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노벨상 시즌이 다가오면 생리의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생명공학과 교수인 칼 다이서로스가 그 주인공으로 그는 빛을 이용해 뇌의 작용을 연구하는 혁신 분야인 광유전학을 창시한 세계적인 석학이다.
광유전학은 뇌과학 연구에 그치지 않고 빛으로 뇌의 활동을 정밀하게 조절해서 우울증과 치매 등 다양한 신경이나 정신 질환 치료에 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감정의 기원》은 다이서로스 교수의 첫 책으로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환자를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그의 특이한 경력의 장점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는 뇌의 내부 회로에 대한 냉철한 지식과 환자에 대한 깊은 공감을 연결해 정신 질환이 어떻게 발생하고 또 인간의 마음과 감정에 대해 무엇을 드러내는지, 상처 입은 마음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온전한 마음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는지를 서술한다.
저자는 뇌의 특정 회로가 불안, 갈증, 각성, 공포와 같은 생존 본능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밝히고, 의사이자 과학자로서 성장해온 자신의 이야기와 더불어 조증, 자폐, 경계성 장애, 조현병, 섭식장애, 치매 등으로 아파하는 우리의 마음에 대한 이해로 안내한다. 매혹적이고 감동적이며 때로는 고통스러운 임상 사례들은 우리의 내면과 감정의 생물학적 본질을 밝히는 동시에 연민과 희망의 역할 및 사회적 유대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뇌와 감정의 관계를 추적하는 어느 정신의학자의 이야기
책에서는 이렇게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통해 인간관계에서 누구나 느끼는 상실과 슬픔이라는 보편적 감정에서부터 현실과의 단절 혹은 자아를 잠식하는 심각한 정신병에 이르기까지 인간 정신의 미스터리를 추적해나간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로 임신 중인 아내를 바로 옆에서 잃은 후 눈물을 흘리지 못하게 된 남자의 사연은 트라우마가 어떻게 감정 표출을 억제하고 삶을 축소시키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슬픔과 울음이라는 정서적 감정이 뇌의 신경회로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설명한다. 갑작스러운 사고 이후 성격이 완전히 바뀐 어느 정년퇴직자의 사례는 뇌의 특정 회로의 변화와 스트레스가 어떻게 인격과 사회적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는지 알려준다. 외향성과 내향성이라는 성격 차이도 단순한 기질의 차이가 아니라 뇌의 패턴과 반응성의 차이와 연결해 서술한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정보를 해킹한다고 믿고 그걸 막기 위해 전자기 차단 장치를 집에 설치한 한 여인의 사례는 망상이 왜 그렇게 견고하고 현실과 환각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망상과 환청은 단순한 허상이 아니라 뇌의 물리적‧화학적 상태와 밀접하게 얽혀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밝힌다. 거식증과 폭식증 같은 섭식장애로 고생하는 환자를 통해서는 기본적인 생존 욕구마저 극단적으로 억제하는 ‘내면의 폭군’을 다루고 욕구와 통제의 충돌 과정에서 발생하는 뇌 회로의 왜곡을 분석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치매의 문제를 다룬다.
기억이 사라지는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남기는가? 저자는 기억과 정체성의 관계를 탐구하고 우리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붙잡는 ‘감정의 잔향’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묻는다.
첨단 과학으로 밝히는 감정의 지도, 과학은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응급정신의학의 최전선에서 마주한 환자들의 생생한 사례, 인간 감정의 진화적 뿌리 그리고 최첨단 신경과학 기술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낸다. 그는 ‘뇌를 들여다보고 조절하는 기술’을 창조한 과학자이면서 인간 고통의 언어를 섬세하게 포착하는 이야기꾼이다.
그런 점에서 《감정의 기원》에서 그가 던지는 질문은 ‘뇌는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과학은 인간의 고통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어디까지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물음에 가까워진다.
그에 따르면 과학과 의학은 이 고통의 구조를 밝히는 ‘지도’이고 감정이 생겨나는 경로를 가시화함으로써 인간을 막연한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한다.
하지만 과학의 힘은 전능하지 않으며 환자의 목소리를 대체할 수도 없다. 과학이 신경회로의 결함을 찾아낼 수는 있어도 그 결함이 환자의 인생에 남긴 상처를 메우는 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라고 저자는 거듭 강조한다.
결국 《감정의 기원》이 내리는 결론은 조심스럽지만 분명하다. 과학은 인간을 완전히 구원하지는 못하지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제공함으로써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가능성을 넓혀준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의학의 역할은 질병의 제거에 그치지 않고 망가진 마음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된다.
글. 우정남 기자 insight1592@gmail.com