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향이 있다는 것은 갈 곳이 있고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사진_게티코리아)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다고 한탄하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어른의 자격이 무엇이길래 유례없이 고령화한 사회에 어른이 없다는 걸까.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사람의 도리,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도리를 밝게 깨우쳐주는 존재이다.
한 다큐멘터리 방송에서 이런 어른 한 분을 만났다. 경기도 여주에서 1만 제곱미터의 뜰을 홀로 가꾸며 책의 집 ‘여백서원’을 지은 독문학자 전영애 선생이다. 선생은 대학을 은퇴할 무렵 ‘사람들에게 내어주기 위해’ 이 공간을 마련했다고 한다.
“거창하게 ‘공동체의 이상’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고, 세상이 너무도 각박해서, 아끼는 귀한 젊은이들마저 부대껴 마모되지 않기를 소망했다. 그런 이들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곳, 잠시라도 숨 돌리고, 자기도 돌아보고 세상도 돌아보는 그런 자리를 하나 만들고 싶었다. 저 맑고 귀한 사람들이 저도 살고 남도 살리는 지혜를 깨쳐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여백서원 한쪽에는 ‘나무 고아원’이 있다. 척박한 땅이나 좁은 틈바구니에 자리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나무를 선생은 이곳으로 옮겨 심는다. 꺼칠하니 모양 없던 나무도 양지바른 새 보금자리로 옮겨오면 기운이 오르며 가지가 뻗고 줄기가 굵어진다. 사람에게나 나무에게나 한 결의 마음을 쓰는 선생에게서 밝은 도리를 배운다.
선생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괴테 연구자이다. 2011년 독일 바이마르 괴테학회에서 수여하는 ‘괴테 금메달’을 수상했고, 괴테의 모든 저서를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괴테가 60년에 걸쳐 쓴 역작 《파우스트》의 2019년도 한국어 번역본은 전영애 선생의 역작이기도 하다. 선생은 이 방대한 저작에서 가장 중요한 문구로 꼽는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는 구절에 관해 자신의 책에 이렇게 썼다.
“지향이 있다는 것은 갈 곳이 있고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목표가 있는 한 방황한다니, 갈 곳이 있기에 길을 잃는다니. 뒤집어보면 지금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은 곧 갈 곳이, 목표가 있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방황하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겠나. 그런데 그 방황이 바로, 목표가 있고 지향이 있기 때문이라니! 참으로 큰 위로가 아닐 수 없다.”
심안이 열린 파우스트가 상상했던 공동체의 터전. 그 꿈이 전영애 선생에게 옮겨왔고, 여백서원으로 모두에게 주어졌다. 서원 뒤편 언덕에 놓인 돌판에는 괴테의 시구가 적혀 있다.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 내가 살아 있는 것, 알게 되었네’
후광이 비칠 만큼 고양된 순간을 살아야 할 수 있는 고백인데, 천천히 여러 번 읽으니 묘하게도 시구가 마음을 고양시킨다. 이곳에 온 이들에게 전하는 선생의 세심한 선물일 것이다.
밝은 도리를 깨우쳐주는 어른을 만날 때 내 안의 아이는 팔을 벌려 그 등에 업히려 하고, 또 다른 나는 그를 안는다. 고맙고 기뻐서.
글_방은진《브레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