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0.(일)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뇌의 자세 브레인 Vol. 32

마음이 뇌에 말을 걸다

2012년 02월 02일 (목) 10:17 브레인월드 웹 매거진 신청/선물하기 인쇄하기 이메일로 선물하기 퍼가기



영국의 저널리스트 팀 하포드는 《어댑트》에서 현대사회가 갈수록 불확실성의 위험에 놓여 있다고 진단한다. 언제까지고 건재할 듯 보였던 기업이 불과 1, 2년 사이에 존망의 기로에 놓이고, 철옹성 같았던 권력이 하루아침에 권위를 잃는다. 급변하는 시대에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진리뿐인 것 같다.

불확실성의 시대, 해결 방안은?
갈수록 빠르게 변하는 복잡한 세상에서는 뛰어난 전문가도, 탁월한 지도자도 명쾌한 해결책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 팀 하포드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제대로 적응하기 위해서는 자연계가 진화하는 제1원칙인 ‘적자생존’ 방식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끊임없이 선택하고, 그 선택이 효과적이지 않을 때는 바로 ‘변이’하는 ‘진화의 프로세스’야말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막강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이든 집단이든 실패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두뇌가 실패 앞에서 세 가지 속성을 띤다고 말한다. 실패를 실패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부정’ 실패에 따른 손실을 없애려고 애쓰다가 오히려 손실을 키우는 ‘손실 추격損失 追擊(chasing a loss)’ 실패를 성공으로 해석하거나 성공과 뒤섞어버리는 ‘쾌락적 편집’ 경향이 그것이다.


이러한 뇌의 속성에도 불구하고 팀 하포드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더 많이, 꾸준히 실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제 해결에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실험하고, 실패하더라도 기꺼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특히 급변하는 환경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조직이 경계해야 할 것은 ‘중앙집권화’다. 지나치게 중앙집권화된 시스템은 조직을 유지하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급변하는 세상에 신속하게 대응하면서 오래 살아남기는 어렵다.

충성도 높고 단합된 팀은 집단사고의 오류에 빠질 위험이 높고, 중앙에서 통제하고 분석한 대안은 현장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지 못한다. 심지어 팀 하포드는 기업은 실패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실험이 실패하더라도 거기서 교훈을 얻고 실험하는 것 자체가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개인과 사회가 진보와 발전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시행착오 없이는 발전도 없다
우리가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식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전혀 다른 길을 보여준다. 실패에 유연할 수만 있다면, 실패는 대개 또 다른 창조로 이어진다. 미국 제조회사 3M의 포스트잇이 실패를 데이터베이스화한 사내 문화에서 나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스펜서 실버는 포스트잇의 접착제를 발명했고, 아서 프라이는 포스트잇의 원안을 고안해냈다. 하지만 이 둘은 서로 다른 부서에 소속되어 있었고, 그들이 포스트잇의 영감을 얻은 것은 3M의 사내 실패공유시스템을 통해서였다.


스펜서는 접착제를 발명하는 과정에서 애초의 의도와는 다른 접착제를 발명했다. 그리고 자신의 실패에 낙담하는 대신 그것을 전 직원이 공유할 수 있도록 사내 시스템에 공개했다. 주말마다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하던 프라이는 악보를 넘기다가 책갈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포스트잇을 구상했다.

말하자면 포스트잇은 스펜서의 실패 사례와 프라이의 아이디어가 절묘하게 조합된 제품인 셈이다. 이렇듯 실패를 공유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뿐더러 생각지 않은 아이디어까지 얻을 수 있다.


일본의 자동차 기업 혼다 또한 실패를 권장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혼다 기업의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하면서 ‘올해의 실패왕’ 제도를 시행했다.

매년 연구자 중에 가장 큰 실패를 한 직원에게 100만 엔(약 780만 원)의 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포스코의 ‘성공씨앗 발굴제도’도 실패를 단순히 실패로 인식하지 않고 창조적인 조직 문화를 이끌기 위한 ‘성공 씨앗’으로 인식하고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이렇듯 실패를 공유하고 장려하는 조직 문화는 더 많은 실험을 가능하게 한다. 젊은 세대가 일하고 싶어 하는 직장으로 가장 많이 꼽는 구글과 페이스북은 직원들이 실패의 부담 없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구글은 모든 직원이 업무 시간의 20퍼센트를 업무와 무관한 일에 쏟아 부을 수 있도록 ‘20퍼센트 프로젝트’를 운영한다. 개발자가 아이디어 마켓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올리고 일정 수 이상의 표를 받으면 바로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는 제도다. 파격적인 저장 용량으로 선발주자인 야후와 마이크로소프트가 주도하던 이메일 시장에 지각 변동을 일으킨 지메일 서비스가 여기서 나왔다.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구글을 2009(4342)년 말부터 추월하기 시작한 페이스북도 자발적, 즉흥적인 의사소통 방식인 ‘해커톤hackathon’을 통해 아이디어를 교환한다. 페이스북의 대표적인 기능들이 이런 소통 방식을 통해 탄생했다. 페이스북은 신규 서비스 개발이 필요할 때마다 내부 프로그래머를 대상으로 ‘해커톤합시다’라고 얘기한 뒤 짧은 시간에 새로운 서비스 아이디어를 얻어낸다고 한다.


