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유헌 서울대 의대 교수 / 세계뇌주간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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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뇌연구촉진법 제정을 주도하고 한국뇌학회를 창설해 우리나라 뇌과학의 진흥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서유헌 교수를 서울대 의대 학술행사장에서 만났다. 세계뇌주간을 맞아 ‘뇌의 신비와 뇌질환의 이해’를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 서 교수는 ‘뇌의 신비와 뇌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대중 강연을 펼쳤는데, 일반인들이 뇌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흥미로운 강연이었다. 다음은 이 날 강연의 요지.
‘너 자신을 알라’라는 소크라테스의 격언을 현대적 의미로 바꾸면 ‘너의 뇌를 알라’로 바꿀 수 있다. 즉 뇌에 관한 과학인 ‘신경과학’을 ‘인간과학’으로 삼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뇌에 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최근까지 이런 일은 불가능했다. 뇌에 관해 알고 있는 지식은 일상과는 무관한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과거 20년 동안 밝혀진 뇌에 관한 지식은 지난 2백 년 동안 얻은 지식을 훨씬 능가한다. 우리들은 사고, 감정, 기억, 인식, 그리고 모든 마음의 표현 등이 뇌 없이는 일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나는 뇌이며 뇌가 나’인 것이다.
뇌연구는 최근 분자생물학의 발전으로 신경정신기능 관련 유전자와 질병유전자가 밝혀지고 있고, 최근 첨단 공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뇌의 형태는 물론 기능까지도 영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신경과학분야에 철학, 심리학, 언어학 등 인문사회과학과 신경회로망, 인공지능, 로봇을 연구하는 공학분야가 밀접하게 연계됨으로써 뇌연구는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모든 학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같은 뇌연구의 중요성을 인식한 선진각국에서는 일찌감치 뇌연구에 집중적인 투자를 해오고 있는데, 이는 뇌연구가 생명의 신비를 밝히고 인간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데 필수적이며, 미래사회 혁명을 촉발하고 올바른 교육혁명 또한 가능케 할 것임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뇌연구가 진척되어 성과가 모아지면 머지않아 우리는 사람의 성격과 인지형태, 지능, 감정과 행동을 추측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각종 뇌질환을 진단하고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뇌신경세포를 다른 사람의 뇌에 이식하는 기술이 크게 발전하여 질병치료에 공헌할 것이며, 우수한 뇌기능 유전자를 활성화시킬 방법도 개발되어 공상과학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어느 정도 가능해질 것이다. 21세기 중반까지는 뇌신경세포의 성장과 노화의 비밀이 상당부분 밝혀지고, 그렇게 되면 현재는 불가능한 손상 뇌세포의 재생도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또 인간의 두뇌를 닮은 인조뇌나 신경컴퓨터가 등장하면 우리의 생활은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차원으로 펼쳐질 것이다.
철학자 칸트는 뇌에 관해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존재하고 있는 대로 일들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며 마음(이제는 ‘뇌’라고 말할 수 있다)의 메아리를 통해 여과되는 것만을 경험한다’고 했다. 이것은 뇌의 기능과 세상과 인간의 관계를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21세기에 살면서 뇌에 관해 배우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글 | 방은진 jeena@powerbrain.co.kr 사진 | 김경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