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생각이 고이는 시간을 허하라

Bad to Good, Good to Great

브레인 30호
2011년 10월 14일 (금)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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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신드롬Burnout Syndrome.
지나치게 앞만 보고 달리던 사람들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사회의 요구에 맞춰 속수무책으로 소모되는 자신을 돌아보고 숨 고르기 할 시간, 휴식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휴식이 경쟁력이다
20세기 가장 유명한 경영자 중 한 사람인 잭 웰치는 “타율 1할대의 선수를 그냥 놔두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으로 떠오르는 소프트웨어 회사 SAS의 CEO 짐 굿나이트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한 젖소가 더 많은 우유를 생산한다고.

그는 회사를 경영할 때 무엇보다 사원 복지에 힘쓴다. 직원을 잘 대우하면 그 직원은 반드시 회사에 기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출근 시간을 따로 정하지 않고 원하는 시간에 일하도록 하는 것은 물론 주당 35시간의 짧은 근무 시간을 책정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한술 더 떠 그는 직원들이 지쳤을 때는 아예 프로그래밍을 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피로하면 실수가 잦아지고, 실수가 잦아지면 그 실수를 찾아내 수정하느라 더 많은 인력과 시간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SAS는 세계 최대의 비상장 소프트웨어 회사이면서도 소프트웨어 제품을 검사하는 직원 수가 마이크로소프트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고 연평균 15%의 성장률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좀처럼 휴식을 누릴 기회를 얻지 못하는 요즘 직장인들에게, 그야말로 꿈의 직장인 셈이다.

그동안 철야 근무로 대표되는 노동력이 한국 사회의 경쟁력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성장이 동력이던 시절은 이제 지나갔다. 개미처럼 일만 하는 사람은 주어진 여건에 적응할 수는 있어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는 못한다. 미래 사회는 기존의 것을 고수하는 인재보다는 새로운 것을 융합하고 더 나은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인재를 원한다. 스마트 워크Smart Work, 업무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휴식에 대한 태도를 바꿔라
따라서 현대사회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게 더 이상 경쟁력이 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급변하는 사회적 흐름에 맞춰 정신없이 달려왔던 사람들이 상처받고 피폐해진 심신을 다독일 필요를 느끼고 있다. 최근 자기계발 분야에서 휴식의 기술을 다룬 책들이 눈에 띄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마포소리청한의원 변재석 원장은 “현대인들이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은 휴가 기간이 길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제대로 쉬는 방법을 몰라서인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지나치게 성공지향적인 사회 분위기가 휴식마저도 외피에 치중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회복과 치유의 시간이어야 할 휴식마저 ‘효율적으로’ 잘 보낸 시간이어야 하고, 남들에게 과시할 수 있는 이색적인 경험으로 채워야 한다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 한때는 최고급 스파를 받거나 동남아나 지중해 해변의 특급 휴양지에서 지내야만 제대로 휴식을 누렸다고 과시하기도 했다. 장거리 여행에 몸은 더 지치고 비용을 따지느라 하고 싶지 않은 이벤트까지 억지로 끼워 넣어가면서 말이다.


《행복의 중심, 휴식》의 저자 울리히 슈나벨은 현대인들이 제대로 휴식을 취하려면 휴식에 대한 태도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휴식의 기술은 자유 시간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휴식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라고 했다. 반드시 일상에서 탈출하고 긴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자기 의지대로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진정한 휴식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휴식을 계획하라
《인문학으로 광고하다》의 저자 박웅현은 유독 바쁜 직종 중의 하나인 광고 회사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면서도 야근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광고를 만들기 위해서는 창의성이 생명인데, 오랫동안 광고 일을 하면서 창의성이 발현되는 순간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때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때부터 일을 잘하기 위해서라도 웬만하면 야근을 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세웠다”고 밝혔다. 야근이 잦아지면 창조적인 작업에 필요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게 가능하냐고 묻자 그는 업무의 우선순위를 잘 짜서 지혜롭게 일을 하면 생각보다 야근할 일이 많지 않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적당한 휴식은 두뇌 활동을 촉진하고 업무 능률 또한 향상시킨다. 윈스턴 처칠이나 마크 트웨인,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들도 하나같이 망중한을 즐긴 것으로 유명하다. 창조적인 작업에 열중했던 그들은 머리를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 뇌가 이완된 상태에서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다. 


하지만 휴식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웬만한 결단 없이는 휴식 시간을 따로 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휴식을 강조하는 전문가들은 휴식에도 계획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시간이 생기면, 또는 이 일이 끝나면 휴식을 취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누가 뭐라 해도 이 시간만은 휴식 시간으로 사수하겠다는 적극적이고 단호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퇴근하면서 업무를 집으로 끌고 가지 않는 결단도 필요하다. 퇴근 뒤 휴대전화는 꺼놓는 식의 강제적인 단절을 감행하는 것도 좋다. 1년 계획을 세울 때 업무 계획이 아니라 휴식 계획부터 미리 세우는 방식도 추천한다. 너도 나도 피로를 호소하는 요즘, 충분히 쉬고 난 생기 있는 얼굴이 ‘성공의 잣대’라는 말도 들린다. 일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무엇보다 휴식이 필요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휴식할 시간이 없다는 것은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세계 최고의 IT기업으로 성장시킨 빌 게이츠는 ‘생각 주간’이라는 독특한 휴가를 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1년에 두 번씩 미국 서북부에 있는 호숫가 근처의 작은 별장에서 1주일간 은둔하면서 휴식 시간을 보낸다.

