경과 양육 방식, 부모의 불안이나 어려움을 함께 살피기 위해서다. 그러면서도 아이의 문제를 모두 부모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아이의 기질처럼 부모의 양육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AI가 일상에 들어온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배움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관심 있는 것을 직접 만져보고 만들어볼 기회, 자기 몸을 움직이며 감각을 느낄 시간,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다른 방법을 시도할 여유를 마련하는 일이다. 작은 성취는 다음 시도를 향한 의욕으로 이어지고, 반복된 경험은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바탕이 된다.

『도파민 학습법』을 통해 김 교수가 강조하는 자기 주도성도 그 과정에 놓여 있다. 부모는 곁에서 연습을 돕고, 아이는 자신의 경험을 쌓아간다. AI가 빠르게 답을 건네는 시대에도 아이가 직접 느끼고 시도하며 배울 시간은 충분히 주어져야 한다.
 

글. 전은애 기자 hspmak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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