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존재의 뇌과학] 약이 없다고 속수무책은 아냐

[우리 존재의 뇌과학] 약이 없다고 속수무책은 아냐

우리 존재의 뇌과학


치매는 단지 기억을 잃는 병이 아니다

올해 여든이 되신 어머니의 치매 증상을 의심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치매 가족을 돌보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다시 찾은 것이다. 지난해, 나에게 나타난 몇 가지 증상이 치매와 관련된 것이 아닌지 의심하면서 가입했던 곳이다. 

그곳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올라왔다. 읽을수록 치매가 단순히 기억을 잃는 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됐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성격이 변하고, 폭력을 쓰고, 같은 말을 반복하고, 가족을 의심하고, 익숙했던 것들을 혼자 해내지 못하는 온갖 증상들. 그 변화를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 역시 무기력과 우울 속에서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어쩌면 머지않아 우리 가족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자, 어머니와 함께 사는 아버지에게는 이미 남의 일이 아닌 현실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정말 우리 뇌는 플라크와 타우 단백질의 엉킴 속에서 가망 없는 미래를 속수무책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치매 연구의 오랜 가설

다행히 다른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샌디에이고에서 뇌 건강 클리닉을 운영하는 헤더 샌디슨도 그중 하나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뇌 속의 특정 물질 하나가 아니라 뇌를 둘러싼 여러 조건들이다. 

적절한 식이요법과 운동, 수면, 독소 노출과 감염 치료, 스트레스 완화 등 다양한 요인을 함께 관리함으로써 치매 위험을 낮추고, 일부 환자에서는 인지 기능의 개선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의 접근법은 기존의 알츠하이머병 치료와 사뭇 다르다. 특정 병리를 표적으로 삼아 치료하기보다 생활습관과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함께 살피는 접근 방식이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츠하이머 연구가 오랫동안 믿어온 한 가지 가설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플라크와 타우 엉킴. 잘 알다시피 그간의 알츠하이머 연구는 환자의 뇌에서 발견되는 베타 아밀로이드 플라크와 타우 단백질의 엉킴을 주요 표적으로 삼아왔다. 이를 줄이거나 제거하는 약물을 개발하는 데 막대한 연구비와 시간이 투입됐다. 
 


헤더 샌디슨은 《회복하는 뇌》에서 이 접근법에 의문을 제기한다. 의학계가 복잡한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줄 특효약을 찾으려고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수십 년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플라크와 타우 엉킴이 알츠하이머의 진짜 원인이 맞는지, 플라크와 엉킴을 줄이면 인지기능이 개선되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알츠하이머병의 병리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인지기능이 정상인 사람의 뇌에서도 플라크와 타우 엉킴이 발견될 수 있다. 신경병리학 연구자 하이코 브라크가 2천여 명의 사망한 환자의 뇌 조직을 검사한 결과, 플라크나 타우 엉킴이 하나도 없는 뇌는 단 10명뿐이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이 두 가지 병리는 알츠하이머 환자에게만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1986년 켄터키대학교에서 수녀를 대상으로 오랜 기간 진행한 연구에서도 알 수 있듯, 상당한 양의 플라크와 타우 병리가 발견되는데도 생전에 인지기능이 비교적 온전했던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플라크와 타우 엉킴이 알츠하이머병의 중요한 요인일 수는 있어도, 그것만으로 질환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
 

치매 치료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이 문제를 생각하다 보니 문득 뇌과학계가 신경가소성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이 떠올랐다. 잡지 기자 시절, 뇌과학의 역사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한 적이 있다. 성인의 뇌에서 새로운 신경세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가설은 꽤 오랫동안 뇌과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그 기원은 에스파냐의 노벨상 수상자 라몬 이 카할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의 영향력 때문인지 성인의 뇌가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은 오랫동안 신경과학계의 강력한 전제가 되었다. 1960년대 초, 뇌과학자 조지프 앨트먼이 다 자란 쥐의 뇌에서 새로운 뉴런이 생긴 것을 발견하기는 했지만 그 연구 결과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후 1980년대에 프레드 게이지가 쥐와 원숭이의 뇌에서 새로운 뇌세포를 발견하면서 비로소 뇌에서 새로운 신경세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졌다. 
 


이처럼 과학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틀린 답을 얻을 때가 아니라, 섣불리 답을 알고 있다고 믿을 때인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아밀로이드 가설이 알츠하이머 연구에서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아밀로이드를 표적으로 삼은 치료제가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효과를 보여준 연구도 있다. 그러나 한두 가지 병리만으로 알츠하이머 질환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데 점점 더 많은 연구자가 주목하고 있다.

만약 가족의 인지 장애로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가 아리셉트를 처방하고 6~12개월 뒤에 다음 예약 날짜를 잡아주는 것이 전부라면, 환자나 가족 입장에서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막막할 것이다. 신경가소성에 대한 개념이 뇌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바꿔 놓았던 것처럼, 치매 치료에서도 다각도의 접근 방식이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치매 연구가 놓친 것들

2020년 의학저널 《랜싯》의 치매 예방·개입·돌봄 위원회 보고서에는 치매의 위험을 높이는 요인 가운데 일부를 생활습관과 환경의 변화로 줄일 수 있다는 내용이 실렸다. 낮은 교육 수준, 청력 저하, 외상성 뇌손상, 고혈압, 과도한 음주, 운동 부족, 우울증, 제2형 당뇨병, 흡연, 대기오염, 사회적 고립 등이 대표적인 위험요인이었다. 이후에는 시력 저하도 중요 요인으로 추가됐다.

