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영 초대 부통령의 단군영정을 찾아서

이시영 초대 부통령의 단군영정을 찾아서

단군문화기획 30편 전라북도 익산시 동산동 단군성묘

“도지사, 시장, 경찰서장, 사람이 많았지. 다 왔어. 그때는 어마어마했지. 지금은 인원이 많이 줄었어. 갈수록 줄어.”

성전에서 만난 한 익산단조봉성회원의 말이다. 그가 기억하는 성전의 화려했던 시절은 1950∼60년대이다. 당시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개천절에 참석했다. 그러니 지역의 수장들이 행사를 주관하고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지금은 대통령도 참석하지 않는 국경일이 된 지 오래다.

▲ 익산 단군성묘 천진전에서 개천절 대제가 유교식으로 거행되고 있다.(사진=윤한주 기자)

단군성묘의 어제와 오늘

성전의 역사는 광복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6년 민족의 정기를 되찾고자 국조 단군을 모시는 봉성회가 결성됐다. 주로 유림들이 주축이 됐다고 한다. 이들은 그해 1월 15일 대종교 중광절을 맞아 서울에서 초대 부통령을 지낸 독립운동가 이시영 선생(李始榮, 1869∼1953)을 만난다.

박영주(75) 총무의 말로는 이시영 선생이 만주에서 독립운동하면서 가지고 있던 영정을 선뜻 내주셨다고 밝혔다. 이 영정은 가로 120㎝, 세로 60㎝ 크기의 채색화이다. 1910년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작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아무튼 이시영 선생의 단군영정 기증은 익산에 단군성묘(檀君聖廟)가 건립된 계기가 됐다.

이강오 전북대 명예교수는 ‘한국신흥종교총람’에서 “1949년에 단군전 신축대지를 정리하는 등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6.25 동란이 일어나 계획은 중단됐다”라며 “1951년에 유지들의 성금을 모아 동년에 단군전의 본전과 정문을 준공했다. 그해 개천절에 낙성식을 거행하면서 진영 봉안식도 거행했다”라고 밝혔다.

봉성회는 1년에 2번 제사를 지낸다. 단군왕검이 하늘에 오른 어천대제(御天大祭, 음력 3월 15일)와 나라를 건국한 개천대제(開天大祭, 양력 10월 3일)가 그것이다.

개천대제는 유교식으로 진행된다. 천제상에는 대추, 밤, 사과, 배, 북어, 닭고기 등이 올려졌다. 일반 제사음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한 고사상에 올라가는 돼지머리가 눈길을 끈다. 청원군 은적산 단군성전에는 소머리가 올라가는 것과 대조적이다.

 

▲ 단군성묘의 주변 건물은 문짝이 뜯겨졌고 비가 새는 등 관리가 안되고 있었다.(사진=윤한주 기자)

쓰레기투기, 도난사고가 이어져

성묘는 제사를 제외하고는 문을 꼭 닫는다. 관리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찾는 사람은 국내외를 막론한다.

“재작년에는 일본 학생들도 왔어. 저 밑에 차를 세워서 여기까지 왔는데 담이 높으니깐 고개를 내밀고 보고 말았지.”

사람들의 관심은 높지만, 성묘의 실상은 참담했다. 빨간 벽돌로 이뤄진 담은 오래되고 무너져 시멘트로 보수됐다. 성묘의 동재와 서재 역할을 했던 건물은 문짝이 뜯겨졌고 비도 샌다. 화장실에 들어가 보니 악취가 나는 푸세식이었다.

최근에는 제기, 제복 등을 훔쳐간 도난사고도 겪었다. 용의자를 찾는다고 전화번호를 남긴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또 봉성회 측은 “요즘에는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말했다. 양심 없는 주민들이 한밤중에 성묘 앞에 버린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보수도 쉽지 않다. 이곳이 국유지이기 때문이다. 서산 옥녀봉 단군전처럼 나라의 땅에 성전을 지어서 더욱 그렇다. 돌아오는 발길이 무거웠다.

글. 사진 윤한주 기자 kaebin@lycos.co.kr

▲ 전라북도 익산 단군성묘(사진=윤한주 기자)

■ 찾아가는 방법(바로가기 클릭)

1. 자가용

호남 고속도로 삼례 I.C. 이나  전주?군산  I.C. → 익산시 → 동산동주민센터 → 단군성묘

2. 대중교통
익산고속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면 3,000원 내외로 갈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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