이 기간에 그는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일을 구상하는 데만 몰입한다. 찾아오는 이는 하루 두 차례 간단한 음식을 넣어주는 사람뿐. 게이츠가 그곳에서 먹는 음식은 수프와 샌드위치, 음료 정도다.

번잡한 업무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영양소만 섭취하면서 오로지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화두 한두 가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2008년 7월에 은퇴를 선언한 것도, 회사 경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온라인 비디오 시장 진출을 결정한 것도, 인터넷 브라우저의 일인자 넷스케이프를 제칠 수 있었던 것도 이 생각 주간의 결정을 통해서였다.


빌 게이츠에게 생각 주간은 밀린 업무를 처리하는 시간이 아니다. 이 기간은 2~3년의 단기 사업 방향보다는 10년 뒤의 장기적인 인생 비전을 그리는 시간이다. 그는 1년에 두 차례 일상에서 물러나 자신의 삶을 조망함으로써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방향성을 확보했던 것이다.


이처럼 휴식은 단순히 고단한 육체를 내려놓고 재충전하는 시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더 본질적인 휴식은 톱니바퀴처럼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이 가야 할 방향성을 가늠하는 시간에 있다.



휴식에도 용기와 훈련이 필요하다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은 인간이 불행한 것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리 있는 말이다. 현대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개인의 행복이 중요시되는 시대에 살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의 행복의 기준을 가늠해볼 겨를이 없다. 타인과의 소통 채널은 갈수록 다채로워지지만 정작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에는 인색하다.

독일의 신경과학자 에른스트 푀펠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의뢰한 실험을 진행하다가 우연히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는 1970년대 중반 NASA의 의뢰를 받아 승무원들이 좁은 우주선에서 오랫동안 격리 생활을 할 때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실험 참가자들을 안데스의 벙커 안에 격리시킨 후 2주일 동안 관찰하던 그는 흥미로운 현상을 목격했다. 독방에 홀로 격리된 참가자들이 답답하고 지루해서 미쳐버리지 않을까 걱정한 것과는 달리 아무도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던 것이다. 푀펠은 독방에서 홀로 지내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스스로 독방에 들어갔다.


2주일 후에 세상에 나온 그는 독방에 처음 격리된 하루 이틀 동안은 정말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번잡한 세상사에 노출되어 있다가 일시적으로 모든 정보가 단절된 순간, 인간의 두뇌는 카오스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갑갑해 미칠 것 같고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오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잡념에 시달리다 보면 어떻게든 밖으로 뛰쳐나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그런데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면서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아우성치던 내면이 놀라울 정도로 잠잠해지고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깊은 고요가 찾아온 것이다. 24시간 내내 밖으로 향해 있던 시선이 격리 상태를 견디다 못해 비로소 내부로 향하면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푀펠은 이 같은 경험을 한 후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 진정한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루에 단 한 시간이라도 외부와 단절돼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우리는 놀라운 창의력과 혁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스스로도 그런 경험을 계속하고 싶어서 매년 슈바르츠발트에서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몇 주일을 보내곤 한다. 

휴식의 가장 큰 보답은 자신과 만나는 것
보통 휴식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잠깐 일을 멈추고 쉬거나 잠을 자면서 컨디션을 회복하는 육체적 혹은 정신적 휴식만을 생각한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사회학자 헬가 노보트니는 휴식을 ‘자기만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나와 내 삶에서 중요한 것 사이의 일치를 이루는 시간이라는 말이다.   

이처럼 휴식이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 되려면 다만 몇 시간이라도 외부와 단절하는 환경이 필요하다. 자기 자신과 허심탄회하게 만나고자 하는 단호한 의지도 필요하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차단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꽤 오랜 시간 홀로, 참을성 있게 기다릴 줄 아는 훈련도 해야 한다. 

물론 명상이나 영적인 휴식을 경험해보지 않은 초보자가 처음부터 완전히 차단된 환경에 익숙해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못 견디게 따분하고 답답한 혼란의 시간을 거쳐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차츰 우리 뇌가  자신의 내부로 시선을 돌리면 그때 비로소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고요, 진정한 휴식의 시간과 만날 수 있다.


그러니 탈진 상태에 이른 자신을 추스르고 온전한 자기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면 일단 삶의 일부분을 먼저 떼어내어 자기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갖자. 남는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떼어놓는 것이다. 멀리 떠날 것 없이 지금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귀 기울이는 긴 침묵을 통하여.

글·전채연 ccyy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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