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닥터 양의 뇌 이야기 [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장내미생물과 뇌 건강
장청뇌청腸淸腦淸. 장이 깨끗하면 정신이 맑아진다는 뜻으로 동의보감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장과 뇌의 연결에 대한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지면서 이제는 서양의학에서도 이를 임상에 활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한 예로, 임상에서 뇌 질환 환자의 장내미생물 조성이 건강한 사람과 다르다는 점을 확인한 이후, 장내 환경을 바꿈으로써 뇌의 질환을 치료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장내미생물은 인간의 몸에서 함께 살아가는 세균입니다. 사실 장뿐 아니라 피부, 구강, 소화기에 미생물이 폭넓게 존재하고 있고, 이들은 인간에게 여러 도움을 주면서 자신들이 살아갈 공간과 영양분을 제공받습니다. 특히 우리 장 속에 존재하는 미생물은 면역계와 신경계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아토피, 천식, 다발성경화증 등의 자가면역 질환이나 자폐스펙트럼 장애,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에서 환자와 건강인의 장내미생물 조성에 차이가 관찰됩니다.
인간의 장에 서식하며 공생하는 미생물
장내미생물들은 언제부터 우리 장에 서식하고 있는 것일까요? 지구가 탄생한 것은 약 45억 년 전이고, 미생물은 약 35억 년 전에 출현했습니다. 동식물의 원시적 형태가 출현한 것이 약 4억 년 전이라고 하니, 미생물이 동식물의 한참 선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미생물들이 인간의 장에 서식하며 공생하기 시작한 것은 최소 1,500만 년 전이라고 합니다. 인간과 상당히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장기간 공생하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장내미생물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해서 어떤 것은 우리 몸에 유익하고 어떤 것은 해롭습니다. 유익균과 유해균이 나뉘어 있는 것이죠. 유익한 균이 많으면 면역력이 향상되고 뇌 건강도 좋아지지만, 유해균이 많으면 질병 발병률이 높아집니다. 장내 유익균과 유해균의 비율은 식생활 습관에 따라 결정됩니다.
유익균의 먹이가 되는 신선한 채소, 과일, 콩류, 견과류 등을 섭취하면 유익균이 증가하는 반면, 고기, 설탕, 인스턴트식품을 즐기는 식습관은 유해균의 증식을 초래합니다.
장내미생물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최근에 등장한 사이코바이오틱스Psychobiotics는 정신건강을 증진하는 장내미생물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장내미생물의 이름은 아마도 비피더스균일 겁니다.
비피더스균이라고 불리는 비피도박테리움은 장의 유해균을 억제하고, 장운동과 배변 활동을 강화하는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피도박테리움은 장뿐 아니라 뇌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비피도박테리움 롱검R0175와 락토바실러스 헬베티커스 R0052라는 장내미생물, 그리고 이들의 먹이가 되는 갈락토올리고당이라는 물질을 섭취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부르는 코티졸의 분비가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력이 증진되고 정서 반응이 개선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합니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 연구에서는 유익균이 담긴 프로바이오틱 섭취에 의해 뇌 활성과 정서적 정보 처리가 변화하는 것이 관찰되었습니다. 부정적인 기분도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난 연구 결과들을 통해 장내미생물이 스트레스와 정서 반응에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건강한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연구에서 비피도박테리움 롱검 1714를 섭취하는 것이 스트레스 감소와 인지기능 향상에 연관된다는 점을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주요우울장애, 과민성 대장 증후군, 산후우울증 등의 증상을 보이는 환자에게 유익균인 프로바이오틱스를 처방했을 때 스트레스 반응과 우울 증세가 개선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주요우울장애를 겪으면서 두 가지 이상의 항우울증제를 시도해도 증세가 개선되지 않는 경우를 치료 저항성 우울증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치료 저항성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연구에서 항우울제와 병행해 장내 환경을 바꾸는 프로바이오틱 처방을 8주간 진행하자 우울감이 개선됐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연구 결과들은 정신건강을 위한 사이코바이오틱스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아직 주요우울장애에 있어서 프로바이오틱스의 전반적 효능에 대한 연구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장내미생물이 우리 뇌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장에 서식하는 미생물들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설탕이 들어 있지 않은 요구르트나 김치 같은 발효식품을 섭취합니다. 발효식품에는 락토바실러스 같은 유익균이 풍부해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둘째, 유익균이 장에서 잘 증식하도록 그 먹이가 되는 채소, 콩류, 과일, 미정제 곡물 등 섬유소가 풍부한 식품을 섭취합니다.
폴리페놀이 풍부한 식품을 섭취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코코아, 다크초콜릿, 레드와인, 녹차, 아몬드, 양파, 블루베리, 브로콜리 등에 많이 들어 있는 폴리페놀은 유익균인 비피도박테리아와 락토바실리를 증가시키고, 유해균인 클로스트리디아를 감소시킵니다.
셋째, 장내미생물 종이 다양하면 더 건강한 장내 환경을 조성할 수 있으므로, 특정 음식만 먹기보다는 다양하게 섭취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지구와 공생 관계인 인간은 지구에 유익할까, 유해할까?
인간과 장내미생물의 공생을 지구와 인간의 관계에 비유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의 몸속에 수많은 미생물이 서식하듯, 지구에는 많은 인간이 살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구 입장에서는 유익할까요, 유해할까요? 둘 중 어느 쪽이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개별적인 선택에 의해 조금쯤 유익할 수도 있고, 많이 유해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인류 전체를 놓고 볼 때 인간이 지구에 어떤 존재일지는 누구도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부분은 지구와 최대한 공생하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는 것이겠지요.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 우리가 처한 기후 위기는 인류가 지구에 유해하게 작용함으로써 공생 관계가 깨질 수 있다는 경고일지 모릅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성해 공생의 생태계를 회복하기 위한 선택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글_양현정 한국뇌과학연구원 부원장,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통합헬스케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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