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리포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HRD와 뇌의 과제

[집중리포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HRD와 뇌의 과제

집중리포트_인간의 가치와 자원으로서의 인간 가치

브레인 90호
2021년 12월 03일 (금)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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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난리가 나도 바뀌지 않는 인간의 본성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웹으로 공부하는 시스템을 속속 도입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중에도 학교에서 애들 공부를 시킨 민족인데 바이러스 따위가 대수겠는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고야 마는 민족이다.

그런데 어~라, 이 거 생각보다 괜찮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과도한 상상력과 두려움이 부둥켜안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역사를 돌아보면 이 두 녀석의 눈이 맞을 때마다 호들갑이라는 자식을 낳았는데 역시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문가들이 교실과 연수원이 사라지고, 물리적 사무실도 사라질 거라고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우스웠다. 그 전문가라는 ‘인간’들! 그들은 ‘인간’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인간? 그 정도로 바뀌지 않는다.

최소 추정 5천만 명이 죽었다는 1918년 스페인 독감(이 단어가 늘 마음에 안 든다. 발병지는 미국인데, 왜 스페인이 뒤집어 쓴 건지)이 끝난 직후 사회적 거리 두기를 바로 망각했다. 본성에 안 맞기 때문이다. 외려 ‘인생 뭐 있나?’라는 놀라운 깨달음을 얻은 인간들은 먹고, 마시고, 즐기고… 그렇게 ‘광란의 1920년대’라고 불리는 시기를 보냈다. 

팬데믹 이후의 보복적 광란은 중세의 페스트 이후에도 있었다. 우리 인간은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는 동물이다. 미워하고, 화내고, 짜증부리고, 결국 싸우고 다시 화해하고, 그렇게 지지고 볶는 그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게 바로 인간이다.

그렇게 강렬한 오프라인 본성을 미생물 따위가 봉쇄할 수 있을까? 어림도 없다. 두고 봐라. 이 고통이 끝나는 순간 눌러놨던 게 터져 나오면서 또 한 번 광란의 2020년대가 열릴 거다. 아니라고? 맞을 거다! 인간의 뇌란 게 이성과 논리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멸종하지 않는 한 불변이다.

HRD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말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 되지 않는다며 강사의 눈빛, 표정, 몸짓을 강조해놓고 또 한 번 전문가(?)들의 호들갑에 속아 넘어갔다. 게다가 기억력은 어찌나 나쁜지, 1990년대 후반, 인터넷 기술에 놀라 오프라인 학습은 완전히 끝났다고 와글와글 떠들다가 급 실망한 기억을 모조리 까먹었다. 

어찌되었든 이번에도 늑대는 오지 않았다. 교육? 학습? 그 것에는 인간의 스킨십이 핵심이다. 견디다 못한 교육부는 어떻게든 ‘정상적’인 공부를 시키겠다고 등교를 강행하고 있다. 그런데 HRD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동네를 덮친 늑대를 상상하고 있다.

이제 느닷없었던 바이러스나 현란한 신기술만 쳐다보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100배나 더 큰 난리가 나도 변하지 않았던 본성, 바뀌지 않는 그것에 주목해야 한다.


문제는 AI가 아니라 인간이 자기 뇌를 모른다는 거다

그 친구는 요즘 뭐할까? 알파고라는 친구 말이다. 뭐, 보나 안보나 뻔하다. 바둑 더 잘 두는 방법을 학습하고 있을 거다. 원래 그거 잘하라고 특화된 친구이니까.  

어린 시절에 묘기대행진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별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어린 마음에 신기해서 자주 시청을 했었다. 그런데 거기에 가끔 나온 게 컴퓨터와 암산 고수의 시합이었다. 그런데 시합에서 가끔 사람이 이겼다. 당시 컴퓨터가 좀 어리숙했었다. 

컴퓨터까지 이기는 고수들이 암수를 펼치던 살벌한 중원이 당시의 대한민국이었다. 골목마다 무림의 고수를 양성하는 도장이 존재했다. 주산학원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말이다. 그때 많은 친구들은 두뇌가 개발된다고 그 학원에 다녔고, 미래를 예견한 나는 오락실에서 두뇌를 개발했다. 컴퓨터가, 정확히는 계산기가 발전하고, 가격이 떨어지면서 망했다. 그 주산학원들과 주판공장이. 그리고 바보 되었다. 주산학원에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헌납한 내 친구들 말이다. 

