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넥타이 부대와 하이힐 부대가 향한 곳은…?

그날 밤, 넥타이 부대와 하이힐 부대가 향한 곳은…?

일지아트홀 신현욱 관장과 함께한 〈영가무도 콘서트〉

2012년 05월 02일 (수)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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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칠 때가 있다. 유달리 특별한 일을 하지 않더라도,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 속에서도 괜히 몸도 마음도 물을 잔뜩 머금은 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제가 그랬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에 일어나 씻고 밥 먹고 일하고 사람들을 만났는데 평소보다 기운이 몇 곱절은 더 쓰이는 날이었다. 마지막 일정이 바로 '영가무도 콘서트'였다. 지난 3월 말 풍류도의 대표이사이기도 한 신현욱 관장이 일지아트홀의 신임관장으로 오면서 처음으로 시작한 정기 공연이라고 한다. 이날은 인연이 닿아 초대받은 자리였다.

25일 수요일 저녁 7시 40분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뚫고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일지아트홀에 도착했다. '킹콩빌딩' '난타전용극장'으로 부르던 이곳이 지난 3월 10일 '영혼의 놀이터'라는 별칭 아래 현재의 '일지아트홀'로 새롭게 태어났다. '영혼의 춤과 노래'라는 뜻을 가진 <영가무도 콘서트>가 열리는 '영혼의 놀이터'라…기분 좋은 설렘을 갖고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200석 남짓 마련된 공연장에는 군데군데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30~50대 여성분들이 많아 보인다. 공연 시작시간인 8시가 가까워져 오자 목 끝까지 단정하게 잠겨진 와이셔츠에 넥타이까지 단단히 맨 50대 남성분들이 들어온다. H라인 치마에 커피색 스타킹, 거기에 하이힐까지 꼼꼼하게 매치한 여성분들도 등장한다.


이윽고 8시 공연이 시작되었다. 암전이 된 공연장 무대에서 푸른 조명 하나가 자욱한 연기를 뚫고 켜지더니 그 끝에 신현욱 관장이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인디언 악기 '타포'를 연주했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 다 다니기에 다녀봤던 피아노 학원 덕분에 음계를 맞춰보려 애썼으나 규칙성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악기였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악기는 '일지 휘슬'. 타포보다는 예상 가능했다. 연주를 마친 신 관장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음악을 시작한 뒤 한계를 만났다. 그리고 나의 스승도 만났다. '기술의 음악을 그만하고 이제 도(道)의 음악을 하라'는 스승의 말에 '기술의 음악도 잘 모른다'고 답했다.

그때 스승이 예전에 했던 공연 영상을 보게 되었다. 박자도 음정도 하나도 제대로 맞는 것이 없는데 나의 스승과 관객들은 완벽하게 하나가 되어 정말 신명 나게 즐기고 있더라. 박자가 맞아야 한다는 나의 틀을 깨는 순간이었다.

예술을 한답시고 한국에서 제일 좋다는 회사도 그만두고 살았는데 그러면서도 돈 벌고 성공하면 행복한 줄 알았다. 그런데 '술(術)'이라는 것은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더라. 애써 18평 아파트를 장만해 행복에 겨워 있는데 25평 사는 친구 집에 놀러갔다 와서 부부싸움을 한 꼴이다."

방금 신 관장이 연주하는 '타포'에서 음계를 읽어내려던 내가 떠올라 머쓱해졌다. 음악을 느끼고 받아들이기에 앞서 이 음악이 몇 박자, 무슨 음조인지 따지려 들려던 나를 보았다.

"틀에 맞춰서 하다 보니 박자가 안 맞으면 불안하더라. '예술'을 한다던 나는 그 틀 속에 갇혀있더라. 오늘 일지아트홀 '영가무도 콘서트'에 오셨으니 영혼의 춤과 노래를 통해 신나게 놀다 가시라. 귀로 들으면 영혼을 느낄 수 없다. 오늘은 틀에서 벗어나서 음악을 손으로도 듣고 가슴으로도 듣고 발로도 들어보자."



