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주었습니다

마음을 주었습니다

뇌와 마음

브레인 26호
2011년 06월 03일 (금)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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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
10년 전의 일입니다. 여름휴가를 맞아 한 수련원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수련원까지 들어가는 외길에 막 도로 포장을 해놓은 곳이 있었는데, 무심결에 지나치다 그만 타이어 자국을 내고 말았습니다. 노발대발한 촌부들 앞에서 우리는 부랴부랴 사과를 했습니다.

입소 시간에 맞추려면 시간이 빠듯했거든요. 그런데 어쩐 일인지 사과를 하면 할수록 사태가 꼬이는 겁니다. 실랑이가 점점 길어지더니 급기야 어르신들의 화를 돋우고 말았습니다. 노기 띤 어르신들은 사과도 싫다, 배상도 싫다며 막무가내였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벽창호 노인네들과 멀리 떨어져, 우리는 길 한가운데 동그랗게 모여 섰습니다.


“저렇게 말이 안 통하면 어쩌자는 거야.”

“말로는 안 될 것 같은데, 차라리 깔끔하게 배상하고 갈까요?” 

배상 문제가 거론되자 일행의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입소 첫날부터 이게 무슨 꼴이람. 한숨을 쉬고 있는데 한 친구가 나섰습니다. 나이는 어려 보이지만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는 친구였습니다.

“저분들은 지금 배상을 원하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문제지. 사과도 안 받아주겠다, 배상도 싫다면 우리보고 어쩌라고!”
불만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습니다. 
“마음을 풀어드려야 해요.”
무슨 말이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사과를 안 한 게 아니잖아. 사과해도 안 받아주는 거 못 봤어?”

우리의 항변에 그 친구가 말했습니다.

“저분들은 지금 사과를 받고 싶은 게 아니라 시골 노인네라고 무시당했다고 생각해서 화를 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분들 마음을 풀어드려야 한다고요.”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멍해진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우리 사이에 가벼운 침묵이 돌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분들은 정작 우리의 실수 때문이 아니라 태도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는 겁니다. 침묵을 비집고 그 친구가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과연 될까? 우리는 서로 마주보았습니다. 입소 시간은 다가오고 달리 대안도 없었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다, 한번 해보자! 우리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결의를 다졌습니다. 그러고는 비장한 발걸음으로 도로를 가로질러 대나무 숲처럼 꼿꼿하게 버티고 선 어르신들 앞에 섰습니다. 어르신들과 우리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일시에 달라지던 공기의 흐름
시간이 늘어진 듯 슬로 모션으로 돌아가던 그때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 나는 그 맹랑한 친구의 제안에 여전히 확신을 갖지 못한 채로 일행의 맨 뒤에 어정쩡하게 서 있었습니다. 그때 한 친구가 먼저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자 도미노 넘어지듯 일행의 무릎이 차례로 땅에 닿았습니다. 앞선 사람들을 따라 엉겁결에 무릎을 꿇으면서 이런 식의 사과는 내 평생 처음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일시에 달라지던 공기의 흐름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마치 사방을 팽팽하게 채우고 있던 반목의 둑이 일거에 무너지면서 방류된 물줄기가 불신의 찌꺼기를 휩쓸고 지나간 뒤의 고요 같았다고나 할까요. 완고한 어르신들의 표정에 차츰 노기가 걷히고 시골사람 특유의 순박함이 돌아왔습니다. 우리의 액션이 과녁을 제대로 맞힌 셈이지요.


우리들 대부분이 살아오면서 그렇게 온전히 무릎 낮춰 사과해본 적이 없는 것처럼, 그분들 또한 당신들 앞에 무릎 꿇고 조아리는 그런 종류의 사과를 받아본 적이 없었던 겁니다. 그저 마음 한쪽 먼저 내밀었을 뿐인데, 그분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손사래를 치며 없던 일로 할 테니 어서 가라고 우리의 등을 떠밀었습니다.

현상 너머의 본질을 보는 안목
작가 이외수는 인간에게는 네 가지 눈, 즉 육안肉眼, 뇌안腦眼, 심안心眼, 영안靈眼이 있다고 했습니다. 육안은 말 그대로 얼굴에 붙어 있는 눈으로 현상을 바라보는 것이고, 뇌안은 두뇌, 즉 이성적인 시각으로 판단하는 눈입니다. 심안은 상대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눈이고, 영안은 영혼의 눈으로 세상을 통찰하는 것이지요.

진리는 현상 속에 있지 않고 본성 속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세상을 어떤 안목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같은 현상도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할 테고, 전혀 다른 해결의 실마리를 붙들 수 있는 것이겠지요.

10년 전 그날, 저 또한 인간사의 복잡다단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안목의 위력을 실감한 셈입니다. 모쪼록 올 한 해는 그저 현상만 바라보고 판단할 게 아니라, 본질적인 면에 시선을 두는 내밀한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전채연 ccyy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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