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쉬기의 미덕 [이미지=게티이미지 코리아]
‘브레인 포그’라는 말을 처음 접한 것은 코로나 시기였다. 코로나를 앓고 난 후에, 머릿속이 멍하고 기억력이 흐려지고 예전만큼 두뇌 활동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를 사람들은 ‘브레인 포그’라고 불렀다. 마치 뇌에 안개가 낀 것처럼 멍하고 생각과 표현이 또렷하지 않은 상태.
이 단어의 뜻을 알고 나서 조금 어리둥절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상태를 코로나 후유증으로만 겪었다는 말인가? 물론 나도 코로나 감염 이후에 비슷한 후유증을 겪기는 했다. 하지만 이 일련의 증상들은 코로나 이전에도 내게 늘 따라다니던 것들이었다.
브레인 포그의 나날
한 유튜버가 성인 ADHD 진단을 받아 약을 복용하고 나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약을 먹은 첫날, 머릿속이 놀랄 만큼 고요해졌는데, 다른 사람들은 약을 먹지 않고도 늘 이런 상태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는 것이다. 상황은 다르지만, 내 심정이 꼭 그랬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말을 하다가 다음 말이 잘 떠오르지 않고, 충분히 자도 피곤한 느낌이 계속되는 증상이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질적인 증상이 아니라 나 같은 일부의 문제였다니!
고백하자면 내 뇌 속 풍경은 대체로 런던의 날씨 같았다. 구름이 잔뜩 끼어 흐리거나 비 오기 직전의 춥고 을씨년스러운 풍경. 그도 아니면 스모그가 잔뜩 낀 매캐하고 뿌연 거리를 정처 없이 걷는 것 같았다. 자도 자도 개운하지 않고, 하루에도 몇 번씩 낡은 기계처럼 방전됐다. 그럴 때면 커피를 몇 잔씩 마시거나 책상에 엎드려 토막잠이라도 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글쓰기는 내 평생의 업이었는데,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글쓰기 모드로 진입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오랜 경험으로 터득한 글쓰기 모드 루틴이 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머리가 멍할 때는 아예 10분 정도 자고 일어나서 글을 쓴다. 그도 아니면 글쓰기 모드로 진입할 때까지 마중물 올리듯 텍스트를 읽는다.
심할 경우 작업 시간의 절반 가까운 시간을 마중물 올리는 데 써야 할 때도 있었다. 다섯 시간을 작업한다면 초반 한두 시간을 독서에 할애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야 비로소 글 작업이 가능한 뇌파 상태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렇게 투미하고 집중에 취약한 뇌를 길들이느라 평생을 고군분투하며 살아왔는데, 웬걸, 최근 몇 년 새 내 뇌 속 풍경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뿌연 안개가 걷히고 ‘대체로 맑음’이 디폴트가 된 것이다.
편안한 호흡만으로는 안 된다
뇌 속 풍경을 바꾼 일등 공신은 바로 호흡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40년 넘게 참선 수행에 정진해온 수행승에게 호흡법을 전수받을 기회가 생겼다. 참선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하는 호흡을 중심으로 습관 몇 가지를 바꿨을 뿐인데, 뿌옇던 뇌 속 풍경이 맑게 개고 고질적인 브레인 포그 증상이 개선되었다. 어째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본능적으로 호흡을 한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흉부의 확장과 위축, 횡격막의 오르내림에 따른 대기압과 폐 압력의 차이로 생물학적인 의미의 호흡이 이뤄진다. 하지만 뇌 기능을 향상시키는 수준으로 호흡 능력을 끌어올리려면 평소에 별 생각 없이 하는 얕은 호흡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잘 알다시피 뇌 건강의 핵심은 뇌에 산소와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해 주는 데서 시작한다. 뇌에 직접적으로 산소를 주입할 방도는 없으므로 폐를 통해 최대한 많은 산소를 들이마신 다음, 이 산소를 혈액에 녹여 뇌에 잘 공급해 줘야 한다. 말하자면 뇌에 충분한 산소를 공급해 줄 수 있는 호흡 습관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수행승의 첫 번째 호흡의 비밀은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횡격막과 가슴의 근육, 늑골과 쇄골까지 하나가 되어 움직일 정도로 크고 깊게 호흡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횡격막 근육을 잘 써야 한다. 횡격막은 호흡의 80퍼센트를 담당하기 때문에 횡격막을 최대한 늘이고 줄이면서 호흡을 하면 산소 흡입과 이산화탄소 방출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어느 정도로 깊은 호흡인가 하면, 등산을 할 때 호흡이 가빠져 숨을 최대한 몰아쉬고 내쉴 때처럼 깊게 호흡해야 한다.
산소포화도를 높이는 호흡의 기술
하지만 횡격막을 아무리 크게 움직여서 호흡한다고 해도 산소가 혈액에 충분히 녹아들지 않는다면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횡격막 호흡을 하되, 동시에 산소포화도를 높일 수 있는 방식의 호흡이 필요하다. 산소포화도란 혈액 속에서 헤모글로빈과 결합한 산소의 비율을 말하는데, 산소포화도가 높을수록 우리 몸에 흡수되는 산소량이 많아지고 당연히 뇌에도 충분한 산소 공급이 이뤄진다.