다시 시작된 공연 무대 뒤로는 붉은 바위가 병풍처럼 서 있는 어느 사막이, 무대에는 내리쬐는 붉은 태양 같은 조명 아래 신 관장이 큰 피리 하나를 연주했다.

"예술(藝術)과 예도(藝道)가 있다. 예술이 끊임없이 채워서 용기와 자신감을 얻는 것이라면, 예도는 끊임없이 비워서 부끄러움과 두려움 외로움을 내려놓고 본래의 밝은 나의 본성(本性)을 만나는 것이다."

영가무도 콘서트의 2막이다. 신 관장의 양옆에 있던 우리 전통 북과 드럼의 주인공들이 무대에 등장했다. 신 관장이 "무거움을 내려놓고 본성을 찾아보자"며 무대 쪽부터 관객들을 두 줄씩 일으켜 세워 신나는 노래, 드럼과 우리 북이 어우러진 리듬을 타고 춤을 추게 한다. 새하얀 형광등도 아니겠다, '영혼의 놀이터'에 온 사람들은 뻘쭘한 기색 없이 신나게 춤을 춘다. 단정하게 메어진 넥타이는 이미 풀어버렸고 하이힐에서도 내려온지 오래다.

관객 모두 신나게 한바탕 몸을 흔들고 나서 이제 북과 소고를 집어 들게 한다. 다시 한 번 에너지 발산. 무대에서 두드리는 드럼소리, 북소리가 어느새 내 가슴을 두드린다. 한바탕 신명나게 아무 생각도 없이 두드리고 소리 지르고 나니 심장이 달음박질을 친다.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 내가 살아있는지도 잘 모르고 살았다. 언젠가부터 나를 잊고 살았다. 그런데 정작 필요한 건 내 본 모습 아닌가. 이렇게 한바탕 뛰고 나서야 내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내 안에 밝은 태양이 있고, 나는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다.

계속 채우면 될 줄 알았다. 그래서 채우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아무리 채워도 내 참모습, 본성을 만나지 않는 한 이 외로움은 어쩔 수 없다.

친구를 새롭게 사귀려면 먼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부터다. '나'와 사귀어 보자. 가만히 나의 가슴에서 어떤 떨림이 있는지 귀 기울여 보라. 나의 참모습은 '밝음'이다."

아, 이 기분 좋은 심장 소리, 그리고 이 떨림. 소통의 시작은 참회라고 했던가. 그동안 소홀했던 나에게 먼저 '미안합니다'하고 말을 건넨 뒤 용서를 구하고 고마움을 전한다. 그렇게 공연이 마무리되었다.

신명 나는 한바탕 놀이 '영가무도 콘서트'는 오는 5월 3일과 9일 저녁 8시 두 번 더 이번과 같은 사전 공연(프리뷰)을 진행한다. 그리고 난 뒤 18일부터는 하루에 두 번 정기 공연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일지아트홀은 '라이프 코치 트레이너' 코스도 마련했다. 영가무도와 함께 호흡, 명상, 뇌교육을 접목시킨 것으로 12주 과정이다.

"얻고 싶은가. 그렇다면 비우라. 가득 차 있으면 안 보인다. 원하는 것을 제대로 볼 수 없으면 얻을 수 없다. 얻고 싶다면 비우라."

지친다는 생각도 기운이 없다는 생각도 모두 무거움이 되어 나를 채운다. 생각이 많아 무거운 날, 일단 신나게 흔들어보자. 일정이 맞다면 (맞지 않더라도 시간을 내서) '영가무도 콘서트'를 꼭 가보기를 권한다. 채웠던 것을 비우기에 이만한 공연이 어디있나 싶다.

글·사진. 강천금 기자 sierra@brain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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