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이면 반 아이들에게 꼭 하는 선물이 있다. 바로 “보물찾기”.
보물찾기라고 하면 초등학교 소풍 때면 점심을 먹고 하곤 했던 보물 쪽지 찾기를 떠올릴 것이다. 나도 어렸을 적 보물이라고 적힌 쪽지를 찾아 여기 저기 돌 틈과 나뭇가지 사이를 뒤졌던 기억이 난다. 쪽지를 찾으면 받았던 선물이라고 해야 기껏 공책 한 권이나 연필이 전부였지만 쪽지 하나에 마치 세상을 얻은 듯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반 아이들과 하는 보물찾기는 좀 다르다. 우선 보물이 모두 다르다는 것,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보물이 나에게 꼭 맞거나 꼭 필요한 것이라는 점이다.
보물찾기를 위해서 아이들 몰래 아침 일찍 와서 교실 여기저기에 작은 쪽지들을 숨겼다. 아이들이 찾게 될 보물쪽지에는 이런 글귀들이 적혀있다.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이야.” “나는 어려움이나 슬픔도 나를 성장시키는 것이라 믿고 감사하는 사람이다.” “나는 사람들의 겉모습보다 그 안에 있는 마음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야.” “나는 세상을 밝히기 위해 작은 실천부터 하는 사람이다.”
40여 가지 쪽지에 적힌 글귀가 누구를 찾아갈지 미리 마음속으로 줄긋기를 하며 아이들 얼굴도 떠올려 보았다. 주인을 잘 찾아간 글귀가 오래 오래 아이의 마음에 남기를 기도하면서 쪽지마다 마음의 에너지를 담는다. 그래서 이 보물찾기는 마음의 보물찾기다.
드디어 보물찾기를 시작하는 시간, 칠판에 보물찾기라고 쓸 때부터 아이들은 와글와글 흥분하기 시작한다. 들뜬 아이들은 “보물 찾으면 선물 주나요?”하고 물어본다. 기다렸다는 듯이 반 아이들 모두를 둘러보며 씩 웃어주었다. “그으럼, 당연하지. 아마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어마어마한 선물을 받게 될 거야. 물론, 그 보물을 찾고 잘 간직한다면.” 그리곤 아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주었다.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보물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보물도 있단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에 보물을 가지고 있지. 사람들은 그런 마음의 보물을 “사랑” “용기” “친절” 등으로 이름을 붙이잖아. 오늘 우리들이 할 보물찾기는 내 마음에 원래 있었던 보물 같은 마음을 찾는 그런 보물찾기야. 너희들이 찾게 될 쪽지에는 너희들의 마음에 원래 있었던 마음의 보물이 적혀 있을 거야. 그런데 아마 신기하게도 각자에게 꼭 맞는 보물을 찾게 될 거야. 왜냐면 너희들 마음이 그 보물을 끌어당기기 때문이지.”
아이들은 ‘정말일까’ 하는 표정이지만 ‘꼭 찾아야지.’하고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한바탕 교실을 뒤적이고 보물을 찾은 아이들은 각자 자기 자리에 앉아 내가 찾은 보물이 무슨 뜻일까 생각해보고, 한 사람씩 자신의 보물을 소개했다.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이 찾은 보물을 읽어나갈 때, 다른 아이들은 연신 “우와, 맞다. 꼭 맞네.” 하며 놀라워했다.
사실 나도 놀랍다. 어쩜 보물은 자신의 주인을 그렇게 제대로 찾아가는지. 특히 학기 초부터 아이들을 많이 괴롭히고 툭하면 욕하고 싸우거나 화를 잘 내서 걱정거리였던 아이가 글쎄 “나는 민족과 인류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라는 글귀를 찾았을 때는 아이들이 잘 쓰는 표현대로 나도 ‘허걱’했다. ‘그래, 저 녀석에게는 자꾸만 문제를 지적할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지 깨우쳐주고 큰 꿈을 심어줘야겠구나. 어쩌면 저 아이의 거칠고 큰 에너지가 다듬어져야 해서 그 어려운 과정을 겪는 거겠지.’ 이런 생각과 함께 나도 그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지게 됐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그 아이도 뭔가 달라졌다. 수업에 집중을 못하고 어수선한 행동은 여전했지만 내가 하는 말에 무조건 따르고, 잘못을 얘기하면 바로 인정하고 태도가 온순해졌다. 보물찾기 덕분일까? 보물찾기가 끝나고 아이들이 겪은 일 쓰기를 했는데 늘 씩씩하고 옳은 말을 당당하게 하는 아이가 이렇게 글을 썼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정성껏 들어주는 사람이야 라는 보물을 찾았다. 이 보물은 정말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정말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안 듣고 내 얘기만 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선생님 말씀처럼 이 보물을 내가 끌어당기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 보물과 내가 자석과 철처럼 되어있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00의 보물이 정말 놀라운 것 같다. 민족과 인류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라는 보물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40개 중 00이가 찾은 것이 첫 번째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00이는 끌어당기는 힘이 강한가 싶어서 00이가 조금 부럽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도 내가 찾은 보물이 이 세상에 단 1개밖에 없는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보물을 평생 간직할 것이라고 굳게 다짐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 보물은 나에게는 점쟁이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나도 아이들에게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다.
“얘들아, 너희들이 찾은 보물을 잘 간직하고 계속 그 말을 자신에게 들려주다보면 그게 진짜 너희의 보물이 될 거야. 왜냐하면 우리 뇌는 내가 믿는 대로 이루어내는 힘이 있거든.”
글. 김진희
올해로 교직경력 18년차 교사입니다. 고3시절 장래희망에 교사라고 쓰기 싫어 '존경받는 교사'라고 굳이 적어넣었던 것이 얼마나 거대한 일이었는지를 이제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