뭐, 컴퓨터란 단어 자체가 전자계산기가 등장하기 전에 계산을 하는 직업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니, 그래서 컴퓨터(기계)가 컴퓨터(계산하는 사람들)를 몰아냈다? 그렇게 보시는가? 하루 종일 앉아서 계산만 8시간 반복하는 직업? 그렇게 보람찬 하루 계산을 끝마치고서 퇴근한 후 두 다리 쭉 펴면… 인생이 참 행복하겠다. 

숫자를 들여다보고 계산하고, 더 나가서 미적분까지 한다는 건 인간의 본성과는 태양에서 지구까지 거리만큼 멀다. 그렇다면 컴퓨터는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해준 걸로 봐야 한다. 아니 지금까지 기술은 하기 싫은 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주는 구원자였었다. 그런데도 인공지능(AI)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일자리를 날려버릴 거라고 생각하시는가? 아니 그 녀석이 언젠가 인간의 뇌를 능가해버릴 거라고 생각하시는가? 

인공지능(AI)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한 게 1956년, 다트머스 대학의 한 세미나였는데 그 때 20년 뒤에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을 거라고 장담했었다. 그래서 65년이나 지난 지금 어떻게 되었나? 여전히 인공지능의 전문가들이 20년 뒤에 AI가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을 거라고 장담하고 있다. 여전히 20년 뒤라니, 일관성 하나는 인정할만하다. 

그 예측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들이 뛰어넘을 대상인 인간의 뇌를 우리가 대부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다. IBM의 왓슨이 영상과 사진자료를 학습해서 인간 의사보다 더 정확하게 암을 판별할 거라고 큰 소리를 치더니 결국 최근에 와서 꼬리를 내렸다. 나라도 그러겠다.

A병원은 AI가 진단을 내려주고, B병원은 AI가 내린 진단을 자료로 인간 의사가 최종 판단을 하고 친절하게 나에게 설명을 해준다면? 당연히 B병원으로 간다. 인간의 뇌란 게 이성과 논리로만 가득하지 않다는 말이다.
 

공감과 영성, 이것이 뇌의 맥박이고 바이탈 사인이다

2013년에 손정의 회장이 직원 수 150명에 불과한 핀란드 게임 회사에 3조 원을 주고 51%의 지분을 인수했다. 창업 3년 된 회사였다. 다들 돈을 엄청 벌더니 정신 나갔다고 비웃었다. 그리고 3년의 세월이 지난 후 그 회사를 텐센트에 매각했다. 대금은 10조원이라고 한다. 일본 이름이 마사요시 손(정의正義를 일본어로 읽으면 마사요시)이라는데, ‘마이더스 손’으로 하는 게 더 어울리는 거 같다.  

그 게임 회사가 ‘클레시오브 클랜’이라는 게임을 개발한 슈퍼셀이다. 그 회사는 원래 노키아가 쓰던 건물에 있었다. 그리고 슈퍼셀 직원들의 상당수가 혁신과 창의성이 사라져서 망해가는 노키아에서 잘린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 잘린 사람들이 창의성이라는 게 없었을까? 그게 없었으면 슈퍼셀이 성공할 수 없었을 텐데? 그렇다면 그들의 창의성이 노키아에서는 왜 발현되지 않았을까? 경직된 조직운영이 발현을 억눌렀기 때문이다. 

왜 기업이 성공하여 대기업이 되고, 그 성공이 좀 지속된다 싶으면 죄다 ‘경직적’으로 바뀔까? 그건 성공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더 잘하려는 성공과정에서 이성과 논리를 극단까지 밀어붙였고, 그 결과물이 경직이라는 묘한 결과로 나타난다. 성공한 노년집단에서 ‘어른’보다 ‘꼰대’의 출현 가능성이 높은 것과 같은 이치다.

성공 경험의 강도가 강할수록 경직의 강도도 세진다. 일을 잘 해내는 원칙과 기준, 절차들이 형식지가 되어 직원들의 뇌를 이성적으로 옥죄는 거다. 사실 이성과 논리로만 따져서 성공에 필요한 원칙, 기준, 절차들을 섹시하게 만들어가는 게 대기업이 잘 하는 일이다. 그리고 망해간다. 

