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입시 위주로 돌아가는 학업에 지친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힘마저 잃은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소리가 많이 들립니다.
제 아이도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정구 종목의 체육 특기생으로 운동에만 전념하다가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은 뒤 방황하는 시기를 겪었습니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아득한 기분이 들 만큼 많은 날을 걱정으로 지새웠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좌절감에 빠져 게임만 하던 아이는 우연히 알게 된 대안학교를 스스로 선택했고, 지금은 자신이 정한 진로에 따라 대학 전공 공부를 하며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제 아들이 이렇게 성장하는 데 학교에서 어떤 도움과 돌봄을 받았는지 많은 부모님에게 알리고 싶어서 그간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두고 게임에 빠진 아이
통번역가로 일하는 저는 30대 중반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영어를 배우고 일도 하면서 다른 나라의 문화를 경험했습니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가정에서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국어, 영어, 수학 중심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가고 직장 다니며 평범한 서민으로 산 저는 영국의 학생들을 보며 ‘굳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들이 아주 편하게 학교생활을 하는 것으로 보여서 한국에서 겪은 대학입시 트라우마와 함께 문화충격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대학에 가면 연금 혜택이 줄어든다고 진학을 꺼리는 학생도 봤으니까요.
2004년에 귀국해서 늦은 나이(39살)에 결혼해 첫아들 승민이가 태어났습니다. 승민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정구를 시작해 중학교 2학년까지 국가대표를 목표로 열심히 운동했습니다. 제가 몸이 아파서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도 승민이는 일찍 일어나서 학교에 갔고, 의젓하게 우수선수로 성장했습니다.
중학교도 정구를 하기 위해 집에서 거리가 먼 학교로 입학했어요. 승민이를 출산한 이후 건강이 계속 좋지 않았던 저는 그때까지도 온몸이 아프고 두통이 심해서 승민이한테 엄마로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부분에 대한 미안함이 제 안에 크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승민이는 공부는 뒷전에 두고 정구 훈련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러다가 무릎 부상이 왔고, 결국 정구를 못하게 되어 중학교 2학년 2학기 때 집 근처의 학교로 전학을 하게 됐습니다.
그때 저는 승민이 혼자서 5주 동안 유럽 여행을 하도록 했어요.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면서 자기 생각도 정리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물론 아이 혼자 가는 것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바람대로 승민이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지를 신나게 여행하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이후 승민이는 학교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보다는 오랫동안 했던 운동을 그만둔 허탈감에 빠져서 무기력하게 지냈습니다. 기초학력도 부족한 상태여서 수업 시간에는 책상에 엎드려 자고, 방과 후에는 게임에 몰두하는 날들이 이어졌죠.
걱정이 컸습니다. 승민이는 갈수록 게임에 빠지고, 가정에 큰 어려움까지 닥치면서 건강도 더 나빠졌어요. 정말 악몽 같은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그런 와중에 오랜만에 나간 대학 동창 모임에서 김나옥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후 벤자민학교) 교장 선생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벤자민학교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들려주었고, 저는 집에 가서 승민이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선택은 아이가 하는 대로 따를 생각이었는데, 승민이는 얼마 뒤 벤자민학교에 지원하겠다며 스스로 준비를 시작했어요.
대안학교 선택을 망설이게 하는 ‘자퇴’의 장벽
저도 틀에 박힌 입시 공부에 매몰돼 성적으로 아이들을 줄 세우는 학교가 아닌, 벤자민학교처럼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가진 학교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벤자민학교에 입학하려니 정규학교에서 자퇴를 해야 했죠. ‘자퇴’라는 단어가 마음을 무척 착잡하게 했습니다.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뭔지 모를 불안이 밀려와 저 자신을 괴롭혔어요.
승민이의 고등학교 선생님도 자퇴를 말리면서 졸업 후에 좋은 곳으로 취업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승민이는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고, 결국 벤자민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면서도 아이의 결정을 받아들였어요. 물론 남편의 협조도 있었죠.
아이의 황량한 마음을 채워준 선생님
벤자민학교에 입학한 초기에 승민이는 매일 늦잠을 잤습니다. 아이들이 대부분 초기에는 그렇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꾹 참았지만, 그러다가도 이 중요한 청소년기에 너무 방종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화가 치밀 때도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만 학교에 가니 자유로운 시간이 너무 많아서 시간을 무작정 소비하는 듯한 느낌도 받았습니다. 외국어 공부든 뭐든 하도록 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하며 혼자 애를 태우기도 했죠.
그런데 승민이가 점차 안정되어 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변화 뒤에는 승민이를 담당한 조민규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아이와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며 친형같이 곁을 내주는 선생님의 모습에 제가 감동받은 적도 있어요.
승민이는 어릴 적부터 말수가 적었고, 저와도 늘 단답식으로 얘기했습니다. 무슨 일이든 혼자 삭히는 편이었고요. 이렇게 된 데는 제 책임이 큽니다. 제가 일한다고 바빴고, 가정에도 소홀했어요.
