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 자기답게 사는 작은 습관의 누적

루틴, 자기답게 사는 작은 습관의 누적

우리 존재의 뇌과학

브레인 111호
2025년 08월 11일 (월)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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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틴, 자기답게 사는 작은 습관의 누적 [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좋은 하루는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얼마 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직장인의 하루 루틴 게시글이 인상적이었다. 업무 강도가 꽤 있는 직장에 다닌다는 K 씨. 그는 건강하게 늙고 싶다는 바람으로 지난 5년간 서서히 바꿔 온 생활 방식을 공유했다. 

그가 가장 먼저 습관을 들인 것은 운동이다. 긴 직장 생활 동안 지킬 수 있는 것은 건강뿐이라는 생각에 하루 30~40분씩 주 5일 운동을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퇴근 후에는 시간이 나지 않아 주로 점심시간을 이용해 헬스를 했다. 솔직히 매일 운동을 하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막상 시작하면 즐겁고 무념무상의 상태에 이르게 돼 명상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식단도 다이어트식으로 바꿨다. 아침을 거르다 보니 자연스레 16시간의 공복을 유지하는 간헐적 단식이 가능해졌다. 점심시간에 운동을 하기 때문에 점심 식사는 간단하게, 회사에서 제공하는 닭가슴살 샐러드를 드레싱 없이 먹는다. 탄수화물은 집에서 직접 만든 올리브 통밀 파스타로 보충하며 외식은 거의 하지 않는다. 가끔 회식이 있을 때는 술도 마시고 고기 위주의 안주를 먹는데, 다이어트식도 먹다 보면 꽤 맛있게 느껴진다고 한다.

퇴근 후에는 두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귀가하자마자 설거지, 빨래, 육아를 하는데, 일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생활로 받아들이니 반복적인 일도 재미있게 느껴지더란다. 덕분에 아이들과의 관계도 좋아졌다. 

현재 그는 체지방률 9~10퍼센트대를 유지하고 있다. 7층 이하 건물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셈 치고 계단을 이용하며, 자기 전에 유튜브를 보지 않고, 이동할 때도 스마트폰보다 하늘 한 번 더 쳐다보려고 노력한다. 이런 사소한 습관의 변화가 일상의 행복도를 조금 더 끌어올렸다고 한다. 
 

▲ [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몸을 움직이면 마음이 따라온다 

미라클 모닝, 하루 두 끼 식사, 오후 6시 이후 금식, 회사까지 도보 출근, 퇴근 후 운동 등은 건강한 삶을 꿈꾸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시도해 봤을 일상의 루틴이다. 하지만 막상 실천하려면 생각처럼 쉽지 않다. K 씨도 이런 습관이 정착하기까지 5년이 걸렸으며, “모든 과정이 잘됐다 안 됐다를 반복하므로 완벽을 지향하기보다 계속 방향을 잡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뇌과학이 이런 문제들을 개인의 의지력과 성격 탓으로 돌리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최근의 뇌과학은 인간의 뇌가 ‘동기’라는 신호에 반응하기보다는 ‘행동’이라는 출력에 반응하여 회로를 재편한다고 보고 있다. 뇌는 감각 기관으로 들어온 감각 정보를 출력하는 입출력 변환 장치이다. 

그래서 보통 마음을 먼저 먹어야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우리 뇌는 반대로 작동한다. 입력보다 출력이 중요하고, 행동이 감정을 이끈다. 의욕이 생겨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다 보면 의욕이 생긴다.

일본의 뇌과학자 이케가야 유지는 뇌에 동기를 부여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설명한다. 첫 번째는 보상을 통해 의욕이나 동기를 고취하는 외발적 동기 부여 방식이다. 목표를 달성했을 때 인센티브를 주는 식의 고전적인 방식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실제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의욕이 없어도 일단 시작해보는 것이다. 이케가야 유지는 이를 작업 흥분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흥분이란 뇌의 신경세포가 활성화한다는 의미다. 

    

움직임이 뉴런을 활성화한다  

유독 잠이 많은 나는 아침잠이 없는 사람, 즉 침대에서 뒤척이지 않고 바로 일어나는 사람을 세상에서 제일 부러워했다. 한번은 10년 내내 결근 없이 직장을 다니는 지인에게 매일 새벽 6시 10분 전에 일어날 수 있는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자기가 아침잠이 없는 게 아니라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움직이다 보면 얼마 안 가 잠이 깬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고, 그래서 비몽사몽인 상태에서도 일단 몸을 움직이는 것뿐이라고 했다. 

이불 속에 누워 있는 상태에서는 뇌가 깨기 어렵지만 뇌의 상태와 상관없이 몸을 일으켜 이를 닦고 세수를 하다 보면 그 움직임에 이끌리듯 뇌도 깨어난다. 그러니 아무리 기다려도 의욕이 나지 않을 때는 일단 몸을 움직이는 게 상책이다. 

최근에 이 사실을 실감한 적이 있었다. 나는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글쓰기와 편집, 디자인을 병행하고 있는데, 얼마 전에 디자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며칠 동안 작업이 멈춘 적이 있었다. 

그러다 일정에 쫓겨 마음이 급해진 나머지, 머릿속 구상을 집어치우고 일단 편집 툴을 켜고 마우스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순차적으로 일이 풀렸다. 일단 시작하고 나자 그다음에 해야 할 것들이 자동으로 떠올랐고, 그것들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결과물이 완성되었다. 

이렇듯 몸을 움직이면 마음은 따라온다. 마중물을 먼저 올려야 뇌가 그 상태에 맞는 도파민, 노르아드레날린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는 데 필요한 프로세스를 준비시킨다. 