세상은 확률적이다. 예전에도 확률적이었고, 지금도 확률적이고 연결이 복잡하게 꼬여갈 미래는 훨씬 더 확률적으로 변해갈 것이다. 확률적인 세상을 이성과 논리로 해석하고 대응하면 망하게 마련이다. 어쩌면 그게 다 노키아의 HR담당자들의 책임이다. 갑자기 그들을 왜 끌어들이냐고? CEO와 임원을 잘못 교육한 죄! 그들의 뇌가 세상은 이성과 논리로 가득하다는 관점에서 꺼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성과 논리를 앞세우면 절대 보이지 않는 것

회사에 입사한 후에 29년을 HR에서 일하고, 그걸로 공부해서 박사도 되었다. 인재육성을 잘 하면 벤처 육성도 잘 할 것으로 보였는지 벤처투자회사의 대표이사로 발령이 났다.

모든 게 신기했고, 재미로 가득한 1년을 보냈다. 엄청나게 많은 걸 배웠지만 가장 크게 깨우친 게 있다. 발령이 나고 딱 한 달이 지났을 때 알게 된 건데, 대기업 내부의 혁신으로는 스타트업 생태계가 뿜어내는 혁신을 당해낼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속도? 유연성? 그거 아니다. 그렇게 눈에 빤히 보이는 차이점이 아니다. 엄청나게 다양한 시도를 하는 창업자 군단, 확률에 기반한 분산투자로 돈을 버는 투자자들, 그리고 빠른 진화가 이뤄지는 생태계는 실패를 극도로 싫어하는 대기업의 엘리트들보다 성공확률이 엄청 더 크다.

195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회사 내부의 사업부에서 모든 것을 다 하다가 법인을 분리해서 독립경영을 시키는 이상한 신경영기법이 등장했다. 다들 저게 뭐 하는 짓이냐고 비아냥거렸지만 이제는 우리가 수평적⦁수직적 다각화라고 부르는 일상적인 방법이 되었다. 그러면서 다양한 계열회사라는 게 생겼고, 그 계열회사는 풍부한 외부 자금을 수혈해서 성장 속도를 더 빠르게 가속했다. 

한 법인 내에서 모든 일을 다 해야 한다고 고리타분한 생각을 하던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고 사라졌다. 그러다가 다시 이상한 사람들이 등장했다. 과감하게 투자를 하되, 굳이 경영권을 인수하지 않고 사들여서, 만지작거리다가 되팔면서 거액을 벌어들이는 사람들이었다. 다들 경영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투자자도 아닌 저 인간들은 도대체 뭐냐고 비아냥거렸다. 그들이 워렌 버핏이고, 손정의다. 

이제 다른 기업들도 그들의 방식을 배우기 시작했고 한국에도 스타트업의 불길이 번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세상은 바뀔 수밖에 없다. 조직 외부에서 벌어지는 혁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회사만 살아남을 거다. 철저하게 이성과 논리에 기반한 행동은 체계화된 대기업이 훨씬 더 잘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발에 기대는 진화의 동력은 그 빡빡함 안에서 태동할 수가 없다. 

이제 수도 없이 쏟아지는 별똥별처럼 명멸하는 스타트업에서 누가 반짝이는 스타가 될 수 있을까? 그걸 골라잡을 줄 알면 성공한다. 번쩍이는 아이디어? 치밀한 환경 분석과 명민하게 짜진 사업 모델? 아니다.

지금 스타가 되어 세상을 바꾼 그들은 죄다 몇 번의 피봇(Pivot, 기존의 사업모델을 바꾼다는 의미, 더 쉽게 말하면 ‘이 산이 아닌가?!’의 순간)을 경험했다. 죽다 살기를, 아니지 망하기 직전까지 몰렸다가 다시 회복한 경험을 했다는 말이다. 사실 그들의 초창기 모델은 이성과 논리로 보면 죄다 말도 안 되는 형편무인지경이었다.

투자를 요청하는 창업자들이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세상은 참으로 넓고, 특이한 사람들이 천지삐까리라는 생각만 든다.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이 친구의 계획이 성공하면 세상이 정말 좋아지겠다는 느낌! 아직 뚜렷한 경로는 안 보이지만 저게 구현만 되면 우리 아이들이 훨씬 더 행복한 세상에서 살 수 있겠다는 생각! 유레카의 순간이다. 바로 붙잡아야 한다. 

이성과 논리를 앞 세우면 절대 안 보인다. 이성과 논리? 이 녀석들은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어려움이 봉착할 것이라는, 그래서 성공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증거를 백만 개도 더 찾아내주니까.

