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이들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칼럼] 아이들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브레인 93호
2022년 08월 11일 (목)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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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게도 대학 졸업과 함께 임용시험에 합격하고 대기발령 상태로 기간제 교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나는 임용시험에 바로 합격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고, 아이들에게는 제법 엄격한 선생님이었다. 젊은 시절 나에게는 ‘엄격한 선생님’이라는 말이 ‘능력 있다’, ‘잘 하고 있다’는 말로 들렸다.

그렇게 반년 정도 지났을 무렵, 우연히 명상에 관심을 갖고 명상센터에 다니다가 주말 특별 과정에 참여했다. 감정을 깊이 정화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많이 울고 마음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월요일 첫 수업에 들어가서 깜짝 놀랐다. 그동안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던 아이, 수업 시간에 늘 산만하던 아이를 비롯해 내 잣대에 맞지 않던 아이들이 모두 사랑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수업에 들어가는 모든 학급의 아이들이 사랑스러웠고, 수업 시간이 너무도 즐거웠다. 비록 6개월의 교직 경력이었지만 처음 겪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날 이후 ‘이 아이들을 위해서 나는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시험과 경쟁 속에서 멍들어 갈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고, 아이들을 살리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고민했다. 대학 시절, 친구나 선배들과 이야기 나눴던 ‘좋은 교사’, ‘모든 아이를 사랑하는 교사’는 너무나 막연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살리는 교사’라는 말은 내 마음에 씨앗이 되었고, 인생의 목표이자 꿈이 되었다. 끊임없이 경쟁하게 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인지를 알려줌으로써 아이들을 살리는 교사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같은 고민을 하고 길을 찾는 동료 교사들과의 만남

명상센터에서 만난 선생님과 교사로서의 고민을 나누다가 ‘홍익교원연합’이라는 교사모임을 알게 됐다. 먼저 그의 권유로 학생들을 위한 인성수련 과정에 참여하게 됐다. 주말 오후에 5시간가량 진행하는 짧은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은 자신의 부정적인 마음 상태를 돌아보고 부모에 대한 사랑과 친구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며, 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 또한 아이들과 같이 울고 웃으며 아이들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키운 시간이었다. 이후 정식 교사로 발령받아 수업과 업무에 매몰되기도 했지만 홍익교원연합 활동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깨우친 것을 교실에 적용하면서 ‘아이들을 살리는 교사’라는 꿈에 조금씩 다가가는 듯했다.


희망-도전-좌절-다시 희망-도전-좌절의 반복

홍익교원연합의 교사들과 학생 인성 프로그램을 만들고, 교사를 위한 직무연수를 비롯한 여러 워크숍 활동에 참여하면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고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점이었다. 주변에서는 아이들을 위해 잘 하고 있다고 했지만 나는 더 큰 기대 속에서 좌절하고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리 프로그램이나 관련 교육들을 찾아다녔고, 처음에는 뭔가 변화를 기대하다가도 교육 현장에 가면 또다시 제자리임을 확인하며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하는 좌절감에 빠져들었다. 그나마 홍익교원연합의 워크숍을 통해 내 마음을 힐링하고 재충전하는 시간이 있었기에 교사로서의 꿈을 잃지 않고 무엇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었다. 

희망, 도전, 좌절, 다시 희망, 도전, 좌절하는 패턴을 반복하는 것은 무엇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나은 상황과 비교하며 자신을 채찍질하는 내 마음의 문제임도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나 자신을 이해하는 만큼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 있다

꿈을 포기할 수는 없고, 나를 바꿀 방법도 없어 방황하던 때, 계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지푸라기도 잡겠단 심정으로 뉴질랜드 명상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모든 것을 잊고 명상 수련을 하며 지내다가 한국에 돌아오니 앞으로도 꾸준히 수행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났다. 예전에도 그런 마음을 먹은 적이 있지만 번번이 실패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저녁 시간에는 변수가 많아서 매일 새벽, 절 수련과 명상을 1시간 정도 하고 출근했다. 매일 수련을 하니 일단 몸이 가벼워지고 아이들과의 감정 소모가 덜해졌다. 새벽 수련을 하던 어느 날에는 어릴 적부터 반복돼온 어머니와의 문제가 떠올랐다. 이후 매일 수련하면서 감정을 정화하고 조금씩 문제의 근원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만큼 미워하고, 존경하는 만큼 질투하고 부러워한 내가 보였고, 그 모든 마음을 받아들이고자 했다. 어머니와의 해원의 시작이었다. 때로는 분노로, 때로는 슬픔으로 감정들이 쏟아져 나왔고, 40여 년을 살아오며 애쓰고 실수했던 나에게 미안하다고, 용서해달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이른 나 자신에게 감사했다. 나를 스스로 사랑할 수 있게 된 순간이었다. 

이때부터였다. 나 자신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자 다른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서도 그만큼 더 이해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못된 말과 행동을 하면 단호함이 앞섰는데, 이제 그렇지 않다. 아직도 과거의 습관이 남아 감정이 앞서기도 하지만 감정적인 소모가 줄었고, 내 실수에 대해 사과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커졌다.

수업 중에 잠깐씩 이야기하는 이 사회와 아이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나의 해석은 내가 나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기까지의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시각으로 다가가고, 어떤 아이들은 그 이야기를 통해 안도하고 희망을 갖는 것을 보았다. 이제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아이들을 살리는 교사다. 나를 언제나 사랑하고, 아이들과 이 세상을 사랑한다


글. 강현숙 대전 반석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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