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문명국, 한국은 아니라니…국학을 찾아야!

[BOOK] 한국선도와 현대단학부터 용비어천가 완역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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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 윤한주 기자 |입력 2015년 04월 29일 (수)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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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석학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문명의 충돌』에서 냉전 이후 국가 간의 무력 충돌은 이념의 차이가 아니라 전통·문화·종교적 차이라고 주장했다. 전 세계를 7개 문명으로 소개했는데, 이곳에 일본은 있어도 한국은 없다. 중국과 같은 유교국가로 봤기 때문이다.

지금도 외국인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알아도 한국의 고유문화에 대해 딱히 대답하기 어려워한다. 이것은 한국인도 마찬가지다. 왜 그럴까? 이승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 교수는  “당신 나라에 고유한 문화가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유교, 불교, 도교가 있다고 대답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대답이다. 삼교는 삼국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전래하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외국에서 수입한 한국학이 아니라 한국에서 자생한 국학(國學)에 주목한다. 그것은 단군조선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에 뿌리를 둔 한국선도와 현대단학이다. 책은 『천부경』, 『삼일신고』, 『규원사화』, 『환단고기』에서 국학의 맥(脈)을 밝혔다. 이 교수는 이를 계승한 현대단학의 철학과 수련법을 분석했다.

이승호, 『한국선도와 현대단학』, 국학자료원, 378쪽, 24,000원



“홍산문화와 환단고기가 만나다!”

20년 검사생활과 15년 글씨 수집 경험을 가진 저자가 고대 홍산문화에서 한민족의 DNA를 찾아나섰다.

홍산문화는 중국 네이멍구자치구 츠펑시 동북방에 인접한 홍산 부근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후기와 동석병용(銅石竝用) 시대의 유적이다. 시기는 대략 기원전 4,700년경〜기원전 2,900년경으로 본다. 대표적인 유적인 뉘우허량 유적은 랴오닝성 링위안시에서 젠핑현에 걸쳐 있다. 1983년 발견되었는데 5㎢ 넓은 범위에 돌을 쌓아 만들어진 거대한 제단, 벽화 등이 있는 신전, 적석총, 석곽 등이 분포하고 있다.

저자는 홍산옥기에 새겨진 문자에 주목한다.

“부드러운 곡선이고 선이 정확하지 않아서 마치 어린아이가 쓴 것 같다. 그리고 같은 문자도 크기나 기울기나 방향이 같지가 않고 자유분방하다.”

특히 셈 문자인 ‘산목(算木)’에 대해 선도사서(仙道史書)를 근거로 내세운다. 『환단고기』 「태백일사」에는 신시에는 산목이, 치우에게 투전목이, 부여에는 서산이 있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산목은 고조선보다 시대가 앞선 배달국 당시의 도읍지인 신시에서부터 사용됐다. 마야, 인더스, 중국에서도 숫자는 점이나 막대로 표시했지만 산목과 동일한 형태는 없었다. 홍산옥기에서 산목이 발견되는 것은 한민족과 관련이 있다는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태백일사」에는 고조선 때 이미 있었던 가림토 문자가 한글의 원시 형태이고 중국인의 조상으로 알고 있었던 치우는 우리 조상이라는 것을 담고 있다.

물론 일부 역사학자들은 『환단고기』에 사용된 용어나 개념이 당시가 아니라 후대에 사용된 것이 많다는 근거로 위서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환단고기』 중 「단군세기」 등에 나오는 오행성(五行星) 결집, 그리고 썰물과 관련된 기록을 컴퓨터로 계산한 결과 실제로 그 당시에 있었던 현상이었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또한 흑피옥기에는 한글 자모의 ‘ㅈ’, ‘ㅅ’, ‘ㅋ’, ‘ㅠ’ 등과 비슷한 것이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흑피옥기 문자 중에 가림토 문자 또는 한글과 닮은 것들이 꽤 있고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 때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표음 문자를 참조했음이 분명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흑피옥기에 조각된 글씨체는 법흥왕 치세 이전의 고신라 글씨체와 같은 특징(곡선, 자유분방, 빠른 속도)를 가지는데 그 정도가 더 두드러지며 고대 중국의 글씨체와는 확연히 다르다”라고 했다.

우리나라 학계는 고려 말에 펴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한국사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홍산문화 유물이 선도사서와 관련해 새로운 연구 주제를 던지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구본진, 『어린아이 한국인』, 김영사, 436쪽, 18,000원


“천부경의 유래를 새롭게 밝히다!”

