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리포트] 공감능력을 키우는 브레인트레이닝

[집중 리포트] 공감능력을 키우는 브레인트레이닝

공생을 선택하는 마음의 역량 '공감'

브레인 99호
2023년 06월 18일 (일)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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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은 공감을 나누는 것"

미인대회는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2022 미스 어스Miss Earth’ 결선에 한국 대표 최미나수 씨가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대회가 지속되고 있음을 알았다. 

최미나수 씨를 포함해 결선에 오른 4명의 참가자에게는 최종 인터뷰 심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질문은 “세상에서 바꾸고 싶은 한 가지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이에 마지막으로 답하게 된 최미나수 씨는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자신감 있고 우아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제가 이 세상의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은 공감을 나누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지구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열린 대회이니 만큼 환경보호를 위한 캠페인과 행동 변화를 언급하는 참가자가 대부분이었는데, 진정한 변화를 위한 구성원의 ‘공감’을 강조하는 그의 참신한 메시지에 심사위원과 관중들은 환호했다. 결과를 지켜보던 이들의 ‘공감’을 크게 이끌어낸 최미나수 씨는 마침내 한국 대표로는 처음으로 세계 4대 미인대회인 미스 어스 1위에 올랐다. 공감은 다른 개체가 느끼는 감정, 생각, 입장에 자신도 그렇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공감능력이 있기에 다른 사람이 느끼는 기쁨과 즐거움, 슬픔이나 고통 같은 다양한 감정에 서로 공명할 수 있다.
 

▲ 시대 전환기에 가장 필요한 인간 역량으로 떠오른 공감능력_게티이미지


시대 전환기에 가장 필요한 인간 역량으로 떠오른 공감능력

공감은 새롭게 터득하는 기능이라기보다는 타고난 본능에 가깝다. 공감 본능은 모든 사회적 동물이 지니고 있으며 개체와 집단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인간의 경우 행동에서부터 감정과 생각, 문화적 유전자 밈meme에 이르기까지 월등히 발달했다. 인간은 탁월한 공감능력을 바탕으로 경험의 시공간적 제약을 넘어서고, 개별 개체로는 불가능한 일들을 단합의 힘으로 이루어내 지구 생태계의 그 어떤 종보다도 강력한 우위를 갖게 된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공지능 챗GPT가 등장하고, 사물인터넷과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SNS를 통해 지구상의 모든 일상이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이 시대에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으로 부상하는 것도 공감능력이다. 정부와 사회단체, 굴지의 기업들도 우수한 공감능력을 바탕으로 관계 지향적이고 섬세한 감성과 소통역량이 뛰어난 인재를 찾는다. 이 같은 흐름 속에 공감능력 향상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가 되었다.
 

공감할 때 뇌 기제와 공감이 안 되는 이유

공감능력을 키우는 브레인트레이닝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공감 반응이 일어날 때의 뇌 기제를 알아보자. 뇌 영상 촬영기법을 사용하여 추적한 결과, 마카크 원숭이의 뇌에서 공감에 관련된 신경회로가 밝혀졌다. 이 회로는 하전두회(inferior Frontal gyrus, IFG)와 하두정소엽(inferior parietal lobule, IPL)에서 발견되었다.
 

▲ 마카크 원숭이


사람의 경우에도 특정 움직임을 수행할 때와 다른 대상의 움직임을 관찰할때 모두 활성화되는 영역은 전운동피질(premotor cortex)과 하두정피질(inferior parietal cortex)로 상당히 유사하다. 신경과학자들은 이 부위에 ‘거울신경세포(Mirror neuron)’가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또 거울처럼 작동하는 이 신경세포의 작동기제가 공감능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추측한다.

길을 가다가 넘어져 다친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이 고통을 느낄 때와 같은 뇌 부위가 활성화되기에 그 느낌을 실시간으로 전달받게 된다.

일부러 애쓰지 않고 타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변화하는 신경세포의 작용에 의해 상대방의 감정과 느낌을 동시에 체감할 수 있게 된다. ‘공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뇌 기제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타인의 행동을 보는 순간 즉각적으로 타인의 입장이 되어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정상일 텐데, 어떤 경우에는 왜 그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걸까?
 

스트레스가 강하면 공감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 

신경과학자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Vilaynur S. Ramachandran은 거울신경세포 네트워크가 타인과 공감할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과 함께 타인과 나를 분리해서 인식하게 되는 기제를 규명했다. 그것은 자신의 피부를 비롯한 신체의 감각 수용기에서 뇌로 보내주는 신호 때문이다. 

아무리 다른 사람의 표정을 보고 거울신경세포 네트워크가 작동하게 될지라도 그보다 강력한 자기 신체 신호는 타인과 내가 분리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물리적으로 구획된 생체 시스템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뇌 작용이다. 그런데 이 작용이 더욱 강화되는 상황이 있다. 바로 스트레스를 받아 자기를 보호해야 할 때이다.

일상에서 흔히 스트레스를 이야기할 때 정신적인 압박감 정도의 어감을 갖고 있지만, 넓은 의미로 본다면 몸이 적응하기 어려운 육체적·정신적 자극이 일어날 때 생체가 일으키는 반응 전반을 일컫는다.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뇌를 비롯한 온 신경계가 그에 대응하기 위한 태세를 갖춘다. 

