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주경 독립기념관장은 삼일절을 앞두고 "독립운동가를 통해 인성교육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사진=독립기념관 제공)
천안(天安)은 하늘 아래 편안하다는 곳이다. 땅도 편안하고 사람도 편안하니 이보다 좋은 지명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96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유관순 열사가 천안 병천 아우내장터에서 3·1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아우내장터는 이 땅의 평화를 짓밟은 일제에 굴복하지 않은 조국의 독립정신이 서린 곳이다. 지난 1987년 국민성금으로 독립기념관이 천안 흑성산 자락에 건립됐다. 매년 150만 명이 찾는 성지(聖地)라고 할 수 있겠다. 광복 70주년을 맞는 올해 삼일절을 앞두고 윤주경 독립기념관장에서 인성이야기를 들었다.
- 10대 독립기념관장으로 취임한 지 6개월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 이사, 독립기념관 이사를 역임했습니다. 밖에서 본 독립기념관과 안에서 본 독립기념관의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관장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 공직인지 실감하고 있습니다. 전에 비상임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도 국민성금으로 지은 독립기념관에 대한 자부심이 컸습니다. 관장으로 취임하면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 관장으로서 처음 맞는 삼일절 행사가 아닌지요?
“삼일절은 독립기념관으로서는 광복절과 더불어 중요한 기념일입니다. 독립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도 마다치 않으셨던 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기며, 찾아주신 분들과 함께하고자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몇 가지만 말씀드린다면, 관람객들이 주로 다니시는 동선에 태극기 700여 개를 이용하여 110m에 달하는 태극기 터널을 조성할 예정입니다. 가족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행사로 독립투사 고문체험과 3‧1 만세운동 재현행사, 1,919년을 기념하여 1,919명의 명예 독립운동가를 온라인으로 모집하여 온 겨레의 화합을 기원하는 대형 비빔밥 만들기 행사 등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더불어 공군과 협업행사인 블랙이글스 에어쇼도 새롭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 신문사도 매년 삼일절마다 국학원과 함께 전국 16개 시도에서 태극기 플래시몹 행사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10년 이상 해온 행사인데, 알고 계시는 지요?
“네 알고 있습니다. 함께 마음을 모아 대형 태극기를 만들고, 태극기 댄스를 하는 등 다양한 플래시몹 공연을 볼 수 있어 기뻤습니다. 행사가 확산되어 나라를 사랑하고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독립기념관은 관련 기관이나 시민단체와의 MOU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학원과도 2010년 협약을 맺었더군요. 이들 단체와의 협력은 어떻게 발전해나갈지 궁금합니다.
“체결기관과는 지속적으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국학원과는 독립기념관의 전시관 재개관 행사 등 기념행사에 주요 인사 초청 때 국학원 관계자를 초청하였고 국학원 관계자의 기념관 관람을 지원하는 등 긴밀한 교류협력을 진행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전시, 교육, 학술, 연구 등 각 부문에서 양 기관의 상호교류 활동을 계속해 나갈 생각입니다.”
-‘인성(人性)’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침몰 이후 인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인성회복국민운동도 있었습니다. 12월에 인성교육을 의무로 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고 올해 7월 발효됩니다. 이에 대해 독립기념관에서 준비하는 행사나 교육 등이 있는지요?
“현재 독립기념관에서 제공하는 행사나 교육프로그램은 모두 넓은 의미에서 독립운동이나 독립운동가를 통해 배우는 인성 교육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가의 생애와 고난의 삶을 이해하고 체험하는 교육과정을 통해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공존 공생을 위해 자신의 안락한 삶을 뒤로하고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의 삶이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인성’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인성은 가정교육에서 시작해야한다고 신년 기획을 진행했습니다.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로서 어린 시절이 궁금합니다.
“'윤봉길 의사의 손녀'로 살기보다 '자연인(自然人) 윤주경'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주위에서 수군거려도 내 입으로 '우리 할아버지는 윤봉길 의사다'고 말해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드러내면 그에 따르는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사실 독립운동가 집안이라고 자부심을 가졌을 거라고 많이 생각하지만 그러려면 제 삶이 누구보다 모범적이어야 하는 데 그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솔직히 떨쳐버리고 싶은 부담 같은 것이었습니다. 어릴 적에 우리 집은 고향 예산을 떠나 서울로 이사 와서 살았는데, 한 번은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는 제가 신기해서 엄마에게 소개한다고 '누구 손녀래'라고 말하자, 친구의 어머니는 친구를 밖으로 불러내어 '저런 애와 왜 노니?' 하시는 것이었어요.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당시에 우리 같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남에게 손을 내밀고 공짜만 바라는 거로 이야기하는 분들이 간혹 있었기 때문이라 추측해봅니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팔아서 사는 사람 같은……. 그때 기억은 지워지지 않았고, 누구의 손녀로 산다는 것은 스스로의 삶을 늘 살피고 모범이 되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늘 조심스러웠고 선뜻 드러내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 했습니다.”
- 올해가 광복 70주년이라서 어느 해보다 독립기념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나라는 되찾았지만 정신은 찾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홈페이지에서 ‘민족의 혼이 살아 숨 쉬는 독립기념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인사말을 하셨는데요. 우리 민족의 얼, 혼, 정신을 인성교육의 일환으로 알려져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사회는 남보다 잘 살기 경쟁, 앞서기 경쟁, 출세하기 경쟁 등 경쟁 만능사회가 되었습니다.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고 나누며 살고 베풀며 사는 공존공생의 정신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한국 민족의 독립만을 절규한 것이 아니라 세계 인류의 자유와 평화, 그리고 인도와 정의를 부르짖었습니다. 그래서 국제사회의 공감을 얻었고 그 결과 광복을 맞이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역사에 면면히 이어져온 이 같은 공존공생의 정신이 곧 우리 민족의 얼이자 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성교육의 길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공존공생의 DNA를 되살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작년에 충청남도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와 유관순 열사의 나라사랑 정신을 함양하고 자라나는 미래의 꿈나무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바른 인성과 충효정신을 기리기 위해 “나라사랑 인성문화 실천대회”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역사는 곧 우리 정체성이자 미래를 여는 빛입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도 ‘유사유국(有史有國)이요 무사무국(無史無國)’이라 했습니다. 즉 “역사가 살아있어야 나라도 살고, 역사가 죽으면 나라도 죽는다”는 뜻입니다. 우리 국민이 언제 어디서든 올바른 역사적 사실에 관해 이야기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어 독도가 왜 우리 땅인지 말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나라를 지키는 작은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독립기념관에 자주 오셔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공감하며 그 속에서 나라사랑·겨레사랑의 마음을 키워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윤주경 독립기념관장 한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1932년 상하이 홍커우공원(현 루쉰 공원) 의거를 결행한 매헌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이다. 충남 예산 출신인 윤 관장은 창덕여고, 이화여자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와 독립기념관 이사, 새누리당 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현재 매헌 윤봉길 월진회 이사와 대통령 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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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한주 기자 kaebin@lyco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