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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진 창문턱마다 화초가 아담하게 놓여 있다. 화초를 비추는 햇살을 따라가 보니 고즈넉한 성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성당 마당 나무 그늘 아래 모여 앉아 휴식을 취하는 회사원들, 그리고 그들 곁을 지나는 신부들. 이 모든 풍경을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내고 있는 대한성공회 성당에서 사람 냄새 풀풀 나는 김한승 신부를 만났다.
.jpg) 독서대학 르네21 운영위원장 대한성공회 김한승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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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뱅크, 독서대학 르네21 등 여러 방면으로 사회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종교인으로서 이런 활동을 하는 목적은 무엇인 가?
종교는 종교적 신념을 전파하는 전도 행위 외에도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복지 사업, 교육문화 사업 등 사회의 여러 분야에 공헌해야 한다.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나 종단에서도 사회 공헌 활동을 많이 한다. 나는 성공회에서 전국 단위로 사회 선교 사업을 하는 기관에 몸담고 있다. 음식을 기부 받아 어려운 이웃에게 지원하는 푸드뱅크나 독서대학 르네21도 우리 사회에 순기능을 담당하는 차원에서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 종교단체에서 밥이나 물품을 지원하는 활동은 많이 봐왔고 익숙하다. 그런데 독서대학이란 아이템은 독특하다.
독서대학을 구상하고 준비해온 지는 오래됐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몸의 양식 을 전하는 푸드뱅크 사업을 하면서 그들에게 당장의 먹을거리도 필요하지만, 정신을 건강하게 할 마음의 양식을 전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독서대학은 2004년에 주먹밥콘서트를 하면서 함께 연 주먹밥 시민강좌와, 2005년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 강좌인 성 프란시스 대학이 그 출발점이 되었다. 당시 이런 시도에 대해 사회복지 혜택이 시급한 이들에게 무슨 인문학이냐며 주위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러나 막상 강좌에 참석한 이들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였다. 무시나 동정의 대상이던 그들도 마음속에 자기실현 욕구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강좌를 통해 일반 시민사회에도 이런 강좌가 필요함을 느끼고 ‘독서대학 르네21’을 추진했다.
> 독서대학을 만들 정도로 독서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우리 성당은 시청과 가까이 있어 광장에서 빚어지는 우리 시대의 온갖 갈등을 목도하게 된다. 개인 또는 집단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갈등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자신을 성찰하고 남과 소통하는 법을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된 원인은 많은 사람이 물질에 정신을 빼앗겨버렸기 때문이라고 본다. 물질을 획득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소통 없이 경쟁하고 싸우는 현실에서, 소통과 성찰의 계기를 심어줄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이 독서라고 판단했다. 강의실 담을 넘어 학교, 가정, 직장 등 생활 현장에서 함께 책을 읽으며 서로 교류하는 것이 독서대학의 목표다.
> 독서를 통한 개인의 성찰과 소통은 어느 정도 가능할까?
각종 미디어가 넘쳐나고 화려한 시각적 요소에 휘둘리기 쉬운 세상이라 학생부터 어른까지 책을 멀리한 지 오래다. 여기서 말하는 책은 경쟁을 부추기는 실용서 같은 것이 아니라 고전이나 인문 도서를 말한다. 서점에서는 여전히 책이 넘쳐나고 도서 전문 강좌나 책읽기 모임도 많다. 우리 사회가 지식이나 정보가 부족해서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끄는 무언가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먼저 깨우친 이들의 지혜를 담은 인문 도서를 함께 읽는 강좌를 택한 것이다. 인문 도서는 사람이 왜 살고,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를 깨우치게 한다. 이런 자기 성찰적 책읽기는 지난 삶을 돌아보고 다른 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문화를 만들 것이다.
> 신부로서 목회 활동보다 사회 활동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정체성의 혼란은 없나?
사회 선교 활동은 내가 하고 싶어서 지원한 일로 올해로 10년째 하고 있다. 이 활동을 시작한 것은 지금도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신부라는 신분도,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신부복도 모든 것이 다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란 뜻의 영어 단어 퍼슨person은 고대 페르시아에서 가면을 의미했던 페르소나persona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사람은 가면을 쓰고 사는 존재다. 화장이나 성형도 그렇지만 기뻐도 슬픈 척, 슬퍼도 기쁜 척하는 모습 또한 가면이다. 가면 속에 있는 본모습을 봐야 한다. 그저 사람과 사람의 관계일 뿐 ‘나는 신부, 너는 일반인’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 앞으로는 또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유기농 농장을 하고 싶다. 요즘 하도 먹을거리에 문제가 많아서 푸드뱅크에서도 신선하고 안전한 음식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 우리가 음식을 공급하는 지역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유기농 농장을 하려고 한다. 개인적으로도 도시의 칼바람을 맞고 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농장도 사회적 기업 방식으로 만들어 공동체를 이룰 생각이다. 세상에서 제일 힘들면서도 보람된 일이 서로 돕는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일 아니겠는가.
글·박영선 pysun@brainmedia.co.kr | 사진·김경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