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 아버지

안중근의 아버지

안중근 콤플렉스 힐링 16편

▲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
나는 머리가 어수선해졌다. 나는 노산 선생과 보름달 무당의 집에 도착하였다. 그의 집이 마을에서 떨어져 있었으므로 굿을 집에서 하였다. 오늘 칠성거리와 대감거리를 할 무당이 천안에서 와 있었다. 그리고 피리와 다른 악사가 와 있었다. 경무經巫도 한 사람 와 있었다.    
 
보름달 무당이 산천거리 한 거리 하고 바로 천안에서 온 무당이 칠성거리와 대감거리로 들어갔다. 천안 무당은 내가 궁금히 여기는 보름달의 성수이자 내 어머니의 외가 쪽 할머니를 불러내어 내게 접신시켜 주었다. 나는 내 몸에 무엇인가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자 목소리가 변하더니 나도 모르게 저절로 말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어떤 분이 오셨는지 말씀하시지요.”
 
보름달 무당이 내게 말하였다. 
 
“그대가 고를 풀어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그의 고를 풀어주지 않으면 말하지 않겠다.”
 
내 몸에 들어온 영이 말하였다.
 
“누구의 고를 풀어달라고 하시는 말씀인가요?”
 
보름달 무당이 물었다.
 
“그의 몸에 고관대작들이 씌어놓은 반역의 혐의가 있다. 이 혐의를 풀어주어야 해.”
 
무엇인가 내 몸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들어오신 분은 누구십니까?”
 
보름달 무당이 물었다.
 
“내 이름은 안태훈安泰勳이다.”
 
내가 안중근 의사 부친의 함자를 말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고를 풀어드리겠습니다.”
“이분의 생전에 해결되지 않은 사건이 하나 있다. 미묘한 시국사건이야.”
 
노산 선생이 말하였다.
 
“어떻게 풀어드리면 되겠습니까?”
 
보름달 무당이 물었다.
 
“삼심재판을 했으나 혐의가 풀리지 않아 나는 중죄인이 되어 있다.”
내가 『안응칠역사』를 읽으니,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었다.
 
1994년 안중근이 16세 되던 해에 동학당이 봉기하였다. 동학당의 패잔병들이 해주로 쳐들어왔다. 이들은 화적이 되어 있었다. 그 우두머리가 원용일元容日이었다. 그의 도당이 2만 명이나 되었다. 그들은 군현郡縣을 횡행하면서 관리들을 죽이고 백성의 재물을 약탈하였다.
 
그가 사는 곳은 지형이 험준하여 논밭이 감추어져 있고, 경치가 아름다웠다. 안중근의 마을에 여러 호의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뾰족 성당도 있었다. 성당의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서양인 신부가 8명이나 있었으니 대단한 성당이었다. 그 성당의 주임신부가 한국천주교사에 이름을 남긴 독일인 홍석구洪錫九(빌렘)였고, 그 외에 프랑스 인 곽원랑郭元良(르각) 신부도 있었다. 
 
원용일이 이끄는 동학당 패잔병이 신천에서 관아를 습격하여 백성의 재물을 약탈하였다. 청계동에도 반군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므로, 마을사람들은 전전긍긍했다. 
 
해주 감영은 안태훈에게 의병을 일으켜 동학 패잔병을 소탕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안태훈은 주변 마을에 격문을 돌렸다. 지원자들이 모여들었다. 포수들을 모으고 처자들까지 방어군에 편성시키니, 청계동을 방어할 수 있는 인원이 70여 명이 되었다.   
 
때는 12월, 겨울바람이 청계동 골짜기에 몰아쳐 불어왔다. 안태훈은 병력을 배불리 먹인 후에, 마을 입구에 배치했다. 포수들에게 각각 지킬 곳을 지정해 주었다. 몸을 숨기고 싸울만한 장소였다.
 
드디어 동학당 패잔병이 청계산 마을을 공격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색의 깃발이 삭풍에 펄럭이고 창과 칼이 햇볕에 번뜩거렸다. 북소리, 호각소리, 고함이 하늘과 땅을 흔들었다. 대장이 된 자가 깃발을 앞세우고 말을 타고 있었다. 그들은 대장의 주술에 따라서 움직이는 이상한 부대였다. 
 
청계산 마을의 부대는 저들의 기세가 자못 하늘을 찌를듯하여 겁을 집어먹고 감히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장이 주술을 잘못 외운 것일까? 갑자기 동풍이 불어 닥치고 비가 쏟아져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겨울비가 몸을 적시니 온몸이 얼어붙고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피아간에 싸울 형편이 되지 못하였다. 전의는 고사하고 추위를 방비할 방도를 찾아야 하였다. 그들은 10리쯤 떨어진 마을로 철수하였다. 하늘의 도움이었다. 
 
그날 밤에 안태훈이 여러 장수와 의논했다. 야간에 적을 무찌르자는 데에 합의를 보고 명령을 내렸다. 
 
“만일 내일 앉은 자리에서 적병의 포위공격을 받게 되면 적은 군사로 많은 적군을 대항하지 못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오늘 밤에 먼저 나가 적병을 기습하면 승산이 있다.”
 
