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에든 마음을 뺏기고 싶은 계절이다. 사랑스럽고 온화한 인간의 얼굴을 대하고 싶다면 가까운 서점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어린아이부터 돋보기를 걸친 어르신까지 얼굴 표정이 비슷하다. 온통 집중하고 있지만, 텔레비전을 보거나 게임을 하는 얼굴과는 사뭇 다른 평온을 느끼게 한다. 그 얼굴 뒤에는 홍조를 띤 뇌가 있다. 사랑에 빠진 뇌가 있다.
뇌는 왜 책을 사랑하는가
책을 읽을 때 뇌는 광범위하게 활성화된다. 물리적으로 보면 책은 하얀 바탕에 까만 글자가 보이는 매우 단순한 사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문자가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면 2차원의 평면에 담긴 정보가 광대한 세계를 펼쳐 보인다. 문자는 기호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주의 영역까지 담아낼 수 있다.
이처럼 형이상학을 넘나드는 정보를 이해하기 위해 인간의 뇌는 필연적으로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다. 특정한 뇌의 영역만으로는 이 엄청난 작업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책을 읽기 위해서 시각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후두엽은 물론 언어를 담당하는 측두엽, 종합적인 판단과 추리·창조력·커뮤니케이션·이성 등을 담당하는 전두엽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뇌의 영역을 사용한다.
태어나는 모든 아기들의 뇌를 위하여
태어난 아기들에게 무상으로 책을 나눠주고 부모들에게 책 읽기 지도에 필요한 지문을 제공하는 북스타트 운동이 있다. 버밍험 대학의 매기 무어 교수와 배리 웨이드 교수는 북스타트에 참여했던 아기들을 10년 넘게 추적 조사했다.
조사 결과, 태어나자마자 책을 읽은 아기들은 책을 읽지 않은 아이들보다 언어, 인지 발달에서 훨씬 더 우수한 능력을 보였다. 이런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 그 아이들이 수학실력에서도 약 두 배에 가까운 학업성취도를 보인 것이다.
언제부터 책을 읽어주어야 할까? 전문가들은 만 한 살 이전부터 책을 읽어주어야한다고 말한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정재영 교수는 태어나자마자 읽어주기, 천천히 정확한 발음으로 읽어주기, 날마다 15분에서 30분 정도 읽어주기를 권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품에 안고 읽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만 세 살 이전의 뇌는 부모와의 긍정적인 애착관계, 칭찬, 보살핌 등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너무 이른 나이에 너무 많은 책을 읽어주면 아이의 뇌에 회복하기 힘든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만 네 살 이전의 아이가 혼자서 몇 시간이고 책을 읽고 있다면 후천적인 자폐아가 될 확률이 높다.
물론 텔레비전 같은 영상물은 더욱 해롭다. 첫돌 이전 매일 2시간 이상, 생후 6개월 이전에 매일 4시간 이상 영상물에 노출된 아이는 자폐적 성향은 물론 정서 조절 문제, 언어 발달의 지연, 불안정 애착관계 등의 문제를 갖기 쉬운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과 만화책에 빠진 청소년의 뇌를 위하여
게임에 몰두하는 뇌는 어떤 모습일까. 게임이 학습을 방해하지만, 왠지 게임을 잘하면 머리도 좋아질 것 같은 것이 우리의 기대이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써서 게임을 하고 현란하게 손가락을 움직여도 게임을 하는 뇌는 거의 활동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게임 뇌의 공포》의 저자 모리 아키오는 게임 뇌가 치매 상태와 비슷한 뇌파 유형을 보인다고도 말한다. 또한 걱정스럽게도 한번 게임 뇌 상태가 되면 원래의 뇌 상태를 회복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면 만화책은 어떨까. 어찌되었든 책이라는 단어를 뒤에 달고 있으니 조금의 희망은 품게 된다. 하지만 가오시타 교수의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다. 조금 낫기는 하지만, 게임 뇌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책을 볼 때, 뇌는 거의 모든 영역을 이용한다.
또한 책은 부모의 유전적 영향을 넘어서는 뇌 발달을 가능하게 한다. 미국 네바다 주립대학교의 마리아 에반스 교수팀은 20년 동안 27개 나라의 7만 여 사례를 분석한 결과 집에 책이 5백 권 이상 있으면 부모가 모두 대학교육을 받은 것처럼 자녀의 교육 기간이 3.2년 더 길어지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책은 아이들의 장래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투자물인 셈이다.
치매를 걱정하는 노인의 뇌를 위하여
한국 인구의 노령화 속도는 놀라울 정도다. 특히 할머니들의 치매 발병률은 서구 사회에 견줘 월등히 높다.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의 할머니들은 할아버지들에 비해 저학력자도 많고 문맹률도 높기 때문이다. 지역사회 노인 243명을 7년 동안 추적 조사한 결과, 문맹자들이 7년 후에 치매에 걸릴 확률은 비문맹자보다 다섯 배나 높았다. 뇌에 지식과 정보를 보유하는 창고가 클수록 치매 발병률이 낮은 것이다.
책 읽기는 인지적 자극을 줄 수 있는 가장 쉽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책 읽기는 뇌 세포의 노화를 막는 기적의 약이라고도 불린다. 물론 치매를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하지만 예방하고 늦출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게다 박사팀도 머리를 쓰는 직업을 가졌거나, 교육 수준이 높거나,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은 치매에 덜 걸린다고 했다.
반면에 중년에 텔레비전을 많이 시청하거나, 손이나 머리 쓰는 일이 적고,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지 않은 경우 치매에 걸릴 확률이 더 높아진다고 한다. 또한 캐나다의 실비 벨빌 교수팀도 치매를 예방하는 최선의 방법은 독서와 신문 읽기와 같은 고전적 두뇌 활동이라고 밝혔다.
불행하고, 우울하고, 스트레스 받는 뇌를 위하여
스티브 마틴 교수팀은 텔레비전을 많이 보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느끼는 반면,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행복감이 더 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텔레비전은 단기적으로는 즐거움을 주지만 오랜 시간 시청하면 우울감을 유발한다.
음악을 즐겨 듣는 학생이 책을 즐겨 읽는 학생보다 우울증이 훨씬 많다는 결과도 있다. 브라이언 프리맥 교수팀은 음악을 즐겨 듣는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우울증이 8.3배 많이 나타난 반면, 책을 많이 읽는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우울증이 10분의 1로 적었다고 밝혔다.
또 데이비드 루이스 박사팀은 스트레스 해소 방법으로 책 읽기가 최고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단 6분의 책읽기만으로도 스트레스가 68퍼센트 감소하고, 심장 박동수가 줄어들며, 근육의 긴장이 풀어진다는 것이다. 음악 감상, 커피 마시기, 산책 같은 활동도 스트레스를 줄였지만 책읽기의 효과에는 미치지 못했다.
우리가 연인과 함께 있을 때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뇌는 책과 짝을 이룰 때 행복하다.
글·최유리 yuri2u@hanmail.net | 사진·김성용 pangod@hanmail.net
도움 받은 책·《책 읽는 뇌》 매리언 울프, 《뇌가 좋은 아이》 신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