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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Work hard’가 아니라 ‘Think hard’의 시대다!” 서울대 재료공학부 황농문 교수가 쓴 《몰입》 시리즈는 저자의 오랜 체험을 바탕으로하여 뇌과학의 연구결과를 제시하는 책으로, 사람들에게 몰입적 사고를 안내하는 몰입사용설명서로 주목받고 있다. 그렇다면 몰입의 대가는 하루 스물네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까?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을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황농문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직접 체득한 몰입을 통해 탁월한 성과를 얻고, 두 권의 몰입 저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교수님의 두뇌 관리법이 궁금한데요, 우선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고 마무리하십니까?
보통 밤 11~12시에 잠을 자는데 잘 때는 편안히 잠이 듭니다. 물론 자기 전에 고민거리를 갖고 사색을 합니다. 하지만 학생 때 문제를 풀려고 골똘히 생각하다 잠이 들곤 했던 것과는 달리, 심신이 편안한 상태에서 잠자리에 듭니다. 그리고 새벽 4시경이면 잠이 깨는데, 눈이 떠져도 바로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편안히 누워 있다가 뭔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것을 적으려고 일어납니다. 나는 아이디어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아이디어 노트만 수십 권 돼요. 사소한 아이디어라도 잊기 전에 얼른 일어나서 식탁에 앉아 메모를 한 다음, 다시 소파에 편안히 기대어 있다가 또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적습니다. 아침 여섯 시에 집을 나서 학교에 도착하면 테니스를 한 시간 정도 치면서 땀을 흘리고 강의 준비를 합니다.
테니스는 순전히 몰입 때문에 시작했어요. 초기에 몰입을 하다 보니 뇌가 뭔가 이상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스스로 운동을 선택했죠. 이렇게 머리를 써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을 보면 운동이 뇌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몰입이 교수님의 삶에 많은 변화를 주었을 것 같습니다.
나에게 몰입이란 행복을 느끼면서도 기량을 빠른 속도로 발달시키고 발휘하는 방법입니다. 첫 번째 《몰입》 책에서는 강한 몰입을 주로 얘기했는데, 강한 몰입은 평상시에는 잘 못하고 방학을 이용해 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 때는 약한 몰입을 합니다.
현안에 대해 읽으면서 생각할 거리들, 즉 곧바로 풀리지 않고 집중적으로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는 것들을 찾습니다. 이것이 몰입을 위한 준비과정입니다. 안 풀리는 문제, 이해되지 않는 문제들을 주로 모으죠. 나는 이것을 ‘포커싱 포인트Focusing Point’라고 하는데,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핵심이냐를 찾는 것은 몰입을 위한 핵심적인 준비과정입니다.
일을 할 때도 편안히 합니다. 이른바 슬로 싱킹slow thinking 상태에서 읽고 쓰고 컴퓨터 작업을 하는 거예요. 이해가 잘 안 되거나 졸리면 선잠을 잡니다.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은 채 문제를 계속 생각합니다. 난 명상을 따로 하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편안히 앉아서 생각하니 문득 이것이 명상 아닌가 해서 명상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어려운 문제에 고도로 집중해서 그것을 풀 때에는 부담을 갖거나 힘을 주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어요. 몰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찾은 방법이 몸과 마음의 힘을 빼고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 바로 슬로 싱킹이에요. 몸을 편안하게 함으로써 문제 해결에 필요한 뇌 기능을 풀가동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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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싱킹에 대해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할 때는 슬로 싱킹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런 때는 다소 쉬운 것들을 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보통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잡념이 들어오죠.
뇌과학에서 의식이란 현상은 일종의 자극의 경쟁인데, 집중하고 있는 생각이 막히면 자극이 없어지기 때문에 다른 자극이 들어옵니다. 결국 잡념이 생기면서 리듬이 깨지게 되죠. 그래서 생각할 거리를 따로 떼어내어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은 언제 슬로 싱킹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냐 하는 문제인데, 책상에 앉아서 어려운 문제를 붙잡고 진도를 나가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래서 슬로 싱킹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차피 버린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시간을 활용하면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를 덜 받지요. 부담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슬로 싱킹에 적합합니다.
결국 슬로 싱킹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것입니다. 걸어가면서 생각하는 것은 답을 꼭 얻지 못해도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죠. 그런 과정 속에서 이해도가 올라가고, 문제도 더 명확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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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이 학습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세요?
실력이란 것은 어떻게 올라가나요? 내가 모르는 것, 이해하지 못하는 것, 풀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풀 수 있는 상황으로 가면 실력이 올라갑니다. 그런데 그것을 배워서 하는 것, 답을 보고 하는 것은 효과가 없어요. 해답을 보고 풀면 사고력과 창의력이 발달하지 않죠. 풀리지 않을 때는 스스로 풀려고 노력해야 해요. 얼마만큼 해야 하는가?
