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을 앞두고 동네 집집마다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도회지에 나가 살던 형이나 누나, 고모, 삼촌이 손에 선물을 가득 들고 명절을 가족과 함께 보내려고 왔다. 하지만 우리 집은 예외였다. 명절이어도 아무도 찾아오는 이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형제가 두 분뿐이고, 아버지는 당신 혼자뿐이었고 우리는 아직 어렸다. 그래서 명절 때마다 고향을 찾아오는 형이나 누나를 둔 이들이 무척 부러웠다. 명절만 되면 우리는 ‘우리 집은 왜 이렇게 찾아오는 친척이 없어요’라는 말을 자주 했다. 지금은 우리가 명절이면 고향에 계신 부모를 찾는데 형제들이 많이 모여 옛날과는 달라졌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라서 가족이 소중하다는 것을 일찍부터 느꼈다. 하지만 절실하게 느낀 것 아니었다.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살아보아야 한다. 경험에 의하면 어려운 일이 있을수록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1998년 외환위기가 왔을 때 회사에서 1년간 무급휴직을 하게 되었다. 회사가 그런 대로 튼튼하여 외환위기가 나에게까지 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결국 우리 집에까지 닥친 것이다. 일부가 명예퇴직을 하고 몇몇은 1년 무급휴직을 했다. 갑자기 1년을 쉬려면 우선 할 일이 있어야 했기에 당시 야간에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내가 무급휴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아내와 아이들에게 1년간 회사를 쉬게 되었다고 말하기가 힘들었다. 아내가 직장에 다녔지만, 가장으로서 가족을 보호해야 할 책임은 내게 있었다. 아내는 놀라기는 했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주었다. 아이들에게도 잘 말해주어 나를 편하게 해주었다. 이 기간 우리 가족은 더욱 가까워지고 서로 사랑을 확인하게 되었다. 몇 개월 뒤 아내와 함께 단학 수련을 하면서 부모와 자녀로 서로 만나 한 가족을 이룬 특별한 인연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생활로 이어졌다. 거의 날마다 서로 포옹하고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2001년 아내가 교환근무로 중국에 1년간 가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준비를 했던 일이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아내가 소중한 만큼 아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적극 밀어주고 싶어 중국행을 적극 권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은 내가 맡기로 했다. 3월에 아내가 중국으로 떠나고 아이들과 남은 나는 아내의 빈자리를 크게 느꼈다. 처음 한 달은 하루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날마다 이메일을 두세 통 보내고 받으며 아내와 모든 것을 의논했다.
방학 때 아이들을 엄마가 있는 중국으로 보냈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 아들과 딸이 중국에 가고 나면 돌아올 때까지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시달렸다. 아무도 없는 아파트에 돌아오기가 싫었다.
아내가 돌아오니 똑같은 아파트에 훈기가 돌았다. 가족이란 이렇게 좋은 거구나! 이렇게 아이들과 1년을 보내니 데면데면하던 아이들도 나를 잘 따르게 되었다. 아내는 아빠와 아이들이 친해졌다고 했다.
몇 년 후 큰 아이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아내가 근무하는 기관이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하여 통근하기가 힘들어졌다. 아내는 그곳에 방을 얻어 짐을 옮기고 입주할 날을 잡았다. 그런데 갑자기 입주를 하지 않고 집에서 다니겠다고 했다. 우리 가족 네 사람이 함께 살 기회가 길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거나 군대를 가면 떨어져 살아야 한다. 그 아래 딸도 대학을 가면 집을 떠나게 되는데 그때까지라도 가족이 함께 모여 살아야 되겠다고 했다. 그래서 매일 새벽 6시40분에 집을 나서는 생활을 지금도 하고 있다.
올해 우리 가족은 세 곳으로 흩어졌다. 서울 소재 대학에 합격한 딸 아이가 기숙사에 들어갔다. 나 또한 새로운 직장으로 옮겨 서울로 이주했다. 집에는 아내와 제대를 하고 복학한 아들이 남았다. 주말에 집에 가도 대학생이 된 딸 아이는 자주 오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끈끈하게 이어져 있다. 하루에도 몇 번 씩 문자와 전화, SNS를 통해 서로 만난다. 이렇게 만날 때마다 밥은 제대로 먹는지, 잠은 잘 자는지 묻는다. 그만큼 소중하니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는 가정은 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곳이요, 영혼의 안식처이다. 가족이 있기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 아닐까. 5월에는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자. 그리고 포옹도 해주고.
글. 정유철 선임기자 npn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