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가 신경으로' 척수손상 마비 치료 새 지평 열렸다

'흉터가 신경으로' 척수손상 마비 치료 새 지평 열렸다

기초과학연구원, 정밀 유전자 발현 기술 ‘TRANsCre-DIONE(트랜스크리-디오니)’ 개발

화(禍)를 바꾸어 복(福)으로 만든다는 ‘전화위복’처럼, 척수손상 후 생긴 흉터를 신경세포로 바꾸어 마비를 회복시키는 신기술이 나왔다.

기초과학연구원(IBS) 기억 및 교세포 연구단 이창준 단장 연구팀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하윤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척수손상 부위의 흉터 조직을 신경 재생 자원으로 활용하는 정밀 유전자 발현 기술 ‘TRANsCre-DIONE(트랜스크리-디오니)’을 개발했다.
 

▲ 연구성과 모식도 [그림=IBS]

척수손상은 한 번 발생하면 신경 재생과 기능 회복이 매우 한계적인 난치 질환이다. 손상이 일어나면 뇌와 척수에서 신경 환경을 유지를 돕는 ‘별세포’가 염증에 반응해 형태와 기능이 변하는 ‘반응성 별세포’로 과도하게 증식한다. 

이들이 손상 부위를 둘러싸며 형성하는 일종의 흉터인 ‘교세포 흉터’는 추가 손상을 막는 방어벽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손상된 신경세포가 다시 자라고 신경회로를 복구하는 과정을 가로막는 결정적 장벽이 된다.

연구팀은 교세포 흉터를 오히려 신경 재생의 자원으로 삼는 역발상 전략을 세웠다. 개발한 TRANsCre-DIONE 기술을 통해, 손상 부위의 반응성 별세포만을 정밀하게 표적하여 신경세포 분화를 유도하는 스위치 단백질인 ‘Neurogenin2(뉴로지닌2, Ng2)’를 발현시켰다.

이를 통해 별세포를 줄기세포 단계를 거치지 않고 직접 운동신경세포로 전환시키는 ‘전화분화’에 성공했다. 이렇게 새로 태어난 세포들은 형태만 신경세포일 뿐만 아니라, 전기 신호를 내보내고 주변 신경회로와 시냅스를 형성하는 등 신경세포의 기능을 완벽히 수행했다.

특히 유전자 스위치인 Ng2는 주입되는 부위의 환경에 맞추어 필요한 신경세포로 맞춤 변환되는 특성을 보였다. 뇌의 운동 조절과 습관 형성을 담당하는 ‘선조체’에 주입했을 때는 신경 활동을 진정시키는 ‘가바(GABA)성 신경세포’로, 척수 부위에 주입했을 때는 운동 능력을 담당하는 ‘운동신경세포’로 바뀜을 확인했다.
 

▲ 반응성 성상교세포 특이적 운동신경 전환 및 척수 회복 유도 [그림=IBS]

연구팀은 마우스 뇌 선조체 손상 모델에서 62%의 높은 효율로 신경세포를 대체했다. 이어 정밀 검증이 까다로운 영장류(게잡이원숭이) 환경에서도 93.13%라는 높은 표적 정밀도와 세포 전환 가능성을 입증해 임상 적용 가능성을 대폭 높였다. 나아가 척수손상 생쥐 모델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인 87%의 신경 전환 효율을 기록하며, 손상 부위 주변 신경회로를 재구성하고 마비되었던 뒷다리의 운동 기능을 회복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 개발된 TRANsCre-DIONE 시스템은 체내에 이미 존재하는 별세포만을 활용해 신경 재생을 유도하며, 정상 세포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따라서 기존의 줄기세포 이식이나 외부 세포 투여 치료법에서 발생하는 면역 거부 반응이나 종양(암) 형성 같은 치명적 부작용을 원천 차단한다는 강력한 장점이 있다.

하윤 연세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신경회로의 근본적 재건 가능성을 제시해 기존 척수손상 치료의 한계를 극복했다”며 “향후 임상 적용 시 척수손상 치료 패러다임을 기능 보존에서 신경 재생 중심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창준 IBS 연구단장은 “TRANsCre-DIONE 기술은 척수손상뿐만 아니라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 파킨슨병, 뇌졸중 등 다양한 신경계 질환 치료에도 확대 적용될 수 있다”며 “하루빨리 실용화되어 척수손상 환자들이 다시 일어서는 기적이 일어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Nature)의 자매지인 ‘실험분자의학(Experimental & Molecular Medicine)’에 9월 11일 온라인 게재됐다.


글. 우정남 기자 insigt159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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