나만 실패한 것이 아니다
조직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도 실패를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우리의 뇌가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음 행보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안철수 원장은 경력만 놓고 본다면 자기만큼 인생을 낭비한 사람도 드물 거라고 말한다. 그는 의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벤처기업인, 대학교수 등 얼핏 봐서는 서로 연관성이 없는 업을 전전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효율성만 따진다면 상당히 비효율적인 인생 행보를 거쳐 왔다. 하지만 변화하는 시대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하면서 시대의 요구에 귀 기울인 결과, 현재는 기존 학문의 벽을 넘나들며 공학, 자연과학, 인문학, 사회과학, 경영학을 아우르는 융합 연구의 선두에 서 있다. 전혀 맥락 없어 보였던 행보가 ‘통섭’과 ‘융합’이라는 시대적인 요구에 최적화한 프로필로 인정받은 셈이다. 

《힐러리처럼 일하고 콘디처럼 승리하라》의 저자 강인선 씨는 인생은 ‘점 잇기 놀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 시절 국제 정치학과 유럽 군축의 역사를 공부했는데, 당시만 해도 자신이 왜 그렇게 쓸데없는 것에 천착하는지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이론들은 재미는 있으나 너무 허황돼서 아무리 열심히 배워도 먹고사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워싱턴 특파원과 이라크 종군기자로 활약하게 되면서, 포탄이 터지는 전쟁터 한복판에서 비로소 자신이 왜 그런 분야에 관심을 가졌는지 깨달았다고 한다.

매번 방향을 잘못 틀어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해온 별로 상관없어 보였던 일들이 하나로 꿰어지며 ‘의미’와 ‘관계’가 형성되고, 그제야 자신의 삶이 본궤도에 오른 것 같은 안도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에게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유명한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그는 자기 인생의 전환점이 학창 시절에 우연히 들은 서체 수업이었다고 전한다. 그는 학비가 부담돼서 대학을 중퇴한 후 순전히 개인적인 호기심 차원에서 서체 수업을 들었다.

“정규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세리프와 산세리프체를, 다른 글씨의 조합에서 생기는 여백의 다양함을, 위대한 글자체의 요소가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도저히 표현해낼 수 없는 아름답고, 유서 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어서 저는 단번에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이중 어느 하나라도 제 인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 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그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만약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의 복수 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거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리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라고 말하면서 현재가 미래와 어떻게든 연결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정보가 더 잘 기억된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의 뇌 또한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정보를 더 잘 기억한다는 사실이다. 캐나다 베이크레스트 노인의료센터 부속 로트먼 연구소는 20대 45명과 평균 연령 70세의 45명을 대상으로 기억력 테스트를 실시했다. 그 결과, 우리 뇌는 연령대에 상관없이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정보를 더 잘 기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존의 연구 결과에서는 정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하는 것이 기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고령자의 경우는 수동적인 정보 습득 방식이 더 적합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이 연구 결과, 고령자 또한 정보 습득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할 때 단어를 한층 더 잘 기억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를 이끈 앙드레 안 시어 수석 연구원은 “고령자가 올바른 정보와 틀린 정보 사이의 차이를 알아챌 경우 실수가 오히려 기억 프로세스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처럼 실패와 시행착오는 우리 뇌에 더욱 의미 있는 시냅스의 연결을 가능하게 하고, 탄력적으로 상황에 대처하게 한다. 그리하여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진화 프로세스를 창조한다.

돌아보면 인생을 긴 안목으로 통찰하지 못하고 순간순간의 성공과 실패에 일희일비했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오늘 당장 실패하더라도 그 실패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인생은 충분히 가치 있지 않을까? 


글·전채연
ccyy74@naver.com |
일러스트레이션·류주영
ruy.jo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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