그렇다면 어떤 호흡이 산소포화도를 높일 수 있을까? 2013년에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에서 노년 여성들을 대상으로 호흡명상을 3분간 한 다음 혈중 산소포화도를 측정한 결과, 단지 3분간의 짧은 호흡만으로도 혈중 산소포화도가 평균 2.6퍼센트 포인트 높아졌다고 한다. 이는 호흡명상 없이 측정한 통제집단(0.06퍼센트 포인트)과 비교했을 때, 40배 이상 높은 수치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명상을 할 때의 호흡이 헤모글로빈과 결합하는 산소의 비율을 높일 수 있다는 말이다.
명상이 뇌에 미치는 정서적, 물리적 영향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있다. 긍정적인 정서와 관련된 뇌 영역인 좌측 전전두엽이 더 활성화되며(존 카밧진과 리차드 데이비슨 연구), 뇌의 바깥층인 대뇌피질의 두께가 두꺼워진다(사라 라자르 연구, 매사추세츠종합병원). 미국 마운트시나이병원 아이칸의대 연구진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명상이 감정과 기억을 관장하는 뇌의 심부 영역인 편도체와 해마의 뇌파 변화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명상을 할 때 일어나는 몸의 변화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호흡이다. 명상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얕고 거칠던 호흡이 느리고 깊어진다. 내면으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호흡도 미세해지고 고요해진다. 결과적으로 명상을 할 때의 느리고 깊은 호흡이 산소포화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똑같은 심호흡을 하더라도 등산이나 운동을 할 때의 짧고 거친 호흡보다 명상을 할 때의 느리고 고요한 호흡이 산소포화도를 높인다고 한다.
그러니 횡격막 근육을 써서 크고 깊은 호흡을 하되, 이 호흡을 되도록 느리게 가져가는 것이 뇌에 산소를 전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느린 호흡은 자율신경계를 안정시키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 수치를 낮춰 스트레스 반응을 완화하는 데도 효과가 있다.
호흡의 지복점에 이르기까지
깊고 느린 횡격막 호흡에 포인트를 두고 하루에 한 시간을 떼어내어 호흡을 한 지 이제 3년이 흘렀다. 그동안 내 뇌는 고질적인 브레인 포그 상태를 벗어나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집중도를 끌어올릴 수 있게 되었다. 감정에 쉽게 휘둘리지 않고 관조하는 힘도 생겼다. 우울감이 걷히고 불안 증세 또한 사라졌다.
지나고 나서 보니 이러한 상태에 이르기 위한 시행착오도 물론 있었다. 호흡을 훈련하던 초기에는 횡격막 근육을 써서 최대한 크고 깊은 호흡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간과했다. 오래전에 단전호흡을 배울 때, 욕심으로 호흡을 하면 안 된다는 주의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호흡을 한계까지 밀어붙이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는 데 치중했다.
그런 호흡만으로도 처음에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호흡을 하면 정신이 맑고 또렷해지던 초기와 달리 어느 순간 수마에 빠지거나 멍한 상태로 앉아 있는 날들이 늘어갔다. 어느 단계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면서 그저 편안하기만 한 상태,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다.
불교나 선도에서는 이런 상태를 ‘무기공’이라고 한다. 없을 무無에 일어날 기記, 무기공無記空은 공에만 집착한 나머지 고통도 없고 생각도 없는 상태에 빠지는 것을 의미한다. 명상이나 호흡을 하는 사람 중에도 이 상태가 좋은 줄 알고 자꾸 편안한 상태에 머물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무기공에 빠지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한다. 편안한 호흡만으로는 궁극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편안한 상태에 머물지 않고 깊고 느린 호흡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릿속 안개가 걷히면서 지복점에 도달하는 순간이 온다. 마치 마라톤 선수가 한계치까지 호흡을 밀어붙이며 계속 달렸을 때 러너스 하이에 도달하는 것처럼.
‘지복점’이라는 말은 원래 식품 산업에서 쓰이는 말로, 소비자가 최대의 만족도를 느끼는 소비점을 의미한다. ‘단짠단짠’의 풍미가 가득한 버터 소금빵이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맛볼 때 뇌가 느끼는 최상의 만족감 같은 거라고 할까. 식품 제조업체들은 제품의 당도와 염도, 지방 함량 등을 끊임없이 조합하여 소비자가 가장 맛있다고 느끼는 조합을 찾는 데 온 힘을 쏟는다.
가부좌로 앉아 호흡을 하다 보면 호흡에도 이런 지복점이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호흡이 몸에 가득 차 굽었던 어깨가 펴지고 늑골이 열릴 때,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에너지에 꼬리뼈가 세워지고 척추 하나하나가 순차적으로 펴지면서 전체적인 몸의 균형이 이뤄질 때, 온몸이 이완되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 같은 만족감이 퍼져나갈 때, 비로소 호흡의 지복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뇌가 반응하는 자극적인 맛을 찾아 식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처럼 호흡의 지복점을 다시 맛보고 싶어서 자꾸 좌복 위에 앉게 된다. 전두엽을 활성화해 뇌 기능을 높이고 편도체를 조절해 감정을 다스리는 따위의 효용 가치 때문이 아니라 그저 호흡하는 순간에 머물고 싶어서, 호흡 속에서 대면하는 내밀한 고요가 소중해서 호흡을 계속하는 것이다.
손에 잡히는 실리와 가치가 뇌를 움직이는 동력인 세상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뚜렷한 이익이 없어도 꾸준히 지속하게 하는 힘, 숨쉬기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 한다.
글_전채연
출판 기획자이자 작가. 쓴 책으로는 《스님의 호흡법》, 《우리 뇌는 그렇지 않아》, 《휴맥스, 다시 벤처 정신을 말하다》, 《박지성처럼 꿈꿔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