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대한 생물학적 근거

남성의 폭력성을 키우는 테스토스테론 호르몬

뇌2003년4월호
2010년 12월 07일 (화)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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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다’ 안경환 씨가 그의 책 〈이카루스의 날개로 태양을 향해 날다〉에서 한 말이다. 법대 교수답게 무서운 말을 했다. 인간의 공격성이나 범죄성향은 어쩌면 우리의 본질적인 성향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 공격성이나 범죄성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 남에게 피해를 입힐 정도로 폭력적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데, 아마도 여기에는 생물학적 근거가 있는 것 같다. 한때 범죄자는 생긴 모습이 특징적인 것으로 믿었던 적이 있었다. 골상학의 창시자인 조세프 골 Joseph Gall의 수제자인 이태리의 세자레 롬브로소 Cesare Lombroso는 이마가 반듯하지 않고 누운 사람, 그리고 얼굴뼈가 비대칭적으로 생긴 사람이 바로 범죄형이라 했다. 이 주장에는 과학적 근거가 없으며 지금 이를 믿는 사람은 물론 없다.

남성의 폭력성을 키우는 테스토스테론 호르몬

현대의학의 발달로 인간 폭력의 근원에 관한 몇 가지 생물학적 근거가 밝혀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첫 번째는 바로 ‘남자’이다. 남자로서 좀 껄끄러운 이야기지만 아마도 인간의 공격성, 난폭함, 범죄 등과 연관되는 가장 큰 요인은 ‘남성’ 일 것이다. 이 세상 대부분의 폭력, 방화, 살인, 강간은 남성에 의해 저질러진다. 〈악마 같은 남성〉이란 책을 쓴 리처드 랭햄은 인간뿐 아니라 인간과 유전적으로 아주 가까운 유인원 즉 오랑우탄, 침팬지, 고릴라 사회에도 강간, 폭행, 유아 살해 등 ‘범죄’ 행위가 종종 벌어진다고 한다. 물론 모두 수컷이 저지르는 일이다. 즉 ‘악마 같은 남성’은 퍽 오랜 세월 동안 전해 내려온 우리의 유산이다. 정말 남자는 어쩔 수 없나 보다.

남자와 여자의 유전적 차이는 여성은 한 쌍의 X를 성염색체로 갖는데 반해 남성은 X 와 Y 염색체를 갖는다는 점이다. 물론 Y 염색체가 ‘폭력’ 유전자는 아니다. Y 염색체는 단지 남성의 고환을 만들 뿐이다. 그런데 그 고환에서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만든다. 바로 이 호르몬이 남성의 폭력과 연관된다. Y 염색체를 하나 더 가지고 있는 XYY 증후군 환자 중에는 범죄자나 정신 이상자가 많다. 그리고 그들은 키가 일반인보다 더 크고, 여드름이 많고 지능이 낮은 경향이 있다.

남성호르몬에 의한 남성의 공격성은 아주 어릴 때부터 영향 받는다. 실험에 의하면 임신 6일만에 수컷 쥐를 거세하면 그 쥐는 어른이 되어서 일반적으로 수컷 쥐들이 갖는 공격성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거세한 후 다시 남성호르몬을 주입하면 보통 수컷 쥐와 같은 공격성을 보이게 된다. 어른 쥐에게 남성호르몬을 주입해도 물론 공격성이 증가하며 쥐의 사회에서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동물과는 달리 인간에 있어서는 남성호르몬이 남자들의 공격성과 비례하는지 아직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중 남성호르몬 수치는 공격적이고 우세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높으며 이중 일부는 이것이 지나쳐 반사회적 행동, 난폭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남성호르몬이 높다는 것이 이러한 행동의 이유인지 결과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이러한 남성호르몬과 관계되는 공격성, 경쟁 그리고 서열짓기는 분명 적자생존으로 이름 지워지는 진화론적 규칙과 연관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성호르몬과 남성의 행동양식은 성적 선택압의 영향도 강력히 받았을 것이다. 여성은 일반적으로 우세한(dominant) 남자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범죄에는 늘 여성이 낀다’는 말이 있듯, 남성의 공격적, 폭력적 성향에 여성은 어느 정도 매력을 느낀다. 이런 점에서 남성들의 이런 행위에 여성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여성이 도덕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진화론적으로 생각할 때 공격적이고 우세한 수컷과 함께 있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고 또 자신이 낳을 아이가 이런 성질을 갖는 경우 그 아이의 생존 역시 유리해진다면, 인간 여성이 공격적인 남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남성대신 여성이 정치를 하면 이 세상에 폭력이 줄어들고 평화가 찾아올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폭력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내 생각에는 공격성이란 우세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자연 법칙 속에서 진화한 자연적이며 합목적적인 성질이다. 단지 그 성질이 절제되지 못했을 때 문제가 될 뿐이다. 그렇다면 이 성질이 암컷이라고 특별히 비켜가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수컷과 함께 생활하는 사회에서 자신이 직접 남을 공격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우세한 수컷을 택하는 전략이 암컷에게는 더 유리하다. 즉 공격성이라는 것이 진화적 압력이라면 이제까지 여성은 그 압력을 남성에게 미루고 자신은 그 뒤에 숨어 지냈다. 그리고 그런 우세한 남성을 배우자로 선택함으로써 어느 정도는 여성이 그 폭력성을 조종하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사회활동이 늘어 여성이 세상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면, 즉 그 진화적 압력을 직접 받게 된다면 왜 여성만은 제외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여성은 발톱을 숨긴 고양이처럼 몰래 그 공격성을 숨기고 있는 존재는 아닐까?

