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신뢰하도록 진화했을까? 왜 누구와 대화했느냐에 따라 우리의 기억이 시시각각 달라질까? 어떤 기억은 살아남고, 어떤 기억은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이며, 인간 집단은 어떻게 대화를 통해 유지될 수 있었을까?
《대화하는 뇌》는 대화라는 행동에 관해 우리가 지금껏 들어본 적 없던 인간의 연결과 소통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더블린 트리니티대학교에서 뇌가 세상과 만나는 방식을 연구해 온 저자 셰인 오마라는 이 질문들에 답하며 인간이 어떻게 말하고 왜 대화하는지, 그리고 대화하는 동안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과학적으로 파헤친다.
최신 뇌과학 연구뿐만 아니라 심리학, 사회학, 철학, 인류학을 솜씨 좋게 엮어내는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공동체를 유지하도록 만드는 기반이 바로 대화였음이 밝혀진다.
서로 다른 뇌 시스템 간의 상호작용이자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 대화
흔히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의 뜻에 따라 인간은 본질적으로 ‘지혜로운 인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만약 셰인 오마라에게 인간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단박에 인간이란 ‘대화하는 인간’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뇌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대화는 인간의 삶을 유지하게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오마라는 대화를 이렇게 정의한다. “우리 자신의 기억과 언어를 지원하는 뇌 시스템과 상대방의 기억과 언어를 지원하는 뇌 시스템 간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라고. 대화는 서로 다른 사람들 간의 뇌 시스템을 연결해주는 다리이며, 따라서 대화가 없다면 우리가 가진 기억과 언어는 갈 곳 없이 고립된다.
라드바우드 대학교의 사라 뵈겔스 연구팀은 대화 상황에서 뇌파를 측정해 우리는 질문을 들을 때 처음 두세 단어만을 듣고 대답을 준비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질문에 최대한 빠르게 반응할 수 있게끔 뇌가 준비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토록 빠르게, 자주 대화를 나누며 살아가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바로 대화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구성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개인을 하나로 묶어줄 공통 현실 또는 공통 기억이 있어야 하는데, 이 공통 기억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대화의 과정이다.
즉 대화가 없었다면 우리는 서로를 묶어 줄 공통 기억을 갖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사회도 구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화가 만들어낸 기억, 기억이 형성하는 정체성
2020년 영국 브리스틀에서 군중들이 노예 상인이었던 에드워드 콜스턴의 동상을 철거해서 바다에 던져버렸다. 동상을 세우고 난 후 100년 만에 영국 브리스틀 시민들이 이제는 노예 상인의 존재를 기념하거나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도록 결정한 것이다.
한 공동체 안에서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첨예한 대립을 불러오는 상당히 중요한 질문이다. 이 기억의 과정이 치열한 싸움이 되는 이유는 기억이 사회 안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가장 중요한 연결 고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을 기억할 것이냐의 문제는 곧 한 공동체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문화를 만들어나갈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영국 브리스틀 군중들의 결정은 영국 사회가 더는 노예 상인을 공동체를 형성할 연결 고리로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는 것으로, “동상을 부수는 행위가 역사적 기록의 일부가 된다”라는 주장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 집단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기억은 과거, 현재, 미래를 해석하게 하는 틀로써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사회가 무엇을 기억할 것이냐가 집단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면, 내가 무엇을 기억할 것이냐는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기억을 자서전적 기억이라고 부르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기억은 개인의 인생 이야기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잡담의 숨겨진 힘을 찾아내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해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현실과 내가 생각하는 현실이 일치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기차표를 사러 매표원과 대화를 나눈다고 하자. 매표원은 기차표에 관련된 지식을 기억하고 있어야 하며, 자신이 기차표를 팔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매표원이 기차표 가격을 잊어버린다거나 기차표가 아닌 초콜릿바를 팔려고 한다면 표를 사고파는 간단한 행위마저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우리는 대화를 통해 기억을 조율하고 회상을 일치시키며 사건에 대한 공통의 이해를 만들어(168쪽)” 냄으로써 공통 현실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놀라운 점은 공통 현실을 바탕으로 삼아 집단 지식을 공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잡담(gossip)이라는 점이다. 긍정적인 잡담은 새로운 구성원이 집단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동시에 부정적인 잡담은 집단 안에서 우리의 행동을 규율해준다.
특히나 규모가 큰 집단이나 복잡한 사회일수록 잡담의 역할이 커진다. 작은 집단에서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한편, 집단의 구성이 복잡할수록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와 수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잡담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집단 정체성을 유지한다.
물론 집단 정체성이 항상 긍정적인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집단 지식, 집단 내에서 공유되는 정보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천차만별일 수 있다.
사람들은 공유된 지식을 ‘공유되었기 때문에’ 그대로 진실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만약 그 정보가 가짜 뉴스였다면? 혹은 리더십이 부족한 지도자에 의해 퍼뜨려진 편파적인 정보였다면? 사람들과 연결되기 위해 집단의 믿음을 따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일이 곧 부정적인 결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대화를 통해 만들어낸 ‘상상의 공동체’, 국가
대화를 통해 형성되는 집단 정체성은 하나의 가정, 하나의 기업이나 지역 정체성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국가 또한 대화를 통해 구성된 정체성이라고 본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아일랜드 더블린 공항에 있는 미국 CBP(관세국경보호청)다.
더블린 공항에서 CBP 직원들의 출입국 심사를 통과한다는 것은 미국에서 새롭게 국경을 넘을 필요 없이, 미리 국경을 넘었다는 말이 된다. 즉, 아일랜드 더블린이라는 미국 외의 구역에서 CBP 직원들은 일종의 허구적 국경을 유지하며 감시하는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자연스럽게 국가주의가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까지 나아갈 수 있다. 국가주의는 특정한 시공간에 있는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이게 우리나라다. 우리는 나라에 충성하고 헌신하며 자결권을 가진다”라는 의식이다.
즉 국가주의는 대화의 뇌과학적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강력한 심리적 힘이다. 이 힘은 지나치게 강력해서 아돌프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를 낳기도 했지만, 때로 마하트마 간디나 넬슨 만델라의 예시처럼 국가주의가 봉사와 헌신을 통해 얻은 권력을 지지하도록 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정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이 1983년 《상상된 공동체》라는 책을 통해 국가가 상상의 공동체라는 인문학적 설명을 해냈다면, 《대화하는 뇌》에서 저자 셰인 오마라는 심리학적이고 뇌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국가가 상상의 공동체이며, 그 상상의 도구가 바로 대화임을 밝혀낸다.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국가라는 거대한 사회에서 대화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탐구해나가는 이 여정을 통해, 이 책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글. 우정남 기자 insight159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