네이버에서 ‘천부경(天符經)’이라고 검색하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와 두산백과에서 ‘대종교(大倧敎)의 기본 경전’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홍암 나철이 1909년에 세운 대종교에서 천부경을 경전으로 공인한 것은 1975년이었다. 이전에는 대종교인조차 천부경을 한국선도(韓國仙道)의 대표경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천부경은 어디에서 유래했단 말인가? 이에 대해 나철과 함께 대종교(원래는 단군교)를 세운 정훈모(1868∼1943)를 주목해야 한다. 그는 나철이 1910년 단군교에서 대종교로 바꾸고자할 때 교명 고수를 명분으로 결별한다. 그가 바로 천부경과 성경팔리 등 선도경전을 체계화하는 데 공헌한 인물이다. 그러나 1936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교되고 해방 이후 대종교 중심으로 인식이 확대되면서 정훈모는 역사에 묻히고 만다. 조준희 국학인물연구소장과 유영인 한국신교연구소장은 2004년부터 10년간 ‘정훈모 찾기’에 나섰다. 그 결실이 『단재 정훈모 전집』3권이다. 이 책은 정훈모에 관한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전집에서 주목되는 것은 『천부경』이 세상에 알려진 시기가 앞당겨진 점이다.

1911년 『환단고기』를 펴낸 것으로 유명한 계연수는 1916년 묘향산 석벽에서 천부경을 발견하고 9월 9일에 이를 탁본하여 1917년 1월경 단군교 교당에 보냈다. 이후 윤효정이 북경에 거주하던 구한말의 사상가 전병훈에게 전하고 「천부경주해」가 붙은 『정신철학통편』으로 1920년에 발간됐다. 그러나 편자들이 정훈모의 유품 중에서 1913년에 제정한 「단군교종령(檀君敎宗令)이 발견된 것이다. 7년이 빨라졌다.

또한, 세간에 알려진 『참전계경』은 선도경전의 원명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훈모는 1908년 일본 도쿄의 한 여관에서 백두산 도인 두일백(杜一白)으로부터『성경팔리』라는 책을 전수받는다. 정훈모는 단군교단에서 1914년부터 주 경전으로 활용했다. 1921년에 한문본, 1926년에 순한글 번역본으로 출간됐다. 그러나 단군교가 1936년 7월 조선총독부의 단성전 시교부 해산명령에 따라 폐문되고 세상에서 잊혀 진다. 이후 대종교 신도 박노철은 1965년 『단군예절교훈성경팔리삼백육십육사』라는 서명으로 간행했다. 이를 저본으로 1972년 이유립은 ‘참전계경’으로 바꾸고 『환단휘기』에 포함해 출판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1권은 정훈모의 『천부경』,『삼일신고』, 『성경팔리』를 최초로 완역했다. 2권은 정훈모의 교리서와 역사서로서 진리문답, 천을선학경, 시흥 단군전에서 시행했던 단군교 예식 문건 등이 포함됐다. 3권은 기관지 단탁, 역사서 김선생염백기와 단군교부흥경략이 수록됐다. 

전집을 펴낸 정훈모 선생의 손자 정달영 씨는 “단군교는 천부경과 성경팔리를 주 경전으로, 대종교는 삼일신고와 신사기를 주 경전으로 사용하며 각자의 길을 걸었다”라며 “기존에 왜곡되고 묻힌 역사를 바로 잡는데 한국 근대 종교사뿐만이 아니라 근대 역사학계에도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정훈모, 조준희, 유영인 엮음, 『단재 정훈모 전집』, 아라, 423쪽, 각권 38,000원


최초의 국문시가, 용비어천가…원문과 번역 ‘한눈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니 꽃 좋고 열매가 많으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끊이지 않으니 시내를 이루고 바다로 가나니”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조선 선조 6대의 업적을 중국 역대 제왕에 비교하여 칭송한다. 조선의 건국과 통치가 하늘의 뜻에 의한 것임을 역설하는 대서사시다.

세종의 명에 따라 정인지․권제․안지에 의해 훈민정음으로 지어진 125장의 악장으로 1445년(세종 27)에 완성됐다. 그 후 다시 세종의 명에 따라 최항 등 8인에 의해 1447년(세종 29) 2월에 한문 주해가 이루어져 이해 10월에 간행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용비어천가의 원문과 번역문을 한눈에 대조하며 살필 수 있도록 대역본으로 구성한 『역주 용비어천가』(박창희 역주)를 발간했다. 『월인천강지곡』과 함께 훈민정음으로 지어진 가장 오래된 시가로서 고전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권력자를 칭송하는 노래, 조선의 왕조 찬탈을 합리화하는 정치적 의도가 담긴 역사책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도 동시에 받고 있다.

문제는 용비어천가 원전을 온전히 읽은 사람이 드물다는 데 있다. 책은 본문과 주석의 내용을 분리하여 주석을 읽는 번거로움으로 인해 본문의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재편집했다.

편집부, 박창희 엮음, 『역주 용비어천가』(상, 하),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각권 50,000원

글. 윤한주 기자 kaebin@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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