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은 재앙이 아니다

저출산은 재앙이 아니다

브레인 인문학

브레인 99호
2023년 05월 26일 (금)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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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낳기를 망설이는 이유

저출산* 현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흐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출산율 감소는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사회가 적응할 시간이 짧고, 또한 초저출산 기간이 점점 길어져서 인구감소의 흐름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저출산율은 제한된 경제적 부를 둘러싼 극심한 경쟁, 수도권 과밀 집중, 성차별 문제, 일자리 고용불안 문제 등 우리 사회의 문제를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또한 세대 간에 따라 저출산과 인구감소가 가져올 영향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응하는 방향과 해법에 대해 사회적 합의에 이르기 위해서는 시공간적으로 입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인구학자 조영태 교수는 《인구, 미래, 공존》(북스톤, 2021)에서 몇 가지 이론적 개념으로 우리나라 초저출산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들에 따르면, 한편으로는 “부모가 나에게 마련해준 만큼의 경제적 안정과 지원을 해줄 수 있을 때까지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완벽한 부모 신드롬’이 작용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 행복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아 그 아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하는 회의로 출산을 꺼린다고 한다.

특히 인구가 과밀해진 수도권 지역에서는 재생산의 욕구보다 생존의 욕구가 더 강해지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물론 여성의 자아실현 욕구와 기회는 높아진 반면 가정에서의 성역할은 변화가 없는 것도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기성세대의 가치관이 현재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채 자녀 세대에게까지 이어지면서 아이 낳기를 망설이는 현상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낳은 밀레니얼 세대의 선택

지금 출산연령 세대는 1980년대~1990년대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이다. 이들의 부모는 한국전쟁 이후 한강의 기적을 경험한 베이비붐 세대. 경제적으로 고도성장을 이루면서 개인이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는 시기였다. 그러한 부모 밑에서 아낌없는 지원을 받고 자란 밀레니얼 세대는 물질주의적, 경쟁지상주의적 가치관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러나 경제는 이미 저성장의 시대로 돌아섰다. 줄어든 경제적 부와 양질의 일자리 등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초저출산 현상을 놓고 우리는 그동안 좋은 삶의 가치로 삼아왔던 것에 대해 되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인구 분야가 아니더라도 이미 선진국에 들어선 대한민국이 개발도상국 당시의 가치관을 뛰어넘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성이 다양한 분야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실업률은 높지만 중소기업은 인력난에 허덕인다. 지방 도시에는 빈집이 늘지만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부모 찬스 없이는 평생 내 집 마련이 힘들다. 인공지능 시대 교육개혁에 대한 목소리는 높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학원과 학원을 오가며 공중부양족으로 살아간다.


근본적인 방안은 사회가 지향하는 좋은 삶의 가치를 바꾸는 것

아이 낳기를 꺼리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안은 사회가 지향하는 좋은 삶의 가치를 바꾸는 것이다. 인구 문제를 다루는 언론이나 정책 입안자들은 인구감소가 가져올 경제성장 둔화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사회적 담론을 끌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질적 풍요를 대체할 새로운 사회발전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자화상 또한 바뀌어야 한다. 인간은 제한된 재화를 차지하기 위해 투쟁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나눌 때 행복한 존재라는 인식이 상식으로 확산해야 한다. 이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인간에 대한 상반된 견해는 역사적으로 항상 존재해왔다. 인구감소가 인간에게 암울한 미래를 가져온다는 서사는 항상 제한된 재화를 놓고 서로 차지하기 위해 투쟁하는 인간의 모습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인류 평화를 위해 경제는 반드시 성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경제성장은 한계에 다다랐고 경제성장을 추동할 인구증가도 곧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다. 지금은 경제적 패권을 쥐기 위한 이합집산과 물리적 대립이 첨예해지는 시점이다. 이때 물질적 풍요를 뛰어넘어 인간으로서 추구해야 할 새로운 가치가 제시되어 힘을 얻지 못한다면 인류는 공멸의 길을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불안의 정체

젊은 세대가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은 단지 ‘내가 아이를 낳는다 해도 경제적으로 충분히 지원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을 넘어선다. 무분별한 지구온난화 가스 배출이 가져온 급격한 기후변화 때문이다. 전 세계의 15세~24세 청년 1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39퍼센트가 기후변화 때문에 출산이 망설여진다고 답했다고 한다. 또한 2020년 미국에서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녀가 없는 성인 중 11퍼센트가 아이를 갖지 않는 이유로 기후변화를 꼽았다.**

‘내가 아이를 낳는 것이 이 지구에 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 ‘나의 아이는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우울한 현실보다 나은 미래를 살아갈 수 있을까?’ 지금 함께 살아가는 세대와 지구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척박한 미래를 살아갈 세대에 대한 미안함으로 아이 낳기를 기피하는 것이다.

저출산의 흐름은 국가적 재앙이 아니며, 무조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접근할 현상도 아니다. 출산 장려 정책에 돈을 쏟아붓기보다는 출산을 결정하는 당사자 세대가 출산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 그 아이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의 모습을 함께 고민하며 그 방향으로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글. 김지인 국제뇌교육협회 국제협력실장,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지구경영학과 박사과정 


*‘저출산’과 ‘저출생’

- 현재 정부의 공식 정책 명칭은 ‘저출산’ 용어를 사용함.

- ‘저출산’은 아이를 적게 낳는 주체에 무게를 두고, ‘저출생’은 출생인구가 줄어드는 사회구조에 주목하는 용어. 인구감소의 책임이 여성에게 있지 않으므로 가치 중립적인 용어인 ‘저출생’ 사용을 권장하기도 함.

- 학계에서는 ‘출산’과 ‘출생’의 뜻이 다른 만큼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바꿔 쓰면 안 된다고 함. 아이를 얼마나 낳는지를 파악하려면 인구구조에 영향을 받는 ‘출산율’을 사용해야 하는데, ‘저출생’의 ‘출생’은 ‘출산율’에서 쓰는 ‘출산’과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라고.

- 본지에서는 정책 관련한 경우와 출산율과 함께 쓰는 경우 ‘저출산’을, 그밖에는 ‘저출생’을 병행 표기함(참조 : 한겨레신문 ‘저출생? 저출산? 어떻게 다른가)

** State of World Population 2023 Report-8 Billion Lives, Infinite Possibilities, United Nations Population F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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