직원 150명의 슈퍼셀이나 천문학적 적자를 반복하는 쿠팡에다 수 조원의 돈을 투자하는 대형 참사를 절대 용인하지 않는 게 이성이다. 그 녀석들을 내려놓고 공감이란 걸 해야 한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이 되면 우리가 얼마나 행복해질지를, 그리고 투자하고 그 꿈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별난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힘은 ‘공감’과 ‘영성’

그러다가 돈은 언제 버냐고? 돈은 좇아가는 게 아니라 따라오게 만들어야 벌 수 있다. 세상을 더 좋게 바꾸면 돈은 따라 온다. 이런 걸 인공지능(AI)이 할 수 있다고?

어림도 없다. 세상을 더 좋게 바꾸겠다는 별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가능성이 희박한 그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려고 용감하게 뛰어들도록 등 떠미는 힘은 인간의 고유한 본성인 공감에 있다.

내가, 주변의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장삼이사들이 매일처럼 겪는 불편함이나 온당하지 못함을 참아내지 못하게 하는 예민한 감정 말이다. 그 공감의 절박도가 해결책을 찾게 만들고, 과감하게 뛰어들도록 만든다. 

AI가 흉내 내려고 바쁜 이성과 논리가 아니다. 인간의 뇌는 이해하기 어려운 공감과 감성, 영성이 가득하다. 그리고 이성과 논리는 진화의 끝물에 생겨난 껍데기(대뇌피질)에 불과하다.

영성? 이게 참 오해가 많은데, 하늘 그 위에 계신 그 분과의 교감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나보다 더 큰 공동체나 대의에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그것에 헌신 하려는 태도를 말하는 거다. 그런 게 있으니까 창업 초창기에 한 주에 100시간씩 일할 수 있는 거다.

반면 알파고가 왓슨이나 다른 AI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희생하려는 욕구나 타인에게 공감하려는 태도는 눈곱만큼도 생길 수 없다. 

하여튼 외부를 살피고, 주어진 규율이나 원칙, 기준에 따르는 이성과 논리는 AI에 질 수 있어도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뇌의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공감은 절대 아니다. 공감을 밥 먹듯 하는 게 인간이다.

AI는 전기를 끊는 순간 멈추지만, 인간의 뇌는 잠을 잔다고 멈추지 않는다. 죽어야 멈춘다. 공감이, 영성이 멈추는 순간 당신의 뇌는 차갑게 죽은 AI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뇌 속을, 그것을 대표하는 마음속을 깊이 들여다보라. 공감이, 영성이 존재하는가를 살펴보라. 그게 바로 뇌의 맥박이고 바이탈 사인이다.


AI에게 잠식될 역량을 키울 것인가?
인간만 가진 뇌의 강점에 주목할 것인가?
 

40년 전 롯데백화점이 창업할 때 경리부 사무실에는 수많은 주판들이 놓여있었고 그 앞에서 주산 실력자들이 하루 종일 뭔가를 계산했다. 전자계산기란 녀석이 등장하면서 그 주판이 사라졌다. 그리고 엑셀이 등장하면서 전자계산기도 사라졌다. ERP가 등장하면서 엑셀도 힘을 잃었다. 그래서? 주판이, 계산기가, 엑셀이 사라져가면서 롯데백화점의 경리담당자들이 죄다 집에 갔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주판 시절과 비교하면 공인회계사 숫자가 100배는 많아졌다. 

기술은 일자리를 날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그 단순반복적인 일을 날려버린다. 그래서 AI와 연결이 강화된 웹이 인간 일자리를 날려버릴까?

맞다. 날려버릴 거다. 계산기를 받아들이지 않고 주판만 껴안고 있는, 엑셀을 배우지 않고 계산기만 껴안고 있는 인간들을 날려버릴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뇌는 이성과 논리로 가득 차 있다는 오래된 생각에 매사를 이성과 논리로 재단하는 그런 사람들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새로운 기술과 변화를 배워 새로운 세상에서 더 끝내주는 일을 하도록 적극적으로 개입(Intervention)해서 세상을 바꾸지 않는 HRD담당자들도 날려버릴 것이다. 아주, 시원하게 말이다. 

이제 생각해보자. 임직원들에게 주산학원처럼 AI에게 잠식될 역량을 키울 것인가? 아니면 AI의 발전과 무관한 인간만 가진 뇌의 강점에 주목할 것인가? 그게 포스트 코로나 시절에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글. 전영민 롯데벤처스 대표. 전 롯데인재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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