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폰은 대세다. 빛나는 스마트폰을 꺼내어 애플리케이션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통화나 하는 자신의 핸드폰을 슬쩍 주머니 속에 넣게 된다. 스마트폰을 쓰는 이들은 정말 스마트한 선택을 한 것일까? 스마트폰은 두뇌에도 스마트한 영향을 주는 것일까?
과학자들은 그 선택의 스마트함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뉴욕타임스> 인터넷판(2010.8.24)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팀은 디지털 과부하 속에서 사람들이 휴식시간을 빼앗겨 더 잘 배우고, 기억하고, 새로운 생각을 떠올릴 기회를 오히려 놓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변화하는 디지털은 갈수록 인간의 멀티태스킹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은 더 많은 것을 동시에 해내길 원한다. 과연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고 있을까?
멀티태스킹과 집중력
멀티태스킹은 현대인들에게 시간을 벌 수 있는 새로운 방법처럼 보인다. 하지만 멀티태스킹은 우리를 집중력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게 한다. 물 위로 고개를 내밀어 다른 작업을 했다가 다시 본래 집중했던 작업의 바다로 들어가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능숙하다고 해도 여러 작업을 오가다 보면 뇌는 집중력 면에서 피곤을 느낄 수밖에 없다. 매번 우리 뇌가 목표를 바꾸고, 새로운 작업 룰을 기억하고, 이전 활동들의 방해를 차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멀티태스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각을 담당하는 뇌의 36개 부분에 자리 잡은 뉴런을 살펴봐야 한다. 이들 뉴런은 서로의 의미를 기억에 새기기 위해 뇌에 감각정보를 서로 남기고자 경쟁을 벌인다. 이때 의미를 만드는 핵심역할을 하는 것이 집중력이다. 주의를 기울이면 하나의 응집 에너지장이 부각되고 경쟁에서 진 나머지 뉴런 집단은 활동이 억제된다.
집중력과 기억작동
기억작동이야말로 멀티태스킹의 아킬레스건이다. 정보를 기억하는 우리 두뇌의 저장고 용량이 지극히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기억의 저장고를 짓기 위해서는 시간과 의지가 필요하다. 시간에 쫓겨 기억저장과 검색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집중력을 잘게 쪼개는 우리의 모습은 마치 술에 취해 있거나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 같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은 백번 옳다. 당면한 상황에 가장 적절한 정보에만 집중하는 것이 생존의 길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집중력이 한번 분산되거나 다른 일에 이끌리게 되면 관련 없는 글자나 말은 불과 몇 초 만에 잊어버린다. 기억을 쌓아올리는 것은 경험, 지혜, 적절한 정보 등 우리가 캐낸 자원들로 건물을 짓는 것과 같다. 집중력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준다면 장기기억은 우리 하나하나를 저마다 다른 개인으로 만들어준다.
기억한다는 것은 다시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억을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는 스냅사진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 저장고는 광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무언가를 기억하려면 핵심 기억들을 재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기억을 도려내고, 더하고, 꾸미고, 왜곡하는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집중력과 의지력
무엇이 의지력을 발휘하게 하는가? 집중력을 이용한 통제가 바로 의지력을 움직이는 동력이자 눈앞의 유혹에 저항하는 힘이다. 아이들의 집중력을 생각해 보자. 아이들에게 10분 동안 과자를 먹지 않으면 놀이공원에 데려가겠다고 해본다.
의지력이 있는 아이들은 일부러 과자를 바라보는 것을 피한다. 대신 주변의 장난감 같은 것을 가지고 논다. 자신의 집중력을 활용해 유혹을 물리치는 것이다. 집중력이 좋은 선수들이 인내심이 많은 것도 이런 논리다. 우리는 집중력을 통해 목표와 견해를 유지하면서 순간의 유혹을 피하고 들뜨는 마음을 가라앉힌다.
자기 조절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열의라는 집중력과 끈기의 형태로 꽃을 피운다. 열의는 학업성취와 심도 있는 사고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자기 조절의 원동력인 집중력, 인지력, 판단력이 없으면 우리는 산만한 환경에서 자신을 지킬 수도 목표를 세울 수도 없다.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에서 결국에는 제대로 된 인생행로를 만들지 못한다.
집중분산의 해독제
멀티태스킹은 집중분산의 귀재다. 현대인에게 집중력 분산을 위한 해독제는 없는 것일까. 우리를 치유해 줄 해독제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발견에 있다. 우리가 집중력을 이해하고, 강화하고, 가르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과학과 예술, 이 두 분야는 상극이지만 집중력을 세심히 분석하고, 다시 되살리고, 존중하려 노력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인체를 파악하는 지식의 기본 단위들, 자연 속에서 아름다운 패턴을 찾아내는 법, 자신을 잊고 창작과정에 몸을 내맡기는 이 모든 것들에는 엄청난 집중력이 요구된다. 주위가 분산되기 쉬운 이 세상에서 이와 같이 집중력의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집중력 분산의 해독제를 찾는 길일 수 있다.
또한 명상은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단순히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마음의 작동과정을 탐구하고 조절하는 것이다. 2천5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일종의 정신 체조인 셈이다. 명상 수행의 목적은 명상 자체에 있지 않다. 명상을 통해 더 자애롭고 차분하고 기쁨에 찬 상태가 되는 것이 목표다. 명상을 통한 마음 탐구에서 집중력은 이미 수천 년 동안 핵심 열쇠였다.
우리가 멀티태스킹에 의존하면 할수록 세상을 커다란 그림으로 바라보고 장기적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기회와 능력은 점점 바닥나고 만다. 효율성만 내세우다 보니 우리를 진정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목표, 계획, 판단, 자기조절 같은 기본 자질들은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집중력의 문화를 만들어낼 능력이 있다. 잠시 쉴 줄 알고, 유대관계를 맺고, 판단하고, 사람이나 생각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자기 두뇌를 자기가 책임지고 움직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글·최유리 yuri2u@hanmail.net
도움받은 책·《집중력의 탄생》 매기 잭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