하지만 여성들이 ‘폭력’과 관련된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을 남성보다 적게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여성들은 대체로 남성에 비해 자신의 자식에 대한 염려를 더 많이 한다. 따라서 적어도 핵 확산금지 회담은 여성들끼리 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여성들이 점점 정치적 세력을 확대해 가는 이 시대에 세상이 좀더 평화로워졌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다.

MAO-A 유전자 이상이 공격성을 증가


영화 <돌이킬 수 없는>

폭력의 두 번째 생물학적 근거는 ‘유전’이다. 폭력의 유전설을 뒷받침하듯 범죄자는 한 가족에 한꺼번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놀부와 흥부는 예외이겠지만, 형이 사나우면 대체로 동생도 사나운 것이 보통이다. 물론 형, 아우가 비슷하다고 이것이 모두 유전 때문만은 아니다. 형제는 자라난 환경, 그리고 부모로부터 받은 교육이 비슷하니 당연히 비슷한 성격으로 자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자 집안의 일란성 쌍둥이 중 하나를 다른 집안에서 입양해도 역시 범죄를 저지를 확률은 보통사람보다 높다. 즉 범죄 행위의 모든 것이 유전 때문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은 유전의 영향을 받는다.

1993년 네덜란드에서 발견된 한 가계는 요즘 말로 ‘구제불능 가족’이었다. 그 집안의 거의 모든 남자는 방화에서부터 강간 미수까지 다양한 범죄에 연루되어 있었다. 범죄와 유전과의 관계를 연구하고 싶어 안달이 났던 학자들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학자들은 이들에게서 모노아민 옥시다제 (monoamine oxidase, MAO-A)라는 효소를 코딩하는 유전자에 이상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 유전자는 뜻 밖에도 X 염색체에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가족력을 갖지 않은 일반적인 범죄에도 MAO-A 유전자가 관여하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MAO-A가 공격성, 범죄와 관계되는 유일한 유전자는 아니다. 생쥐에서는 공격성과 관계되는 유전자가 15개나 밝혀지고 있다. 그 중 하나는 NOS 유전자인데, 이것이 결손 된 생쥐는 틈만 나면 다른 생쥐를 공격한다. MAO-A 유전자 이상은 어떻게 공격성을 증가시킬까? MA-O는 카테콜아민계 신경전달물질을 분해 하는 효소이다. 즉 이러한 이상은 뇌에서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초래할 것이다. 그리고 잘못된 신경전달물질은 그 뇌의 주인의 공격적 성향을 증폭시킬 것이다.

뇌의 경찰인 전두엽 기능저하가 폭력 일으켜

따라서 유전적 이상과 맞물려 생각해야 할 세 번째 폭력의 근거가 바로 뇌의 신경전달물질이다. 시카고 대학의 정신과 의사 에밀리 코카로 Emile Coccro는 신경전달물질 중 특히 세로토닌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실험동물뿐 아니라 인간에서도 척수액을 조사해 보면 공격적인 사람 혹은 범죄자에서 세로토닌의 대사산물이 감소되어 있다. 즉 이들의 뇌에는 세로토닌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동물에게 세로토닌을 감소시키는 약을 투여하면 공격행동이 늘어나고 증가 시키는 약제를 투여하면 줄어든다.

세로토닌의 수용체는 적어도 14종류 이상인데 이중 1B 수용체가 공격성에 중요하다고 코카로 박사는 주장한다. 그러나 세로토닌과 공격성과의 관계는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말이 정확하다. 게다가 공격성과 관계된 신경전달물질이 세로토닌 뿐만은 아니다. 예컨대 페리스 Ferris 라는 학자는 공격적인 햄스터의 뇌 시상하부에서 바조프레신 vaso-pressin 이 증가되어 있음을 밝혔다. 반사회적 행동을 한 26명의 범죄자의 척수액에서도 바조프레신 대사 산물이 증가되어 있음이 발표된 적도 있다.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바조프레신 이외에도 공격성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은 분명 더 있을 것이다.

폭력과 관계되는 마지막 생물학적 근거로 나는 ‘전두엽 기능저하’를 이야기하고 싶다. 조지타운 대학의 블레이크 Blake 교수 팀은 선고나 집행을 앞둔 살인범 31명을 조사해 보았다. 그들은 살인범들의 무려 65%에서 신경학적 진찰상 나타나는 전두엽 기능의 이상 증세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 가운데 상당수에서 CT나 MRI 같은 뇌 촬영상 뇌의 전두엽 이상 소견이 있었다. 또한 이들 중 반 수 이상은 살인 즈음에 술을 많이 마셨다고 했는데, 알코올은 전두엽의 기능을 억제하는 대표적 약물이다.

