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뇌의 마술, 우뇌의 마술 프레스티지 vs. 일루셔니스트

좌뇌의 마술, 우뇌의 마술 프레스티지 vs. 일루셔니스트

영화, 뇌로 다시 보기

브레인 13호
2010년 12월 20일 (월)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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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을 거꾸로 놓고 그리면

화가이자 인지심리학 박사인 베티 에드워즈가 쓴 《오른쪽 두뇌로 그림 그리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어릴 적에 재미있게 읽은 책인데, 최근에 다시 개정판이 나왔더군요. 이 책에서 말하는 오른쪽 뇌로 그림을 그리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저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대상을 뒤집어놓고 그려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인물의 사진을 거꾸로 뒤집어놓고 그리고, 꽃이나 풍경도 그렇게 뒤집어놓고 그려보라는 거죠.

여러분도 한번 해보세요. 이렇게 대상을 거꾸로 놓고 그린 그림을 다시 원래대로 뒤집어보면 아마 조금 놀라실 겁니다. 평소에 자신이 그리던 밋밋한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그림이 완성되어 있을 테니까요. 실제로 이 방법을 쓰면 평소에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고 여기던 사람도 매우 개성 있고 참신한 그림을 그립니다. 새로운 그림 기술을 배운 것도 아니고 특별히 더 노력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어째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요? 그것은 평소에 우리가 그림을 그릴 때 주로 왼쪽 뇌를 사용해서 그리기 때문입니다. 뇌의 좌우 반구의 기능을 안다면 왼쪽 뇌로 그리는 그림과 오른쪽 뇌로 그리는 그림의 차이도 쉽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형태에 대한 선입견이 없는 오른쪽 뇌

뇌의 좌반구는 주로 과거 경험에서 비롯된 상식과 논리 그리고 언어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반면에 우반구는 지금 당장의 경험과 현상 그리고 시각이나 청각, 촉각적인 기능을 담당합니다. 따라서 좌반구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자신이 지금 보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해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선입견에다가 대상을 맞춰가며 그린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을 그릴 때 눈은 어디에 있어야 하고 어떤 모양이어야 하는지를 이미 생각하며 그리기 때문에 실제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눈의 특징을 놓치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그릴 대상의 모습을 뒤집어놓으면 왜 좌반구로 그릴 수 없게 될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그 대상이 올바로 서 있는 모습에 대한 상식만 가지고 있을 뿐 그 대상이 거꾸로 되어 있을 때는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선입견이 없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상식에 기초해서 작동하는 좌반구는 손을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스레 우반구가 나설 기회가 생깁니다. 우반구는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대상을 보면서 손이 가는 대로 자유롭게 묘사를 합니다. 덕분에 그동안 상식과 논리에 의해 억눌려 있던 우리의 예술적인 능력이 깨어나서 그림에 담기게 되는 것이죠.



◆마술은 눈속임이 아니라 과학이다 - <프레스티지>

영화 <프레스티지>와 <일루셔니스트>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마술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만든 영화입니다. 심지어 시대 배경도 비슷합니다. 단지 <프레스티지>가 19세기 말의 미국이 배경이라면 <일루셔니스트>는 비슷한 시대의 유럽이 배경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죠. 이렇게 비슷한 두 영화이지만 그 내용은 마치 좌반구로 그린 그림과 우반구로 그린 그림처럼 완전히 상극입니다. 앞서 그림 그리기에 비유하자면 <프레스티지>는 마술을 똑바로 놓고 그린 그림인 반면 <일루셔니스트>는 위아래를 거꾸로 뒤집어놓고 그린 그림이라고 할까요?


<프레스티지>에서 마술은 상식적인 결과라는 본질을 가리는 트릭, 바로 속임수입니다. 따라서 영화 속  카나리아는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라진 것이 아니죠. 또 사람이 순간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보다 완벽한 트릭을 만들기 위해서 자기 인생과 목숨까지 바치는 두 마술사, 앤지어(휴 잭맨)와 보든(크리스천 베일)의 이야기입니다. 이 마술사들이 추구하던 ‘프레스티지’라는 최고급 마술을 사실 과학자인 태슬라가 만든다는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이들에게 마술은 결국 과학이라는 뜻이니까요. 따라서 이 영화를 즐기기 위해서는 과학 연구를 할 때와 똑같이 논리적인 좌뇌가 활발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마술은 특수 효과가 만든 환상이다 - <일루셔니스트>

하지만 같은 마술을 <일루셔니스트>에서는 전혀 다르게 보여줍니다. 아이젠하임(에드워드 노튼)이 보여주는 마술은 대부분 영상입니다. 나중에 그는 영혼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마술을 선보이는데 뒤늦게 왕실 과학자들이 그 기술의 배후에 담긴 속임수라고 추측해본 것이 바로 영사기였습니다.

즉 아이젠하임이 추구하는 마술은 과학적인 트릭이 아니라 영상예술이었던 것이죠. 실제로 이 <일루셔니스트>에 등장하는 마술들은 논리적인 설명도 불가능하고, 영화의 특수효과나 컴퓨터 그래픽이 아니라면 실제로 그렇게 보일 수 없는 것들뿐입니다. 따라서 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는 방법은 마술 뒤에 숨겨진 트릭을 찾으려는 좌뇌의 노력은 진작 포기하고, 우뇌를 발동시켜서 영화가 던져주는 이야기의 매력에 빠지는 것입니다.

<프레스티지>를 즐겁게 보았다면 <일루셔니스트>를 즐기지 못하거나 그 반대도 가능할까요? 물론 그런 경우도 있을 겁니다. 좌뇌가 특별히 발달했거나 우뇌가 특별히 발달했다면 말이죠.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좌뇌와 우뇌는 뇌량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좌뇌의 논리와 우뇌의 감성을 두루두루 발휘하며 살 수 있는 것이죠. 따라서 적절한 좌·우뇌의 균형만 갖춘다면 이 두 영화를 즐기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겁니다.

글·장근영 jjanga@nypie.re.kr

팝콘심리학》 《너, 싸이코지?》 《영화 속 심리학》을 쓰고,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을 번역한 칼럼니스트이자 일러스트레이터.현재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일하고 있으며  블로그 싸이코짱가의 쪽방’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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