이 목록을 보고 있으면 한 가지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치매의 위험을 좌우하는 요인 가운데 우리가 매일의 생활에서 어느 정도 관리할 수 있는 것들이 상당수 있다는 사실이다. 헤더 샌디슨이 제안하는 뇌 건강 전략도 다르지 않다. 케토시스 식이요법, 운동, 두뇌 활동, 일상의 루틴, 독소 노출을 줄인 환경, 수면, 인간관계와 의사소통, 자기돌봄 등은 복잡하거나 비싸지 않고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우리가 익히 아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운동 전략의 경우, 꾸준히 운동을 해왔다면 운동 순서를 바꾸거나 새로운 운동을 추가하거나 강도를 높일 것을 권한다. 우리 몸은 반복되는 자극에 빠르게 적응하며, 마음은 예측 가능해지는 순간 긴장감을 잃는다. 그러니 인지 저하를 막고 건강을 지키려면 운동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달리기를 하고 있다면 근력 운동을 추가하고, 요가를 하고 있다면 심박수를 높이고 땀을 내는 방법을 찾는 식으로. 시간이 부족하거나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투자 대비 이득을 극대화하는 운동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식이요법도 마찬가지다. 탄수화물을 줄이고 양질의 지방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케토시스 식이요법에서 강조하는 것은 단지 체중 감량만이 아니다. 몸이 당과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대사 상태를 개선하고, 혈당과 인슐린 조절을 돕는 것이 핵심이다. 

생활환경 역시 중요하다. 인지 저하가 심한 사람일수록 지나치게 복잡하고 낯선 환경보다는 익숙하고 예측가능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여러 요소를 한꺼번에 관리하는 다각적 접근법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연구도 있다. 2023년 《알츠하이머병 저널》에 발표된 한 연구에서는 23명의 실험 참가자 가운데 17명이 다각적인 접근법으로 6개월 동안 인지기능이 개선된 것으로 관찰됐다. 규모가 작은 연구이기는 하지만, 생활 습관과 건강 상태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접근이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결과다.
 

치매 예방을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것들

결국 중요한 것은 하나의 비법이 아니라 여러 요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어머니의 상태는 가족들이 조금씩 더 신경을 쓴 덕분인지 염려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다. 아마도 가족의 관심과 정서적 지지가 뇌의 안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이러한 정보에 자극받아 이참에 나도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시도해보기로 했다. 우선 탄수화물 섭취를 조금 줄이고 저녁을 간단하게 먹는 것부터 시작했다. 일주일에 3일 새벽 요가는 유지하되,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기로 했다. 운동이 없는 날에는 그동안 미뤄 두었던 애니멀 플로우나 인사이드 플로우 같은 실내 운동을 해볼 0생각이다. 취미로 하고 있는 성악도 나름 긍정적인 두뇌 활동이 되는 것 같다. 좋은 발성을 유지하려면 매일 호흡과 소리를 의식적으로 조절하는 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게 중요한 것은 수면이다. 연초에 합창 대회를 준비하느라 한 달 내내 잠을 두 시간씩 줄인 적이 있는데, 그때 혈압이 최고치를 찍었다. 병원에 가면 당장 약 처방을 받아야 하는 수준이었다. 이후 수면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고 나서야 수치가 회복되었다. 그 일이 있은 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수면 시간만큼은 지키려고 한다. 

또 하나, 자기돌봄 항목에서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의식적으로 휴식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전에는 업무 중간에 휴식을 취하는 것에 인색했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과도한 긴장과 스트레스가 장기적인 뇌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디폴트 모드의 시간’을 허용하게 되었다.

해 질 무렵 베란다에 놓아둔 1인용 소파에 앉아 집으로 돌아오는 차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켜는 대신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면서 천천히 몸과 마음을 깨우는 것은 내 방식의 디폴트 모드 루틴이다.

이런 생활이 실제로 알츠하이머병을 얼마나 예방해줄지 수치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오늘 먹은 음식 하나, 실제로 걸은 계단 몇 층이 미래의 뇌 상태를 결정한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그러나 뇌 건강을 위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작은 선택들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쯤 위안이 된다. 

반가운 것은 그런 선택들이 뇌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뇌에 좋은 것은 심장에도 좋고 면역계와 대사 건강에도 좋다. 이런 습관들은 장기적으로 뇌를 건강하게 하고 삶의 질을 높이며 심장병과 암, 당뇨, 자가면역질환 등 현대인이 겪는 각종 만성 질환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아직까지 알약 하나로 뇌의 퇴화를 막을 방법은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무엇을 먹을지, 얼마나 움직일지, 언제 잠들고 얼마나 잘지. 우리가 매일 내리는 작은 선택들이 결국 뇌의 미래를 결정한다. 물론 하루 이틀에 달라지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해보는 것이다. 뇌 관리에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은 때란 없으니까.


글_전채연 
출판 기획자이자 작가. 쓴 책으로 《스님의 호흡법》, 《우리 뇌는 그렇지 않아》, 《휴맥스, 다시 벤처 정신을 말하다》, 《박지성처럼 꿈꿔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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