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목소리, ‘뇌파’를 읽다

뇌의 목소리, ‘뇌파’를 읽다

뇌과학 리뷰

브레인 109호
2025년 02월 26일 (수)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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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의 목소리, 뇌파 [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뇌파의 발견

1875년 영국의 생리학자인 리처드 케이튼Richard Caton은 처음으로 토끼와 원숭이의 대뇌피질에서 나온 미약한 전기활동을 검류계로 기록하였다. 사람의 경우, 1924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한스 베르거Hans Berger가 처음으로 기록했다. 뇌가 활동할 때 발생하는 미세 전류, ‘뇌파’를 잡아낸 순간이다. 

뇌파가 뇌의 활동과 연동되어 나타나는 신호라면, 뇌파를 측정해서 무엇을 얼마만큼 알아낼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고등한 정신 현상, 예를 들면 사고나 감정, 의지 등을 뇌파의 파형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 그런가하면 뇌파를 이용한 보안 기술을 개발해 일부 성공한 사례도 있다. 의료 분야와 IT 분야에서는 뇌파를 활용한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뇌파 실험으로 밝힌 감정의 정체

게이오기주쿠대학 이공학부 시스템디자인공학과 교수이자 게이오기주쿠대학 의학부 정신 신경과 담당 교수인 미츠쿠라 야스에 박사는 뇌파가 감정 상태를 그려낸다고 말한다. 오랜 뇌파 연구를 통해 알게 된 감정의 정체를 기술한 그의 책 《뇌는 행복을 기억하지 않는다》에는 뇌파 실험과 감정 작용에 관한 고찰이 가득하다. 그는 실제로 감정을 시각화하는 ‘감성 분석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미츠쿠라 야스에 교수는 특히 부정적인 감정에 주목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감정을 시각화하면서 바로 알게 된 것은, 인간의 감정 주체는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것이었다. ‘좋아한다’, ‘즐겁다’, ‘집중한다’와 같은 긍정적인 감정은 좀처럼 증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일시적으로 증가해도 유지되기 어렵다. 

반면 ‘싫다’, ‘짜증난다’, ‘초조하다’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약간의 계기만 있어도 곧바로 증가한다. 게다가 일단 올라간 부정적인 감정은 좀처럼 사그라지지도 않는다. 이것은 다시 말해 사람의 뇌가 긍정에는 둔하고, 부정에는 매우 민감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뇌파 실험을 통해 그가 가닿은 감정에 대한 통찰에는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그의 통찰을 통해 감정의 실체를 이해하고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뇌파와 감정에 관한 그의 통찰을 함께 살펴본다. 


◉ 감정별 뇌파 패턴을 잡아내기까지 

뇌파에 감정 상태가 나타난다고 했지만 뇌파를 보고 감정 상태를 바로 알 수는 없다. 뇌파는 델타파, 세타파, 알파파, 베타파, 감마파와 같은 다른 영역의 파장이 혼합된 상태로 발산된다. 또한 뇌의 여러 영역에서 전기가 생성되므로 상당히 복잡한 형태를 띠며 파형의 패턴도 무한대에 가깝다.

게다가 대뇌피질은 6층 구조이기 때문에 뇌에서 발생한 전기적 변화가 두피에 도달할 때는 마이크로볼트 단위가 쓰일 정도로 약하다. 이를 증폭시켜 뇌파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의료용 뇌파 측정기인데, 상당한 노이즈가 포함되어 있다. 때로는 60퍼센트 이상이 노이즈인 경우도 있다. ‘뇌파에 감정 상태가 나타난다’는 문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복잡하고 노이즈 투성이인 뇌파를 보고 바로 감정의 변화를 해석할 수 있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우리는 연구를 거듭한 끝에 뇌파 데이터의 노이즈를 실시간으로 제거하는 알고리즘에 대한 특허를 취득했고, 그 상태에서 좀 더 세밀한 주파수 분석 작업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스트레스를 받을 때, 행복할 때, 집중할 때와 같은 감정별 뇌파 패턴을 잡아낼 수 있게 되었다.  


◉ 좋은 일에 둔하고 싫은 일에 민감한 뇌

뇌파의 현상을 포착하고 감정을 시각화하면 ‘어떤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뇌의 습성을 알 수 있다. 먼저 좋은 일과 싫은 일에 대한 반응의 차이부터 알아보자. 

동물을 좋아하는 피실험자들이 귀여운 동물 영상을 보고 1분 동안 편안함과 만족감 등 긍정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뇌파에 변화가 있는지를 조사했다. 그런 뇌파가 나오기는 했지만 서서히 올라간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 정도로 상승 곡선은 상당히 완만했다. ‘좋아하는 과일을 먹는다’, ‘푹신하게 몸을 감싸는 소파에 앉는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준다’ 등 여러 종류의 긍정적 상황에 대한 반응도 살펴봤지만 뇌는 느리게 반응했다. 

맛있는 것을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아, 행복해’하고 중얼거리지만, 실제로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행복하다는 느낌이 급격히 증가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싫은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반응할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 피실험자에게 수술 중의 적나라한 장면을 담은 영상을 보여주었다. 뇌파의 형태가 앞의 경우와는 확연히 달랐다. 혐오를 나타내는 뇌파와 스트레스를 나타내는 뇌파 모두 영상을 보자마자 순식간에 강하게 나타났다. 싫어하는 음식 사진을 보여주거나, 거슬리는 금속음을 들려주거나, 까슬까슬한 스웨터를 입게 하는 등의 상황에서 진행한 실험에서도 반응 속도가 비슷했다. 