1997년 남가주 대학의 레인Raine 교수는 41명의 살인자와 동수의 정상인에게 PET를 시행해 보았는데 전두엽의 포도당 대사가 살인자 그룹에서 현저히 떨어져 있음을 알아냈다. 즉 전두엽의 기능 저하는 흉악 범죄자에게서 매우 흔하다. 전두엽은 우리의 모든 행동을 통제하는 기관, 말하자면 뇌의 경찰에 해당된다. 이러한 전두엽의 작용이 좋지 않으므로, 마치 고삐 풀린 말처럼 그들은 난폭한 행동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이런 전두엽 설은 위의 세로토닌 설과도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다. 전두엽의 앞쪽에는 세로토닌 수용체의 밀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즉 전두엽이 손상되면 세로토닌 시스템에 장애가 초래 되어 인간이 공격적으로 변할 것이다.

인간의 폭력에 대한 지식은 아직 단편적

나는 이제까지 폭력이나 공격성을 설명하는 유전자와 신경전달물질에 관해 이야기 했다. 전두엽의 손상도 말했고 괜히 남성, 여성까지 들먹거렸다. 그러나 인간에서는 주변 환경이나 교육의 영향이 분명 있기 때문에 이런 결정론적인 논지를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또한 동물실험의 결과를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도 없다. 예컨대 인간의 경우 범죄인의 많은 수가 어린 시절 물리적, 성적 폭력에 시달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실험동물에게 동일한 상황을 경험하게 할 수는 없다. 또한 동물은 공격성이 증가하면 상대방을 물겠지만, 이런 단순한 행동은 강간이나 은행털이 같은 인간의 복잡한 범죄 행동과는 사뭇 다르다. 즉 인간사회에서 공격성이나 범죄 행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아직도 매우 단편적이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들은 이 복잡한 수수께끼를 완벽하게 풀 수 있을까? 오히려 완성되지 못한 우리의 지식의 파편들이 혼돈을 초래할 가능성은 없을까? 우선 현실적으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범죄자의 책임인가 하는 복잡한 법적 문제가 대두된다. 전두엽의 손상으로, 신경전달물질의 변화로 그리고 MAO-A 유전자 결함과 같은 유전적 이상으로 자신의 광포한 행동을 제어할 수 없는 상태라면 그 범죄자는 무죄로 처리되거나 적어도 형기를 줄여야 할 것 아닌가?

실제로 1985년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아들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딸마저 죽이려 했던 애틀란타의 글렌다 수 콜드웰이라는 여자의 문제는 쉽지 않았다. 그녀의 친정아버지와 오빠는 유전병인 헌팅턴 병에 걸렸다. 헌팅턴 병에 걸리면 손, 발을 마구 움직이는 무도병과 더불어 정신 이상이나 치매 증세가 나타난다. 글렌다의 변호사는 글렌다 역시 헌팅턴 병에 걸렸으며 그 병 때문에 정신이상 행동을 한 것으로 변호했다. 하지만 그 때만해도 헌팅턴 병의 진단은 환자의 무도병 증상을 확인하고서야 진단할 수 있었다 (현재는 유전자 검사로 무도병 증세가 생기기 전에 미리 진단 할 수 있다). 운 나쁘게도 살인 사건이 일어난 날까지 그녀에게는 무도병 증세가 없었다. 그녀가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복역한지 수 년 지나서 무도병 증세는 시작됐고 그녀는 1994년이 되어서야 풀려나왔다.

하지만 글렌다가 헌팅턴 병 환자라 하더라도, 무도병이든 정신 이상이든 그 증세가 나타나기 이전에 발생한 살인이 과연 무죄로 처리 될 수 있는 것일까? 즉 현대의학이 밝혀낸 유전자 이상이 인간의 광포한 행동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게다가 이 케이스는 이보다도 더욱 일반적인, 그러나 심각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살인 사건 이후 개발된 유전자 검사는 엄마에게 살해당할 뻔한 딸 수잔 역시 그 병에 걸려있음을 알려주고 만 것이다. 즉 외할아버지와 엄마에게 나타난 모든 험악한 증세가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덮칠 것을 알게 되었으니, 수잔은 마치 사형선고를 기다리듯 그 날을 기다리며 살게 되었다. 그리스 신화의 장님 예언자 테레시아스는 자신도 모르는 채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잠자리를 같이 한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적 운명을 말해주기에 앞서 왕에게 이렇게 실토한다. ‘지혜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때 지혜롭다는 것은 고통일 뿐입니다.’ 과연 우리의 의학 지식이라는 것이 이 불행한 가족에게, 그리고 인류의 폭력 해결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일까? 독자들이 판단할 일이다.

글 | 김종성 서울 아산병원 신경과 과장. 울산의대 교수. 저서로 〈뇌에 관해 풀리지 않는 의문들〉, 〈뇌졸중의 모든 것〉, 〈신경학 교과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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