듀크대학교 데이비드 크루파David J. krupa 박사팀이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신체 운동을 동반하면 뇌에서 뉴런이 10배나 강하게 활동한다고 한다. 

실험자가 쥐의 수염에 사물을 접촉시켰을 때와 실험 쥐가 스스로 수염을 움직여 사물에 접촉했을 때의 뇌의 반응을 비교하는 실험에서, 후자의 쥐, 그러니까 스스로 움직여서 사물에 접촉한 쥐의 대뇌피질에서 뉴런 활동이 10배 이상 강하게 나타났다고 한다. 똑같은 감각 자극이 뇌에 전달돼도, 신체 활동을 동반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뇌의 활동에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 [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작고 하찮게 시작한다

물론 무작정 몸을 움직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피곤하고 의욕이 없을 때는 작업 흥분을 일으킬 최초의 동력을 끌어모으기조차 쉽지 않다. 그럴 때는 아주 하찮게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 배우가 시도한 기상 미션이 그랬다. 그는 스스로 생각해도 의지가 강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뇌가 부담 없이 수행할 수 있는, 깃털처럼 가벼운 미션을 부여했다. 이를테면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물 한 컵을 마시면 성공이라는 식이다.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알람 소리에 눈을 떠도 몸을 일으키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는 사실을. 

그러나 물 한 컵을 마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정도는 비교적 쉽게 수행할 수 있다. 그런 미션은 어쨌든 침대에서 몸이 빠져나오게 해준다. 물을 마시고 나면 정신이 환기되어 잠이 깰 확률도 높아진다. 그는 물을 마시고 다시 자더라도 어쨌든 6시 기상이라는 목표는 이룬 거라고 자신을 다독였다고 한다. 

그런 그가 달리기를 시작하는 데도 1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이때도 작고 하찮게 시작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가장 처음 목표는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기. 밖으로 나가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사람들이 알아볼까 봐 바로 달리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는 더 하찮은 목표를 세웠다. 

달릴 용기까지는 없으니 우선 걷자고. 어떤 날은 걷는 것도 버거워 아주 느리게 걷는 명상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작고 하찮은 행동이 조금씩 누적되자 어느새 그게 루틴이 됐다. 루틴을 30일만 반복하면 뇌에 회로가 생기고, 결국에는 달릴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책 한 권을 읽는 게 부담스럽다면 일단 한 페이지만 읽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식욕이 없다면 한 숟가락만 먹자고 스스로 다독일 수 있다. 첫 행동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도록 자신을 설득하고 나면 뇌는 첫걸음을 뗄 수 있다. 

일단 시작하고 나면 그다음 단계는 의외로 어렵지 않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 두 번째 장을 넘길 수 있고, 이왕 첫술을 떴으니 몇 술 더 뜨는 건 일도 아니게 된다. 

하나 더, 이미 잘 돌아가고 있는 시스템 속에 새로운 루틴을 연결하는 것도 방법이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기지개를 켜는 식으로 말이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행동은 어떤 노력 없이도 자연스럽게 수행할 수 있으니 거기에 ‘기지개 켜기’라는 새로운 행동을 연결해 하루에도 몇 번씩 경직된 몸을 풀어줄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 [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꾸준히 오래 지치지 않고 해내는 방법 

하지만 루틴이 너무 고착되면 자칫 보어아웃boreout에 빠질 수도 있다. 보어아웃은 현대인들에게 번아웃burnout보다 더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으로, 모든 것이 지루하고 의미 없게 느껴지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집중력도 떨어지고 실수도 잦아지므로, 반복되는 삶에 권태를 느끼고 있다면 루틴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정신과 의사 하지현은 같은 곡을 수십 년 동안 반복 연주하는 클래식 연주자들이 지루함을 해결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바이올린 연주자 아이작 스턴은 연주에서 지루함을 느낄 때마다 더 깊이 파고들어 연주의 디테일을 조정하는 식으로 직업 특성상 피할 수 없는 지루함을 극복했다고 한다. 반복되는 작업 속에서 깊이와 디테일을 찾으려는 노력이 연주자로서의 가치와 보상으로 이어진 셈이다. 

중요한 건 자기에게 딱 맞는 루틴을 찾는 것이며, 스스로 삶을 주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루틴은 자기 효능감 못지않게 안정감을 준다. 

기사를 마무리할 즈음, 내 유튜브 알고리즘에 홋카이도에 사는 92세 할머니의 브이로그가 떴다. 배경음악 없이 달그락거리는 생활 소음만 잡히는 할머니의 일상은 느리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절임류와 샐러드를 소량씩 덜어 소박한 한상차림으로 아침을 먹고 햇빛 잘 드는 창가 탁자에 앉아 매일 배달되는 신문을 뒤적여 서걱서걱 칼럼을 오린다. 오린 칼럼을 노트에 붙여 한 자 한 자 소리 내 읽고 시간을 들여 숫자 퍼즐을 맞춘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내년 여름에 입을 원피스에 자수를 놓는다. 오후에는 긴 소파에 누워 잠깐 낮잠을 자고 해가 저물면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 연습을 한다. 

작고 소박한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할머니의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나이 듦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걷히는 기분이었다.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는 루틴 몇 가지만 있다면 인생에 두려울 게 없으리라는 기대감이 서서히 차올랐다. 


글_전채연
출판 기획자이자 작가. 쓴 책으로는 《스님의 호흡법》, 《우리 뇌는 그렇지 않아》, 《휴맥스, 다시 벤처 정신을 말하다》, 《박지성처럼 꿈꿔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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