닭이 울자, 정병 40명을 뽑아 출발시키고, 남은 병력은 청계동을 수비하게 하였다. 안중근은 정병 40명 가운데에 뽑혔다. 그는 선봉이 될 것을 자원했다, 지원자가 모두 7명이었다. 
 
그들은 선봉 겸 정탐독립대偵探獨立隊가 되어 주위를 수색하면서 전진했다. 드디어 적병 대장소大將所 가까이 다가갔다. 
 
숲에 숨어서 적진의 형세와 동태를 살펴보았다. 적병은 야영하고 있었다. 깃발이 세찬 바람에 펄럭이는데, 불길이 하늘에 치솟아 대낮 같았다. 그러나 사람과 말이 소란하여 도무지 기율이 없었다. 오합지졸이었다. 
 
“만일 적진을 공격하기만 하면 반드시 큰 공을 세울 것이다.”
 
안중근 의사가 동지들을 둘러보며 말하였다. 
 
“어찌 얼마 되지 않은 적은 군대로서 수많은 적을 대적할 수 있겠는가?”
 
동지들이 두려워했다. 
 
“오합지졸이니 걱정할 것 없다. 병법에 이르기를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고 하였다. 내가 적을 보니, 함부로 모은 질서 없는 군중이라, 우리 일곱 사람이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한다면 저런 난당亂黨은 비록 백만 대중이라 해도 겁날 것이 없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았으니, 뜻밖에 쳐들어가면 파죽지세破竹之勢가 될 것이다. 그대들은 내 방략대로 쫓아라.”
 
안중근 의사가 말했다. 동지들이 모두 그의 뜻에 따르기로 하였다. 
 
“일제히 사격하여 기선을 제압하고 공격한다. 본대가 오면 곧 응원이 될 것이다.”
 
16세의 대장이 내리는 명령이었다.
 
“사격하라.”
 
안중근 의사의 명령 한 마디에 전원이 대장소를 향하여 일제히 사격을 퍼부었다. 총성은 벼락처럼 진동하고 탄환은 우박처럼 쏟아졌다. 적병들은 기습에 대비하지 못한 상태로 있다가 손에 무기를 들지 못한 채 서로 밀치며 밟으며 산과 들로 흩어져 달아났다. 안중근 의사의 소부대는 그들을 추격하였다. 
 
이윽고 동이 터왔다. 주위가 밝아지자, 그제야 그들은 소수의 병력에 농락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대부대가 소수의 부대에게 농락을 당했으니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선봉정탐독립대를 포위하여 공격해 들어왔다. 소부대는 이리 쏘고 저리 쏘고 좌충우돌해 보았으나 몸이 빠져나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형세가 위급했다.
 
이때 등 뒤에서 갑자기 총성이 크게 울리며 한 부대의 군사들이 나타났다. 그들이 쏘며 달려 나오니, 적군들이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달아났다. 공격해 온 부대가 본진의 후원병력이었다. 두 진이 합세하여 추격하자 적병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멀리 도망쳤다. 적병들은 다시 공격하지 않았다. 
 
적병은 수십 명의 사상자를 버렸다. 그러나 의병들은 아무도 상한 자가 없었다. 전리품을 거두니, 군기와 탄약이 수십 바리(타馱)요, 말도 많았고, 군량이1천여 포였다. 
 
이때 일본인 쓰스키(영목玲木)이라는 자(계급이 대위였다)가 군대를 이끌고  지나가다가 이 광경을 보고 서신을 보내어 축하해 주었다. 의병들은 하늘의 은혜에 감사하고 만세를 3번 부른 후에 청계동에 개선했다. 
 
안태훈은 관찰부官察部에 급히 승전보를 올렸다. 이후로 적병은 안태훈의 의병부대를 두려워하여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안중근의 의병으로서의 명성이 황해도 일대에 퍼졌다. 미국의 한 선교사가 1894년 황해도 서북지방의 해변 가까이에 있는 한 마을에서 7개월 동안 머물며 그 지방에 출몰했던 동학군의 움직임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동학군의 영도자들은 말을 타고 깃대를 휘날리며 북과 징을 울리고 다녔다. 총과 창칼로 무장한 그들은 그러나 그들의 영도자의 주술을 믿는 것 같았다. 1894년 12월에 수천 명에 이르는 동학군이 해주로 향했을 때, 해주에 수십 명의 일본군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일병의 탄환이 그들의 동료를 쓰러뜨렸을 때 그들은 도망쳤다. 일본군은 부상자가 하나도 없었는데, 동학군은 수십 명이 들판에 쓰러진 채 버려졌다. 12월 말경에 해주읍은 평온상태로 돌아갔다. 새로운 지방장관이 부임하였다. 일본군에 몰린 동학군은 그곳 관아와 민가에 불을 질러 태웠다. 3월 말일 경에는 강화병이 해주로 올라와 동학군을 소탕하게 되어 동학군은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
 
 
ⓒ 브레인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 뉴스

설명글
인기기사는 최근 7일간 조회수, 댓글수, 호응이 높은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