승민이가 어릴 때 “엄마, 같이 자자”하고 부르면 “응, 조금 있다 갈게”라고 하고는 제 일을 계속했어요. 아이가 원할 때 같이 있어 주지 못한 부분이 후회가 많이 됩니다. 밖에서 강의하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되었고, 단답식 대화로 불평 섞인 마음을 남편과 승민이에게 쏟아냈어요. 승민이와의 대화는 없었고, 몸은 점점 더 아파왔죠. 가족 간의 대화가 끊긴 집안은 삭막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렇게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던 승민이를 조민규 선생님은 다정하게 품어 아이의 황량한 마음을 채워주셨어요.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만약 승민이가 정규 고등학교를 다녔다면 성적에 열등감을 느끼며 많이 괴로워했을 거예요.
그런데 진정한 선생님을 만나는 행운을 얻은 것이죠. 승민이처럼 벤자민학교 학생들은 진정 선생님 복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벤자민학교의 자율적인 프로젝트 방식의 수업과 아르바이트 체험은 승민이에게 특별히 더 도움이 됐습니다. 벤자민학교 학생들은 일정 기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르바이트 체험을 통해 성실한 생활 습관과 함께 책임감을 기르고, 경제 감각을 깨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학교는 알려 왔습니다.
승민이는 제주도 신라호텔에서 9개월 동안 최연소 직원으로 일하게 됐습니다. 어느 날 “제주도의 구름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는 승민이의 말을 듣는데 좀 울컥했어요. 호텔 일을 끝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미처 공부할 새도 없이 검정고시를 봤는데, 어찌된 일인지 합격을 했습니다.
졸업 후에도 이어지는 연대
승민이는 크루즈학과가 있는 대학을 선택해 진학했습니다. 그 또한 승민이의 전적인 선택입니다. 제주도에서 일할 때부터 일찌감치 자신의 진로를 정하고, 그 길로 한 걸음씩 가고 있다고 합니다.
벤자민학교 다닐 때 9박 10일 국토종주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는데, 이 체험이 아이에게 두고두고 소중한 자산이 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한계 상황을 넘어서는 체험을 하면서 몸에 깊이 각인된 무엇인가가 있나 봅니다.
졸업한 이후에도 벤자민학교 국토종주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승민이는 일정을 맞춰 참여합니다. 후배들과 함께하는 시간이자 조민규 선생님을 만나는 기회이기도 하겠죠.
벤자민학교의 큰 장점 중 하나가 이러한 졸업 후의 네트워크라고 생각합니다. 전국의 벤자민학교 학생과 선생님들이 캠프와 워크숍을 함께하면서 교류하고, 졸업 후에도 인연을 이어갑니다. 서로 소통하며 지낼 뿐 아니라 전국에 있는 친구들의 집을 오가며 연대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승민이가 자퇴한 고등학교 선생님이 전화로 승민이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근황을 물었습니다.
교육청에서 자퇴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년 하는 조사라고 하더군요. 있는 그대로 답했습니다. 벤자민인성영재학교에 2년 다녔고, 제주 신라호텔에서 3개월 아르바이트한 뒤에 최연소 직원으로 9개월 일하다가 검정고시 보고 대학 가서 크루즈 전공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고. 그 뒤로는 전화가 오지 않습니다.
승민이는 지금은 크루즈승무원 학과에 입학해서 세계 최고의 선사에서 일하는 것을 목표로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파트 타임으로 크루즈 여행을 하면서 용돈도 벌고 있습니다. 승민이가 다니는 학교는 한국에서 최초로 크루즈학과를 만들어서 세계 최고의 선사에 3백 명 넘게 취업시킨 학교입니다.
저도 다음 달에 1회 크루즈 자격증 시험에 도전합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앞으로 크루즈 산업 분야에서 많은 기회가 열리지 않을까 전망해 봅니다.
아이들을 인성영재로 성장하게 하는 힘
벤자민학교에 관해 무엇보다 자랑하고 싶은 부분은 교육공무원으로 오래 일하시다가 도전적인 교육 실험의 성공을 위해 헌신하고 계신 김나옥 교장 선생님과 선생님들입니다. 학생들이 저마다의 자질을 빛낼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시는 것을 보았고, 우리 아이도 그 보살핌 속에서 다시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들께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벤자민학교에서 아이들이 선생님과 부모님의 지지와 응원을 한껏 받으며 인성영재로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이 널리 퍼져나가면 좋겠습니다.
벤자민학교는 공부에 지쳐 생각하는 힘을 잃어가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꿈을 키우는 곳입니다. 그 수혜를 입은 승민이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기를 바라고, 벤자민학교가 그 비전만큼 크게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글_최윤자 벤자민인성영재학교 졸업생 김승민 군의 어머니. 통번역과 영어 문화해설사 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