혼자 생각해서 풀릴 만큼 해야 합니다. 친구나 선생님에게 물어보더라도 그전에 혼자서 애를 써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의 난이도가 내 실력보다 높더라도 그 상태에서 계속 생각을 하면 실력이 오르게 됩니다. 그 과정이 지루하고 힘들어도 계속 하다 보면 몰입 능력이 길러져요.
학습에 있어서 듣고, 배우고, 머리에 넣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부질없습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쓰면 다 나오잖아요. 지식은 어디에나 널려 있습니다. 지금의 학생들이 자라서 어른이 될 때면 정보기술이 훨씬 더 발달할 텐데, 왜 그것을 머리에 넣으려고 고생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럼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식은 축적하고 찾아보면 되지만, 창조하는 능력은 갑자기 안 되거든요. 난이도 높은 문제에 자꾸 도전하면서 창조력을 쌓아가야 합니다. 이는 아무리 발달시켜도 부족한데, 지금의 학습과정을 보면 창조력과 많이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아요.
‘미지의 문제’를 경험하면 이후에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될까요?
처음에는 도무지 풀지 못하는 ‘미지의 문제’를 스스로 푸는 경험을 여러 차례 하면 그런 문제를 볼 때 느낌이 딱 옵니다. 미지의 문제의 특징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것이거든요. 평생 이 문제는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경험이 쌓이면 미지의 문제를 접해도 주눅 들지 않고 물러서지 않습니다.
몰입 강의를 하면서 인적자원을 담당하는 HRD(Human Resources Development) 분야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분들이 공통적으로 손꼽는 게 도전정신과 열정을 가진 인재입니다. 신입사원을 뽑을 때 뭘 볼 것 같습니까? 학생들도 보면 딱 나눠집니다.
문제를 주면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찾는 학생도 있습니다. 이것이 유능과 무능의 차이죠. 성적과는 별 관련이 없습니다. 안 되는 이유를 찾는 것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인데, 그런 학생들은 안 되는 이유를 찾으면 기뻐합니다.
사람의 뇌는 10분 생각하면 달라지고, 한 시간 생각하면 더 달라지고, 하루 생각하면 그만큼 또 달라집니다. 문제 해결 경험이 쌓일수록 창의력이 향상되고, 도전정신과 열정도 커집니다. 학창시절에 이 같은 몰입 체험을 한 사람은 사회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많죠. 몰입 능력이 올라간다는 것은 바둑에서 수읽기가 올라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생각을 모으고 의식을 채울 수 있는 능력이 올라가는 것이죠. 열정과 도전정신이 있는 창의적인 인재가 되는 것입니다.
몰입을 잘 하려면 초중고 시절의 습관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교수님은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그 시절이 무척 중요하게 와 닿아요. 큰형님은 항상 내게 문제를 풀 때 해답을 보지 말고 풀라고 했는데, 처음에는 그게 괴로워서 슬쩍 답을 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조금만 더 생각했으면 알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들더군요.
그러면서 차츰 견딜 수 있는 시간이 5분, 10분에서 한 시간으로 점점 더 늘어났어요. 가장 오랫동안 물고 늘어진 건 1년 정도 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자신감이 붙습니다. 생각하는 일만큼은 자신 있다는 마음이 자리 잡는 거죠.
몰입은 창의성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최근 뇌 연구에 의하면 창의성이 정서와 많은 연결고리를 갖는다고 하는데, 교수님의 어린 시절은 어땠습니까?
어머니한테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것이 내게 많은 자신감을 주었죠. 정서와 창의성은 큰 관련이 있습니다. 경험상 몰입을 하면 감정이 발달한다는 것은 명확히 느끼게 됩니다. 몰입 상태에서는 내가 시인이라면 시를 쓸 것 같고, 화가라면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꽃 하나를 바라봐도 아름다움을 깊이 느낍니다. 평소의 느낌과 달리 감정이 매우 풍부해집니다.
어릴 때 늘 같이 놀던 작은형이 학교에 들어가자 같이 놀 친구가 없어졌어요. 그래서 무작정 형을 따라 학교에 가서 교실 밖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며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죠. 공부하는 형들이 무척 부러웠어요. 그렇게 두 해를 보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 공부에 강한 호기심이 생긴 것 같아요.
무엇보다 그는 즐거워 보였다. 자신의 뇌를 스스로 잘 활용하는 사람만이 누리는 창의의 즐거움이 바로 이런 것일 게다.
글·장래혁 editor@brainmedia.co.kr 사진·박여선 pys031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