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을 비롯해 의학과 바이오산업 분야를 이끄는 세계적 석학들이 9월 6일 한 자리에 모였다.
한국뇌신경과학회(회장 이창준)는 9월 6일부터 8일까지 대전컨벤션센터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뇌과학 국제학술대회인 'K-Brain 2026'을 개최했다.
▲ 한국뇌신경과학회(회장 이창준)는 9월 6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뇌과학 국제학술대회인 'K-Brain 2026'을 개최했다. [사진=김경아]
이번 학술대회에는 기초 신경학, AI 기반 뇌과학, 신경면역학, 수면 및 생체리듬, 신경퇴행성질환, 신경공학, 디지털 치료 기술 등 현대 뇌과학의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31개의 심포지엄과 5개의 특별 강연이 사흘간 진행됐다.
특히 평소 한자리에서 만나기 어려운 세계적 석학들의 연구 성과와 통찰을 직접 접할 수 있는 특별 강연이 눈길을 끌었다.
척수 운동 신경회로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올레 킨(Ole Kiehn) 덴마크 코펜하겐대 교수, 세계 최초로 수면 조절 신경펩타이드 '오렉신(Orexin)'을 발견한 야나기사와 마사시 일본 츠쿠바대 교수, 면역계와 신경계의 상호작용 연구를 선도해 온 허준렬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 소뇌의 시냅스 가소성을 연구해 온 제니퍼 L. 레이먼드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특별 강연이 마련됐다.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은 어떻게 뇌와 행동을 바꾸는가
허준렬 하버드 의과대학 면역학 교수는 6일 특별 강연에서 ‘장-면역-뇌의 상호작용’을 주제로 면역계가 뇌 발달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소개했다.
허 교수 연구의 핵심은 뇌와 면역계가 서로 독립된 시스템이 아니라 긴밀하게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그는 면역학·미생물학·신경과학의 접점에서 장내 미생물과 면역계의 상호작용, 면역계와 뇌세포 사이의 상호작용을 연구해 왔다. 특히 장내 미생물과 면역 매개 물질이 뇌 발달과 행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규명해 세계적으로 주목받았으며, 이러한 연구 성과로 2025년 경암상을 받았다.
허 교수 연구팀이 주목한 것 가운데 하나가 ‘사이토카인(cytokine)’이다. 사이토카인은 세포들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 분비하는 신호전달 단백질이다. 면역반응을 조절하는 것으로 잘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면역계와 뇌 사이의 소통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허 교수는 사이토카인 중 하나인 ‘인터루킨-17(IL-17)’이 뇌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왔다. 연구팀은 동물모델을 통해 특정 인터루킨-17 신호가 뇌에 직접 작용해 기억이나 불안 관련 행동, 사회적 행동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밝혔다. 또한 임신 중 모체의 면역반응과 장내 미생물이 인터루킨-17을 매개로 태아의 뇌 발달과 자폐 유사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 허준렬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 [사진=김경아]
최근 연구에서는 인터루킨-17이 단순히 염증을 일으키는 물질에 그치지 않고 특정 신경세포와 직접 소통하며 신경회로와 행동을 조절하는 신호로 작용할 가능성도 제시했다. 이는 뇌와 면역계를 별개의 체계로 바라보던 기존 관점에서 벗어나 장내 환경과 면역계, 신경계가 연결된 하나의 시스템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허 교수는 강연 말미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여러 사이토카인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에서 각각 어떤 역할을 하는지, 또 여러 사이토카인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아직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라며 “신경과학과 면역학의 접점은 앞으로 매우 중요한 연구 분야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는 왜 잠을 자고, 무엇이 우리를 졸리게 하는가
9월 7일에는 우리 뇌의 각성 조절 물질인 ‘오렉신’을 최초로 발견하며 수면과 각성을 조율하는 뇌의 메커니즘을 밝힌 야나기사와 마사시 일본 츠쿠바대 국제 통합 수면 의과학연구소 소장의 기조 강연이 열렸다.
야나기사와 마사시 교수는 강연에 앞서 '우리는 왜 잠을 자고, 무엇이 우리를 졸리게 하는가'라는 수면의 필요성에 대해 질문했다.
야나기사와 교수는 수면이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생명체의 매우 근원적인 생물학적 현상임을 강조했다. 포유류의 하루 수면시간은 3~4시간에서 20시간까지 종마다 크게 다르지만, 계통 발생학적으로 가까운 종일수록 수면시간이 비슷하다. 이는 각 종에 필요한 수면시간의 ‘설정값(set point)’이 유전적으로 결정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어 야나기사와 교수는 자신이 1998년 발견한 신경펩타이드 ‘오렉신(orexin)’을 소개했다. 오렉신은 처음에는 식욕 조절과 관련된 물질로 주목받았지만, 이후 오렉신이 결핍된 생쥐에서 기면증과 유사하게 갑작스럽게 수면 상태로 전환되는 현상이 관찰되면서 각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사람의 제1형 기면증에서도 오렉신을 생성하는 신경세포가 선택적으로 소실돼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러한 발견은 오렉신 시스템을 표적으로 하는 수면장애 치료제 개발로 이어져, 현재 불면증에는 오렉신 수용체 길항제가 사용되고 있으며 기면증 치료를 위한 오렉신 수용체 작용제 개발도 진행되고 있다.
야나기사와 교수는 또한 만성적인 수면 부족이 인지기능 저하와 여러 건강 문제의 위험 증가와 관련돼 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복잡한 수면 과학의 메시지를 한마디로 압축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그러니 잠을 주무세요(Please sleep).”
▲ 'K-Brain 2026'은 국내 바이오기업과 연구 기관이 참여해 기초연구와 임상, 산업을 연결하는 산학협력의 장도 마련됐다. [사진=전은애 기자]
AI 시대, 뇌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20개국 2,500여 명이 참석한 'K-Brain 2026'은 국내 바이오기업과 연구 기관이 참여해 기초연구와 임상, 산업을 연결하는 산학협력의 장도 마련됐다.
한국뇌신경과학회 이창준 회장은 6일 개회식에서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은 뇌과학 연구의 지형을 새롭게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풀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마음과 뇌의 미스터리에 접근할 수 있는 도구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라며, "단순히 연구 데이터 공유가 아닌, 새로운 아이디어를 촉발하고, 기존의 패러다임에 도전하며, 인간 지식의 경계를 넓혀 나가기 위해 마련됐다"라고 심포지엄 취지를 밝혔다.
세계 각국이 뇌과학 연구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한 투자를 확대하는 가운데, 기초 뇌과학에서 임상과 산업으로 연구 성과를 확장하기 위한 국제적·학제적 협력의 중요성도 더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과 첨단기술의 발전으로 뇌를 탐구하는 방법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뇌과학자들이 던진 질문은 오히려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영역을 향하고 있었다. 'K-Brain 2026'은 뇌를 이해하기 위한 과학의 경계가 어디까지 확장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글. 전은애 수석기자 hspmak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