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우리 사회는 인터넷 시대에서 AI 시대로 들어섰다.
오픈AI가 ChatGPT를 대중에 공개한 지 2~3년 만에 생성형 AI 기술은 사회 전 영역에 걸쳐 급속히 확산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짧은 시간 동안 기계가 단순히 인간의 언어와 사고, 감정을 모방하는 단계를 넘어,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창작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장면들을 목격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이유는 기술의 진보 자체가 아니라, 기술이 인간의 고유 영역—언어, 사고, 감정—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는 데 있다. 미래의 직업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정체성과 존재의 의미에 관한 질문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며 AI가 인간을 대체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마음속에 자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술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우리는 아직 인간의 정체성을 새롭게 업그레이드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경제신문 공동주최로 열린 〈글로벌 인재포럼 2025〉도 이러한 시대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포럼의 올해 슬로건은 ‘공생지능의 시대’였다. 주최측은 공생지능이란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맺고 서로의 강점을 살려 협력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즉, 인간과 기술의 공생관계에 대한 모색은 AI가 인류 공동의 번영과 지속가능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데 필요한 사회적 조건과 인간 역량을 탐구하는 문제이며, 결국 “어떤 기술을 만들 것인가” 이전에 “어떤 인간을 길러낼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특히 관심을 끈 논의가 ‘디지털 시민과 글로벌 거버넌스’ 세션에서 다뤄진 AI 역량(AI competency) 개념이다. 기술과 인간의 공생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인간 고유의 역량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기반의 디지털 시대에는 ‘디지털 리터러시(digial literacy)’가 핵심적 기본기였다. OECD의 〈21세기 독자: 디지털 세상에서 읽고 쓰는 능력 개발〉(2021) 보고서에서 안드레아스 슐라이허가 밝힌 것처럼, 디지털 리터러시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위를 구별하고 해석하며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이었다. 알고리즘 편향과 반향실(echo chambers)이 문제였지만, 여전히 정보의 생산자와 판단자는 인간이라는 전제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AI 시대는 이 전제를 흔든다. AI는 인간의 언어·인지 구조를 정교하게 모사하며, 정보를 ‘직접 생산하는 존재’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정보의 출처를 구분하기 어려워졌고, 판단의 상당 부분이 AI 시스템을 통해 매개된다. OECD는 최근 이를 바탕으로 AI 시대의 새로운 문해력(AI literacy)을 “AI와 협업하고, 관리하며, 설계하고, 그 결과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능력”으로 정의했다. 즉 디지털 시대의 문해력이 정보 판단 능력이었다면, AI 시대의 문해력은 기계와 함께 판단하는 능력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 변화는 곧 “AI 리터러시가 향후 역량의 기반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네스코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작년 <AI 역량 프레임워크>를 발표했다. 이는 인간중심 가치에 기반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시민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네 단계—인간중심 마인드셋(Human-centered mindset), AI 윤리(Ethics of AI), AI 기술과 응용(AI techniques and applications), AI 시스템 설계(AI system design)—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기술·응용·설계 이전에 ‘인간중심 마인드셋’이 기초로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유네스코는 인간중심 마인드셋을 다시 인간의 주체성(Human agency), 인간의 책임성(Human accountability), AI 시대 시민성(Citizenship in the AI era)이라는 세 가지 구성요소로 설명한다.
즉, AI가 도구이자 환경으로 확장되는 시대에도 궁극적 의사결정자는 인간이라는 자각, 그에 따른 책임, 그리고 기술을 사회의 공공선에 맞게 활용하려는 시민적 태도가 있어야 인간이 기술에 종속되지 않고 기술을 이끄는 주체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국제 기준은 실제 교육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을까? 2025년도 국내 초등학교 도덕과 교육과정은 인공지능 로봇을 설계해보는 체험, 사이버 공간의 규범·예절 탐구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학습자가 인간의 주체성과 책임감을 자연스럽게 기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6학년 성취기준에서는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 간의 다양한 관계를 파악하고, 도덕에 기반을 둔 관계 형성의 필요성을 탐구한다”는 목표를 제시하며, AI를 ‘편리한 기계’이지만 윤리적 성찰을 요구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도록 안내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과연 규범과 기술 지식을 아는 것 만으로 인간의 주체성이 자라나는가? 기술의 발전 속도에 대응하는 교육이 필요하지만, 인간의 주체성은 결국 인간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감각과 느낌을 회복하는 경험이야말로 인간다운 선택의 기반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AI 로봇이 아닌 내가 직접 해보는 경험의 의미와 즐거움”을 느끼는 활동이 그러하다. 이러한 주체에 대한 자각은 AI가 외부에서 제공하는 정보가 아니라, 내가 몸을 움직여 몸을 매개로 내부에서 일어나는 감각에 집중함으로써 점점 선명해지고 구체화된다. 내부 감각이 살아날 때 인간은 기술에 끌려가는 존재가 아니라,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주체가 된다.
몸의 감각을 회복하는 경험이 쌓일수록 우리는 기술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개발·활용되도록 선택할 수 있는 힘을 되찾게 된다. 이 과정은 기술적 능력을 넘어선, 인간다운 판단과 공감, 그리고 공동체적 책임감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성의 기반을 형성한다.
따라서 AI 시대에 요구되는 진정한 역량(competency)은 단순한 기술 능력의 배열이 아니다. 그 밑바탕에는 반드시 ‘인성 리터러시’라는 바탕이 자리해야 한다. 자신의 몸과 마음, 타인과 지구 생명 전체에 대해 깨어 있는 감수성을 기초로 삼을 때, 그 위에서 비로소 인간은 기술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윤리적으로 활용하며, 사회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시민적 역량을 갖출 수 있다.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인간만이 만들 수 있는 미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러한 인성 리터러시를 기반으로 한 인간 중심의 역량에서 출발할 것이다.
김지인. 국제뇌교육협회 국제협력실장, 지구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