뇌는 싫은 것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좋은 것에는 그보다 훨씬 둔감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실험이었다.
 

◉ 혐오에 집착하고, 편안함은 쉬 잊는다

감정의 지속성은 어떨까? 슬로 스터터인 긍정적인 감정이 뒷심을 발휘해 부정적 감정을 이길 수 있을까?

귀여운 동물 영상을 보고 나서 40분 동안의 감정 변화를 나타낸 뇌파를 보면, 만족감을 나타내는 뇌파는 지속되지만 편안함의 뇌파는 낮은 수준으로 가라앉았다. 수술 중인 영상을 본 뒤 40분 동안의 감정을 나타낸 뇌파의 변화를 보면, 혐오를 나타내는 뇌파와 스트레스를 나타내는 뇌파 모두 수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강화되었다. 

우리의 뇌는 좋은 것에 대한 편안함은 금방 놓아주고, 싫은 것에 대한 불쾌감과 스트레스는 끈질기게 붙잡는 습성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긍정적인 자극을 계속 가한다면 긍정적인 감정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까?

귀여운 동물 영상을 본 피실험자의 뇌파가 약해질 때마다 다시 한번 같은 영상을 보여주면 호감을 나타내는 뇌파가 잠시 증가하다가 다시 내려왔다. 이후 다시 영상을 보면 뇌파가 또 증가하는 형태가 반복됐다. 이는 긍정적인 감정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자극을 반복적으로 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상을 틀어놓거나 방에 좋은 향기가 나게 하는 등의 긍정적인 자극을 계속 제공함으로써 긍정적인 감정을 유지할 수 있다. 


◉ 행복한 순간에도 스트레스는 사라지지 않는다

‘가슴 속에 행복이 가득한’ 상태가 정말 존재할까? 다시 말해 긍정적인 감정이 충분히 고양되면 부정적인 감정을 멀리할 수 있을까?

피실험자가 아주 좋아하는 디저트를 먹을 때의 뇌파를 보면, 호감을 나타내는 뇌파가 상당히 강하게 나왔다. 편안함을 나타내는 뇌파도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행복해서 마음이 편안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스트레스를 나타내는 뇌파의 데이터를 추가해 보니 놀랍게도 편안함을 나타내는 뇌파와 맞먹는 기세로 스트레스 뇌파가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행복감에 빠져 있을 때조차 스트레스는 한쪽에서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디저트가 다이어트를 일깨워 불안을 자극한 것일 수도 있어서, 다른 피실험자를 대상으로 좋아하는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를 보게 하는 실험도 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이러한 실험에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긍정적인 감정이 아무리 고조되어 있어도 부정적인 감정은 우리의 마음을 쉽게 파고든다는 점이다.
 

◉ 스트레스를 긍정적 감정으로 덮을 수 있을까 

긍정적인 감정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덮을 수 있을까? 짜증이 난 상태에서 좋아하는 것을 좀 했다고 해서 금방 유쾌해지지 않고, 축 처진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즐거운 일을 생각해도 좀처럼 스트레스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뇌파 실험 결과도 이를 명확히 확인해 주었다. 

단시간에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인 감정으로 때려눕히기는 어렵다. 다만 긍정적인 자극에 따라 스트레스가 단숨에 풀리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드문 경우이지만, 폭발적인 수준으로 상승하는 긍정적인 자극이 있으면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해소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반대로 부정적인 감정은 긍정적인 감정을 쉽게 고갈시킨다. 뇌파 실험에서 스트레스가 고조될수록 흥미가 감소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드라마를 보며 한참 고조돼 있을 때 결정적인 장면 앞에 광고를 집어넣는 방법은 어쩌면 시청자의 흥미를 빼앗을 뿐 아니라 짜증이 난 상태에서 광고를 보게 할 가능성도 있다. 

뇌파 실험에서 실시간으로 감정을 읽어내고 이를 수치화했더니 매우 재미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호감, 만족감, 편안함, 집중력, 흥미와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뇌파는 종종 0이 되지만, 혐오나 불쾌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보이는 뇌파는 거의 0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트레스에 관해 0이 되는 일은 특히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다. 

감정은 개인의 사고방식이나 성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지만, 뇌파라는 현상을 통해 보면 부정적인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오랫동안 집착하는 보편적인 뇌의 습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 [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뇌파,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뇌과학이 크게 발전하고 인공지능 시대가 활짝 열렸지만, 우리가 뇌에 대해 아는 것은 아직 일부이다. 뇌파도 마찬가지다. 뇌파에 어떤 정보가 담겼는지, 그 정보를 어떻게 읽어낼 것인지, 읽어낸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뇌파를 조절할 수 있는지, 우리는 궁금하고 또 궁금하다. 

이미 학습이나 심리상담 분야에서 뇌파는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연구와 활용은 나란히 가는 관계이지만, 현재 수준에서 더 적극적인 활용도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본다. 이미 그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미츠쿠라 야스에 교수에게 지지와 감사를 전한다. 


정리_브레인 편집부
참고 도서 《뇌는 행복을 기억하지 않는다》 미츠쿠라 야스에, 알에이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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