스트레스 상황은 생존에 직결된 경우가 많으므로 우선순위가 높고 대응이 강력하다. 그럼으로써 위협을 피하거나 방어할 수 있게 되고, 타격받은 부위를 회복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공감능력은 발휘될 틈이 없어진다. 문제는 현대인들이 사회시스템에서 겪는 경쟁과 갈등, 경제적인 문제, 가족과 지인, 소속 그룹에서 발생하는 관계의 문제, 먹거리, 환경으로부터 받는 수많은 자극, 건강 문제 등으로 ‘생존과 직결된(혹은 직결되었다고 여겨지는) 스트레스’를 만성적으로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트레스 반응이 반복하여 일어나면 그에 대응하는 사고, 행동, 감정과 관계된 뇌 작용의 축적으로 자신만의 견고한 신념 회로를 갖게 된다. 

이 회로는 스트레스에 자동 반응할 수 있도록 강화되기에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감정, 생각들을 보고 활성화되는 거울신경의 신호가 끼어들 틈이 없다. 자신의 공고화된 신경회로를 토대로 사고하고 행동하며 자기가 그러는 줄도 모르고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 된다.

이러한 뇌 작용은 뇌파로도 관측된다. 특히 주장이 강하고 좀처럼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는 사람은 대상회로부터 유발되는 뇌의 중앙선 과할성 뇌파와, 좌측 측두부의 과활성 및 좌우 측두부의 뇌파의 불균형이 심하게 나타난다. 이런 뇌 기제를 참고하여 공감능력을 키우는 훈련에 대한 방향성을 찾을 수 있다.

공감능력 향상은 확실히 지식적인 접근으로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라 한들 막상 화가 나는 상황에 직면하면 학습된 정보는 끼어들 틈이 없다. 스트레스에 민감하게 세팅된 편도체와 뇌 기저부에서 강력한 대응 신호를 전달하여 감정 반응이 먼저 일어나기 때문이다.
 

 공감능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면 공고화된 뇌 작용을 변화시키고 공감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공감에 대한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이 훈련은 본래 거울신경세포의 작용을 방해하는 요인을 줄임으로써 공감의 본능이 회복될 수 있도록 하는 접근이다.

훈련의 첫 단추는 자기 자신을 느끼는 것이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 생각의 변화, 신체의 변화를 잘 감지하지 못하면 거울신경으로 전달되는 다른 사람의 상황을 느끼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자신의 몸, 마음을 섬세히 느끼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신체를 이완하여 과활성된 뇌파를 안정시켜야 한다. 이완에 초점을 둔 뇌체조, 스트레칭이나 점진적 이완법, 바디스캔과 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몸 감각을 섬세히 느껴보고 감지된 긴장을 풀어낸다. 이때 인지적 도움이 있으면 그 변화가 더욱 강화된다. 지금 나에게 느껴지는 것을 말로 표현하고 글로 써보는 것은 이 감각을 발전시키고 느낌의 해상도를 높이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 공감이 확장되면 내가 곧 자연임을 자각한다_게티이미지


 공감 훈련을 더 발전시키는 방법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변화를 느끼는 감각이 깨어나기 시작했다면, 이제 외부의 자극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본다. 일차로 내 생각과 감정에 동요를 일으키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때 일어나는 신체, 감정, 생각의 변화가 어떠한지 관찰하고 적고 말해본다. 처음에는 특정 그림, 영상, 상황을 보며 그때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하는 훈련을 해볼 수 있겠지만, 조금 익숙해지면 일상에서도 가능하다. 길을 걸을 때나 지하철을 탈 때 맞은편에 있는 사람의 표정과 행동을 보면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을 방해하는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자동 반응-선입견, 방어기제, 회피 등-을 알아챈다면 그것을 조절함으로써 공감의 문을 여는 열쇠를 쥐게 된다.

함께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면 이 훈련을 더욱 발전시킬 수있다. 서로 마주 본 상태에서 내게 느껴지는 상대의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이야기해본다. 그리고 상대는 실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이야기하며 서로의 느낌을 공유한다. 뇌과학적으로도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고 감정이 나타나지 않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이는 매우 효과적인 훈련으로 성립된다.
 

공감이 확장되면 내가 곧 자연임을 자각한다

다른 사람과 공감하는 감각이 향상된다면 범위를 넓혀 보자. 반려동물과 반려식물, 자연에서 마주하는 나무, 꽃, 바위, 구름, 그리고 지구까지 모든 환경은 공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것 역시 첫 번째 단계인 자신을 느끼는 훈련이 잘 이루어졌을 때 가능한 것이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오롯이 느끼는 가운데 자신에게 깃든 생명현상을 마주할 수 있고, 자신이 곧 자연임을 자각할 수 있다. 나는 곧 이 환경의 일부, 지구의 일부임을 알게 되며 자연스레 우러나는 주변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우리가 가진 탁월한 공감능력을 회복하게 하는 근원적 동력이 될 것이다.

사실 이러한 공감 훈련은 어릴 때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유아기 때부터 적절한 애착과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섬세하게 감지하고 표현할 수 있게 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경험을 이끌어준다면 미래 세대를 위한 가장 값진 교육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런 아이가 자라서 공감능력을 갖춘 인재가 되고, 또 공감을 바탕으로 전 지구적 연대를 이뤄 공생하는 시스템을 만들 테니 말이다.

글_노형철 브레인트레이너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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