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면역치료제로 개발 중이던 ‘TGN1412’를 사람에게 투여했다가 몇 시간 만에 사이토카인 폭풍이 일어나 여러 명이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쓰러진 사례가 있었다.
또한 뇌졸중 치료제로 개발된 ‘아프티가넬(Aptiganel)’ 역시 동물에선 효과가 뛰어났지만, 사람에게선 환각·진정 등 부작용만 나타나 중단된 사례도 있다.
이처럼 동물 실험에선 멀쩡하던 약이 사람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 이런 차이를 AI로 학습시켜 임상시험 전에 위험 약물을 미리 골라낼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POSTECH(포항공과대학교) 생명과학과·융합대학원 김상욱 교수, 생명과학과 박민혁 박사, 통합과정 송우민 씨, 인공지능대학원 통합과정 안현수 씨 연구팀이 AI를 이용해 사람에게 나타날 약물 부작용을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최근 의약 분야 국제 학술지 '이바이오메디신(eBioMedicine)' 온라인판에 현지시각으로 지난 28일 실렸다.
▲ 전임상 모델과 사람 사이의 약물 작용 유전자의 생물학적 차이(GPD)에 기반 해석 가능한 약물 독성 예측 기계 학습 모델 프레임워크 [사진=POSTECH]
신약 개발 과정에서 세포나 동물 실험 등의 전임상을 통과한 약물이 사람에게서 뜻밖의 독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사람과 동물의 생물학적 반응이 다르기 때문이다.
초콜릿이 사람에게는 대체로 안전하지만, 개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어떤 약물은 쥐에게 안전하다고 해서 사람에게도 안전한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신약 개발 실패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 '종(種) 간 차이'였다.
연구팀은 세포·쥐·사람 간 생물학적 차이인 'GPD(Genotype-Phenotype Difference, 유전형-표현형 차이)'에 주목해 약물이 겨냥하는 표적 유전자가 사람과 전임상 모델에서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는지를 세 가지 축으로 분석했다.
첫째, 유전자가 생존에 미치는 영향(필수성), 둘째, 조직별로 유전자가 발현되는 양상, 셋째, 생물학적 네트워크에서 유전자의 연결성이다.
위험 약물 434개와 승인 약물 790개 데이터로 검증한 결과, GPD 특성은 사람에서 독성으로 실패하는 약물과 유의하게 연관됐다. 화학 구조만 볼 때보다 예측력이 크게 향상됐으며, 독성 물질을 실제로 잘 찾아내는 지표(AUPRC1))가 0.35에서 0.63, 전체 예측 정확도를 나타내는 지표(AUROC2))는 0.50에서 0.75로 높아졌다.
개발된 AI 모델은 기존의 최신모델들과 비교해 가장 우수한 예측 성능을 보였다.
나아가 독성으로 시장에서 퇴출당할 약물을 경고하는 ‘연대기적(chronological) 검증’에서도 실용성을 보였다. 1991년까지의 약물 정보만으로 AI를 학습시킨 뒤, 1991년 이후 시장에서 퇴출당할 약물을 예측한 결과 95%의 정확도를 보였다.
이번 연구는 세포와 전임상 동물 모델 그리고 사람의 생물학적 차이을 정량 지표로 끌어와 전임상–임상 사이 ‘번역의 벽’을 낮춘 점이 핵심이다.
제약사는 임상 전에 고위험 후보를 걸러 개발 비용과 시간을 아끼고, 환자 안전을 높일 수 있다. 관련 데이터와 주석이 쌓일수록 모델의 효용은 더 커질 전망이다.
김상욱 교수는 "전임상 모델과 사람의 생물학적 특성을 수치로 반영한 첫 시도"라며, "AI와 생물정보학을 결합하면 신약 개발 '실패의 골짜기'를 크게 줄여 "사람에게 안전하고 효과적인 신약을 더 빠르게 개발하는 시대가 멀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공동 제1저자인 박민혁 박사와 송우민 씨는 "사람 중심 독성 예측 모델은 신약 개발 현장에서 매우 실용적인 도구가 될 것"이라며 "제약사가 임상 전 단계에서 고위험 약물을 미리 걸러낼 수 있어 개발 효율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전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 대학 중점연구소지원사업 의료기기 혁신센터와 합성생물학 인력양성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글. 우정남 기자 insight159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