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귀가 아니라 삶이 도청당한다…‘조작된 도시’와 ‘스노든’

[리뷰] 귀가 아니라 삶이 도청당한다…‘조작된 도시’와 ‘스노든’

1988년 8월 4일 MBC 스튜디오에 20대 청년이 무단 침입해서 앵커의 마이크를 뺏고 “귓속에 도청장치가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 귓속에 도청장치가 들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평소 정신착란증세가 있던 괴청년의 돌발행동은 지금도 회자가 되고 있다.

옛 대학교 선배는 “저 사람은 ‘매트릭스(The Matrix)’의 네오(neo)가 아닐까”라고 말해서 웃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도청(盜聽)이란 상대방의 허락 없이 듣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수집한 정보를 악용할 경우에 맞이하는 사회는 어떠할까? 라는 물음을 갖게 된다. 특정인이 아니라 만인을 대상으로 자행되는 정보수집과 조작은 지금도 자행되고 있지 않은가? 그러한 점에서 영화 ‘조작된 도시(Fabricated City, 2017)’와 ‘스노든(Snowden, 2016)’을 만나보자.(※이 기사에는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다)

▲ 영화 '조작된 도시' 스틸컷

‘웰컴 투 동막골’을 연출한 박광현 감독이 12년 만에 내놓은 ‘조작된 도시’에서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 출신인 권유(지창욱)는 PC방에서 게임에 빠져 사는 백수다. 그는 간병인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홀어머니(김호정)와 살고 있다. 권유는 어느 날 PC방 옆자리에 놓인 휴대전화를 찾아달라는 낯선 여인의 전화를 받는다. 사례금으로 30만 원을 준다는 말을 듣고 모텔에 갔다가 미성년자 강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서 교도소에 갇히고 만다. 교도소에서 가까스로 탈옥한 권유는 해커 털보(심은경), 특수효과 전문가 데몰리션(안재홍) 등 게임 속에서 팀플레이를 펼치던 멤버들의 도움으로 사건의 실체를 해결한다.

직장도 없는 백수가 공권력과 미디어를 좌지우지하는 빅데이터 거물과 싸운다. 악당을 하나씩 물리치면서 최종적으로 승자가 된다는 만화 같은 스토리가 빠르게 전환되는 장면과 함께 시선을 사로잡는다. 물론 권유의 억울한 누명은 ‘항소’라는 법적인 테두리가 아니라 게임 동료들과 외곽에서 풀어간다는 점은 다소 비약일 수 있다. 아무튼 정보 조작으로 평범한 사람들을 위험에 빠지게 하는 것은 비단 영화에서만은 아닐 것이다.

▲ 영화 '스노든' 스틸컷

올리버 스톤 감독의 ‘스노든’은 2013년 미국을 비롯해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내부고발자 에드워드 조지프 스노든의 실화를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미국의 해안경비대 장교로 복무했다. 어릴 적에 9.11 테러를 보고 자란 스노든은 미국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스무 살이던 2003년 특수부대 ‘그린베레’에 자원입대한다. 그러나 훈련 중 불의의 사고로 제대한다. 하지만 스노든은 뛰어난 머리와 컴퓨터 실력으로 CIA의 IT 보안담당자로 들어가게 된다. 그는 능력을 인정받고 미국 국가안보국(NSA)에서 일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사랑했던 미국의 민낯을 보면서 놀라게 된다. 적이 아니라 민간인을 대상으로 감시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장 많은 정보가 수집된 나라는 러시아, 중국, 이란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자신의 여자 친구도 감시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침내 그는 선택한다. 이를 폭로하겠다고. 미국 NSA가 자국민과 외국인 등을 상대로 대량 통신 감청을 벌였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영국 가디언지 등을 통해 밝힌다. 미국 정부는 스노든을 반역죄로 수배했지만 스노든은 러시아에 임시거주를 허가를 받아서 지금까지 머물고 있다.

그의 행동이 옳고 그른지 묻기 전에 ‘감청’이 얼마나 많은 정부에 의해서 자행되고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모른다는 것에 일침을 가한 영화라고 하겠다. 감청이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이를 감시하는 언론인들에게 내부고발자의 용기가 없었다면 국민은 혈세를 통해서 감시당하는 사회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세계적 보안 전문가 브루스 슈나이어는 《당신은 데이터의 주인이 아니다(반비2016)》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빅브러더가 출현했다”라며 “데이터는 정보시대의 배기가스다. 정부나 기업은 뿜어져 나오는 데이터를 차곡차곡 쌓아뒀다가 필요하면 언제든 꺼내 쓴다”라고 지적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전화, 신용카드, 인터넷 SNS 등의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정부와 기업 등을 견제해야하는 이유다. 그렇지 않다면 방송국에 난입해서 귀가 아니라 우리 삶 전체가 도청당하고 있다고 외쳐야할지도 모른다.

글. 윤한주 기자 ykd09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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