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처드 첸 박사는 전압 개폐 칼슘 통로(voltage-gated calcium channels)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자다. 칼슘 통로가 없다면 우리의 심장은 멈추고, 운동 기능도 없어지고, 기억하는 능력도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다. 리처드 첸 박사의 초기 연구는 심장세포와 뉴런에 존재하는 몇 가지 유형의 칼슘 통로 발견에 선도적 역할을 했다. 이 발견은 시간이 지나면서 학계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리처드 첸은 초기 경력 대부분을 심장에 관한 연구에 집중해 칼슘 통로가 심장에 작동하는 방식을 알아냈고, 이후에 이를 뇌 연구에 적용할 수 있었다. 이것은 세포 신호 경로와 관련하여 칼슘 통로의 메커니즘과 역할, 효과 분야에서 대단히 선구적인 연구였다. 시냅스 간 소통에 관한 그의 연구를 통해 우리는 뇌의 복잡한 신호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 좀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이 연구성과는 신경과학과 생리학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 빼어난 통찰력을 제공하면서 이 분야에 큰 영향을 끼쳤다.
리처드 첸 박사는 1988년 스탠포드 대학교에 분자세포 생리학과를 설립했으며, 현재 분자세포 생리학과 교수(조지 D. 스미스 교수직 : 명예직으로 수여하는 교수의 직위명) 및 신경과학연구소 공동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의 실험실에서는 칼슘 통로의 시냅스 간 전송과 신호변환, 그리고 병리생리학을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다.
?뇌는 인체의 다른 기관들과는 다른 독특한 방식으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힘을 지니고 있다
브레인 월드(이하 브레인) | 연구내용을 살펴보면, 칼슘 통로가 세포 신호에 미치는 영향, 나아가 궁극적으로 칼슘 통로와 시냅스의 장기적인 가소성에 관해 암시하고 있다.
리처드 첸(이하 첸) | 칼슘 통로들은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하다. 심장박동과 혈압, 그리고 기억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칼슘 통로가 없다면 이런 모든 기능들은 정지되고 말 것이다. 뇌에서 각기 다른 종류의 칼슘 통로는 신경세포들 사이를 연결하는 시냅스를 발화시키는 데 관여한다. 칼슘 통로는 전기신호를 화학신호로 전환하는 일을 담당한다.
예를 들면 세포의 전기충격을 이동시키는 일인데, 그 전기충격이란 전압에서 지극히 미세한 변화일 수 있다. 대략 AA 크기 건전지의 십 분의 일 정도의 세기이며, 단지 백만 분의 일 초 동안만 지속된다. 이것은 우리가 눈을 한 번 깜빡이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이 충격은 우리의 신경말단에서 척추로 신호를 보낸다. 예를 들면 “나는 뜨거운 물체를 만졌다”라고 말이다.
우리 연구팀은 칼슘 통로가 기억형성의 중심이 될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만일 칼슘 통로가 아주 소량의 칼슘을 전송하게 하고 약간의 신경전달물질을 방출한다면 더욱 강력한 칼슘 통로가 더 강한 신경전달물질을 유도할 것이라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 더 강력한 신경전달물질은 사실상 시냅스가 더 강해지거나 약화된다는 이론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생물학적 기억의 기반이다.
그래서 우리 연구팀은 칼슘 통로가 장기기억 과정에서 변화하는지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기억이 칼슘 통로의 기능에 있어서 어떤 변화를 포함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것, 오히려 그 기능의 후속에 있는 어떤 것, 즉 대부분 신경전달물질 그 자체의 효율임을 알고 실망했다.
그러나 콜롬비아 대학의 스티븐 지벨바움은 몇 가지 경우에서 우리가 가졌던 최초의 아이디어가 부분적으로 옳았다는 점을 발견해 냈다. 즉 아주 오랜 시간 작용하는 시냅스 강도의 변화는 사실상 시냅스 전종말(presynaptic terminal: 신경전달물질을 배출하는 기능을 하는 축색돌기의 가장 끝부분에 위치한 곳)에서 칼슘 통로의 기능에 일어난 변화 때문에 발생한다는 점이다.
브레인 | 그렇다면 그것은 칼슘 통로가 기억 기능을 지원한다는 의미인가?
첸 | 통로들은 기억을 만드는 매우 결정적인 단계다. 만일 칼슘 통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떤 시냅스 전송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시냅스 전송이 없다면 기억 작용에 대한 현재까지의 견해 역시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한편으로 칼슘 통로는 이러한 일들을 제대로 기능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장치의 일부분이다. 마치 테이프 녹음기의 전원 코드처럼, 그것이 제대로 꽂혀 있지 않으면 녹음기가 작동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그러나 전원 코드가 테이프 녹음기의 기억작용에 기초가 된다고 말한다면 그건 틀린 이야기다. 전원 코드가 기억은 아니다. 기억은 카세트나 USB 저장장치에 속해 있다. 칼슘 통로들이 기억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기저는 아니다. 그러나 좀더 일반적인 의미에서 그것이 어떤 기반이 될 수는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전기 코드는 당신의 테이프 녹음기가 작동하려면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품이다.

뇌 연구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브레인 |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기억이란 무척이나 포괄적이고 철학적인 개념이다. 기억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는가?
