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당하면 실제로 아프다고?

왕따 당하면 실제로 아프다고?

브레인 37호
2013년 01월 23일 (수)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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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내 따돌림을 당하면 우리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뇌과학에서는 왕따나 실연, 이혼등으로 사회적인 거부를 당했을 때 마음에 상처를 입을 뿐 아니라 실제로 육체적인 통증을 느낀다고 한다.  
온라인 취업포털사이트 ‘사람인’이 직장인 3천 35명에게 집단 내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그 결과 무려 30.4퍼센트가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최근 학교폭력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면서 자성의 목소리가 높지만 여전히 학교와 직장, 군대 등에서 공공연히 따돌림을 당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집단에서 따돌림을 당할 때 우리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소외당한 뇌에서 벌어지는 일

미국 UCLA의 신경과학자 나오미 아이젠버거 교수팀이 집단 내에서 소외받을 때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실험했다. 세 명이 서로 공을 패스하는 비디오게임을 하다가 한 명을 점차 소외시킬 때 소외당한 사람의 뇌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으로 촬영하는 실험이었다.

그 결과, 게임에서 소외당한 사람의 뇌에서 육체적인 고통을 느낄 때 반응하는 ‘전대상피질(ACC)’과 신체적 통증으로 인한 불편함을 조절하는 부위인 ‘오른쪽 배쪽 전전두피질(RVPFC)’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소외당한다고 느낄 때 뇌는 육체적인 고통을 느낄 때와 같은 반응을 보인다는 말이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생리학과 에드워드 스미스 교수 연구팀도 비슷한 실험을 했다. 연구팀은 데이트 신청에서 거절당하는 것, 파티에 초대받지 못하는 것, 실연이나 이혼 등의 다양한 사회적인 배제가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했다.

그 결과, 거절당하는 경험 또한 전대상피질에 고통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실연을 당한 피실험자 40명에게 헤어진 연인의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그들이 느끼는 고통은 화상을 입었을 때 느끼는 고통과 일맥상통했다.

이처럼 집단 내 따돌림이나 거절당하는 느낌이 심리적인 타격만 주는 게 아니라 육체적인 통증을 유발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분노나 공포 등의 다른 감정은 신체적 통증 부위에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데 유독 거부당한 느낌만은 신체적인 통증을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나오미 아이젠버거 박사는 “인간은 사회적으로 분리되어서는 생존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는 경험은 생존을 위협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인간이 진화과정에서 사회적으로 배제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소외당하는 경험이 육체적인 고통을 유발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거부당하면 면역력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거부당하는 경험이 우리 몸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까? 뉴욕대학 재활의학과 존 사노 박사는 “어떤 특정한 생각이나 정신적 압박은 특정 신경에 영향을 미쳐 통증이나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하버드대학 허버트 벤슨 교수 역시 오늘날 병원을 찾는 환자의 80퍼센트가 스트레스나 심리적인 이유로 발병한 환자라고 진단했다. 심지어 《우리는 왜 아플까》를 쓴 대리언 리더와 데이비드 코필드는 “우리가 무심코 던지는 말도 상대방의 몸에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난해 자신이 느끼는 사회적인 차별과 건강에 대한 자가 평가도를 분석한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김승섭 교수 연구팀의 조사결과도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연구팀의 조사 결과 ‘한국 사회에서 차별을 경험한 사람들이 차별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건강이 더 나쁘다고 스스로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차별이라는 사회적 경험이 육체 건강을 해치는 생물학적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공중보건 정책에서도 직접적인 질병이나 상해뿐 아니라 정신적인 피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최근 과학적인 연구결과로도 증명됐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과 미국 브랜디즈대학, 캘리포니아대학 공동 연구팀이 10대 소녀 147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결별 등을 경험한 소녀들이 체내 염증 발생 수치가 높았다. 연구팀의 마이클 머피 박사는 “이러한 몸의 염증이 지속되면 면역계를 해쳐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고의 진통제, 공감과 지지

나오미 아이젠버거 교수의 실험 결과에서 알 수 있듯 우리는 비디오게임에서 소외당하는 경험만으로도 육체적인 통증을 호소할 만큼 예민한 존재다.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에게 소속감은 행복한 삶을 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조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고 거부당한 사람은 그 사실만으로도 대인관계에 자신감이 없어지고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잃기 쉽다. 가해자가 장난으로 저지른 따돌림에 피해자가 생을 포기할 만큼 고통을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외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오미 아이젠버거 교수는 신체적 고통을 줄여주는 타이레놀 같은 진통제를 투여하면 외로움이나 인간관계의 갈등에서 비롯되는 정서적인 아픔도 얼마쯤은 해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또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보면 통증이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하지만 고통을 받고 있을 때 가족이나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달래면 그 고통을 극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말해주듯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진통제는 가까운 사람들의 따뜻한 말 한 마디, 조건 없이 받아들여지는 ‘공감’과 ‘지지’가 아닐까.

글·전채연 ccyy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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