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목 놓아 부르고 싶은 이름

다시 목 놓아 부르고 싶은 이름

명상적 순간

놀랐을 때 내뱉는 말

당신이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면 세대, 성별, 지역을 초월하여 모든 상황에서 찰지게 쓸 수 있는 신비의 단어가 있다. 울고 싶을 때! 놀랐을 때! 억울할 때! 짜증날 때! 돈이 없을 때! 배고플 때! 어젯밤 분명히 탁자 위에 올려놓은 신용카드를 외출 직전까지 못 찾고 있을 때! 모든 상황을 초월하여 이렇게 말하면 된다. ‘엄마’(엄~마~ 엄마!! 엄…마… 엄마아아아)

‘엄마’는 정녕 호칭인가? 감탄사인가? 이 단어의 신비함에 대해 알아버린 것은 내가 아주 어릴 적, 엄마에게 된통 혼난 날이었다. 왜 혼이 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날의 아픔만을 기억할 뿐이다. 화가 난 엄마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계셨고, 내 애타는 절규에도 돌아보지 않으셨다. 

“엄~~~마!!!!” 나는 목 놓아 울었다. 슬픔이 내가 되고 내가 슬픔이 되는 무아의 경지를 지나, 내가 소리가 되고 소리가 내가 되는 득음의 경지에 오르기 바로 직전, 뇌리에 섬광 같은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왜 엄마한테 혼나서 울고 있는 지금도 엄마를 부르며 울부짖나?’ ‘내 설움에 응답하지 않는 이의 이름을 왜 이다지도 목 놓아 부르는가?’ 잠시의 정적 후 나는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힘차게 울어재꼈다.“아빠!!!!”

엄마 대신 아빠를 부르며 울어 보기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나는 이내 울음을 그쳤다. 왜냐고? 더 이상 울 맛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는 너무나 달랐다. ‘엄’ 목젖을 내려 콧속 공간을 공명시키다 보면 콧등과 콧방울로 울림이 전달되고, 곧이어 ‘마’하는 소리가 봉숭아 씨앗처럼 입술을 열고 툭 터져 나온다. 그 부드러운 음파가 입술로, 턱으로, 가슴으로 물 흐르듯 흘러내리고, 다시 또 차오르며 ‘엄’의 공명이 시작된다. 끊임없이 돌고 돌며 증폭되는 엄마. 

반면 아빠는 ‘아’하고 입을 벌려 외치려는 순간, 치고 들어오는 ‘ㅂ’ 때문에 입술을 앙다물게 된다. ‘압’ 하며 그대로 버티다 보면 비강의 압력이 높아지고 어깨가 올라붙고 목구멍이 조이다가 숨이 막힌다. 할 수 없이 ‘빠’ 하고 급한 숨을 내뱉는다. 목구멍을 억지로 막았다가 빠르게 뱉어낸 ‘빠’는 입 밖으로 성급하게 뛰쳐나가 허공으로 산산이 흩어진다. 

인생의 어느 모퉁이에서 사무치는 슬픔이 찾아오거든 ‘아빠를 부르며 목 놓아 울기’를 꼭 실천해보기 바란다. 울기 시작한 지 30초 안에 슬픔의 정서가 휘발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8월 26일, 차마 엄마를 부를 수 없었다

우리는 수시로 엄마를 부른다. 엄마가 없는 상황에서도 엄마를 부르고, 엄마를 부르고 싶지 않은 순간에도 엄마를 부른다. 우리는 도대체 누구를 부르고 있는 것일까? 

한평생 우리가 그토록 불러대는 엄마는 우리를 언제든 품어주는 마음의 고향이다. 그래서 현실의 엄마와 관계가 어떻든 우리는 늘 엄마를 찾는다. 엄마는 나의 요람이고, 고향이며, 그 모든 순간 나를 품어주는 태초의 온기이다. 우리는 한평생 이 온기를 그리워하며 그 품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런데 지난 8월, 우리를 감싸고 있던 거대한 엄마의 온기가 우리에게서 끊어져 나갔다. 8월의 스물여섯 번째 날. 세계의 어머니, 히말라야 설산이 무너져 내렸다. ‘엄’ 소리조차 낼 수 없었던 순식간의 참사였다. 우리 인류가 결국 태초의 온기를 꺼트려버린 순간이었다. 

숲을 없애고 대기를 데우는 동안, 해마다 ‘관측 이래 처음’이라는 보도에 면역이 생기는 동안 엄마의 신음을 외면했다. 엄마는 다 괜찮은 줄 알았다. 엄마의 참담한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울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껏 울 수 있을 만큼 뻔뻔하지도 못했다. 엄마에게 남은 온기가 점점 식어가는 것이 두렵다. 우리가 엄마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엄마를 다시 부르기 위해

이럴 때 ‘아빠’라도 불러야 하나? 그렇게 슬픔을 삼킨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 우리 가슴에는 여전히 엄마가 있다. 지금은 차마 부를 수 없을지 모르지만 포기하지는 말자. 엄마를 부르는 것으로 나의 생명은 오늘치의 온기를 얻어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거니까.

나는 언제든 엄마를 부르고 싶다. 우리가 다시 엄마를 부를 수 있게, 필사즉생必死卽生의 마음으로 새롭게 태어나자. 엄마한테 혼나도 엄마를 찾고야 마는 엄마바라기인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글_권나라
건축학을 전공하고, 극단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했다. 브레인트레이너로서 유튜브에서 명상 채널을 운영하며, 명상 상품을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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