첸 | 기억에 대해서 여러 가지 각기 다른 차원에서 말할 수 있다. 20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오랜 친구에 대한 기억, 또는 첫 키스의 기억이 있다.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멋진 기억, 회상을 불러일으키는 많은 기억들이 존재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당장 그날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또는 차를 어디에 주차시켰는지 같은 기억도 있다. 또는 더 멋진 백핸드를 치기 위해 테니스 라켓을 휘두르는 방법에 대한 기억, 즉 운동기능 기억 같은 것도 있다.
이 모든 유형의 기억들은 외부에서 행위로 감지되는 패턴을 따라잡을 수 있게 하는 신경 시스템을 포함한다. 신경 시스템은 우리가 검색이라고 부르는 과정에 의해 물질을 되돌려 판독할 수 있다. 신경과학자들은 저장과 검색의 과정 모두에 관심을 가진다. 어떻게 해서 장기간 잊었던 사건들을 다시 기억할 수 있는가?
뇌의 어떤 구조적 변화나 생화학적 변화, 전기생리학적 변화로 인해 우리가 기억을 저장하고, 그 기억에 접근하지 않았던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그 기억에 접속할 수 있는가? 또 동창 모임에서 누군가로부터 “너 그 사람 기억하니?”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뇌의 어떤 부분이 그 이름뿐 아니라 그녀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끌어내는 역할을 하는 신경세포 원형질에 도달하도록 유도하는가?
우리는 뇌의 작용을 이해함에 있어 지극히 원시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것은 뇌의 실제 중량보다도 작은 비중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뇌의 작용에 대해 현재 약간이나마 이해하고 있지만 그것은 아직 미미한 수준에 지나지 않으며, 뇌 연구를 한다는 자체가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뇌는 다른 신체기관들과는 다른 방식들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엄청난 힘을 지닌 기관이기 때문이다.
브레인 | 우리가 뇌에 대해 실제로 알고 있는 바가 너무나도 적다는 점은 정말 놀랍다.
첸 | 연구의 다른 차원을 함께 연결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 우리는 뇌에서 한 개의 소낭 또는 시냅스 하나의 작용이 어떤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수백만 개, 수천만 개가 움직여서 효과를 일으킨다. 이런 조직의 원리를 이해하는 일은 하나의 도전이다.
그것은 유약하고 신뢰할 수 없는 생물학적 처리과정의 이용을 통해, 구성성분보다 훨씬 신뢰성 있는 성과를 이루어내는 컴퓨터 시스템의 구성이다. 매일 행해지는 인간의 모든 행위는 다른 인간들의 기대에 맞추는 하나의 신뢰성을 포함한다. 이 모든 것들은 시냅스에 의해 생성되고 있는데 오직 30~40% 가량의 신뢰성만으로도 명령을 받아 발화한다.
지금 우리의 주요 관심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지만 신뢰할 수 없는 시냅스들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서 이동해서,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차원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이것은 신뢰할 수 없는 시냅스들을 신뢰할 수 있는 회로로 만들어내는 원칙을 알아내기 위한 것이다.
뇌도 다른 인체 세포처럼 보살핌이 필요해
브레인 | 그렇다면 기억 저장의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첸 | 일반적인 믿음은 기억의 많은 부분이 시냅스 연결 강도의 변형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일 당신이 지금 이 잡지의 기사를 읽고 있다면, 당신의 뇌는 정보를 처리하며 이 과정에서 시냅스가 활성화된다. 그리고 이 시냅스들은 지속적인 변화를 겪는데 이것은 시냅스들이 작동하는 회로의 속성들을 변화시킨다. 회로 속성에서의 이러한 변화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기억의 검색 과정 동안 회상되고 읽혀진다.
감각이 들어오고 그에 대해 반응하는 뇌에 대해 상상해 보라. 몇 번을 반복하면 우리가 스스로 무엇을 하는지 미처 알아차리기 전에 그것을 더욱 강력하게, 더욱 효율적으로, 그리고 시냅스의 강도에 변화를 일으켜서 우리가 굳이 이해할 필요 없는 과정을 통해 기억으로 변화한다.
만일 우리가 구체적으로 시냅스 변형을 없애게 하는 분자조작을 만들어내면 기억을 획득하고 검색하는 작용을 제거할 수 있다.
브레인 | 일상에서 쉽게 알 수 있는 기억강화 방법이 있는가?
첸 | 신경과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잃는다’라는 이론에 동의한다. 우리가 삶을 활력 있게 유지한다면 뇌기능도 지속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떤 사람들은 기억력을 유지하기 위해 십자말풀이를 하거나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목록들을 외우기도 한다.
내 입장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뇌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전문화되어 있는 특수조직인 반면, 심장이나 콩팥, 혈액 세포처럼 보살핌을 받을 필요가 있는 세포의 집합체라는 점이다. 따라서 뇌를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쉬고, 좋은 영양소를 섭취하고, 운동을 해야 하며, 무엇보다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한다. 잠을 자는 동안 뇌는 엄청난 활동을 한다.
수면은 신경 시스템이 학습한 특정한 패턴을 재생하고,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들을 연합하며, 스스로 재설정해서 기억하지 않을 것들을 약화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행위다.
글· 제프 리벨 Jeff Leavell
번역·안수정 cinemas87@gmail.com
*이 기사는 국제뇌교육협회(IBREA)가 발행하는 영문 계간지 <Brain World>와 기사 제휴를 통해 본지에 게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